허망한 죽음에 산자의 마음은 지옥이 된다. 온갖 감정들이, 태풍에 파도가 뒤집혀 하얗게 들끓듯, 들끓는다. 생각은 파도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내가 그때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때 그런 일만 없었어도, 그때 그곳에 가지 않게 내가 잡기만 했어도'.
'만약에'는 끝이 없고, 후회와 미안함과, 이유 없는 죄책감은 오장육부를 헤집는다. '만약에'의 지옥은 살아있음도 살아있음이 아니다.
씻겨야 한다. 씻김이다. 산자가 살기 위한, 죽은 자의 영혼 씻김이다. 옆집에서는 아침부터 씻김굿 준비가 한창이다. 하얀 창호지로, 무녀가 쓸 고깔모자를 만든다. 망자를 천궁까지 데려갈 노잣돈 지전(종이돈)은, 창호지를 길고 가늘게 잘라 한 묶음 두 묶음 만든다.
부엌에서는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가마솥에 걸쳐진 시루에서는 김이 폭폭 올라오며 떡이 익어간다. 마당에는 덕석(멍석)이 깔린다. 하늘에는 하얀 챌(차일. 차광막) 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마당에 망자를 위한 상이 걸게(푸짐하게) 차려진다. 굿상 옆으로 장구와 아쟁과 징을 든 악사들이 모여 앉는다. 하얀 고깔모자에, 같은 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무녀도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다.
새벽까지 굿은 끝날 줄 모른다.
넋의 씻김을 지나 망자가 갈 길을 닦으며, 굿은 절정을 향해 달린다. 장구를 치는 악사는, 박자를 당겼다 풀었다, 쿵 소리를 크게 냈다가 '다기리당 당당'하며 작은 잔박자 소리를 냈다가 한다. 강물 같은 유장한 굿거리장단 가락이 끝없이, 끝도 없이 흘러간다.
아쟁은'쟁이쟁쟁 쟁쟁', 활을 줄에 부딪히며, 구슬프고도 구슬픈 가락을 뽑아낸다. 줄을 누르는 손은, 힘을 주었다 뺏다, 깊었다 얕았다, '딩기리딩딩' 가는 떨림을 이어 나간다. 망자를 보내는 이의 가슴줄도 갈래갈래 퉁겨졌다 풀어지며, 움켜쥐었다 끊어쥐었다 하게 한다.
징은 '징 징 지잉, 당 다라 당당' 무겁고 둔탁한 소리로 한 맺힌 가슴들을 두들겨대고 있다. 빨라졌다 느려졌다,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며, 두들기고 또 두들겨 댄다.
무녀의 애끓은 노래도 함께였고, 굿마당 누구의 피를 토하는 듯한 울음소리도 함께였다.
'아~~ 아아아아 '하는, 악사의 구음이 이어진다. 무녀의 지전이 나풀거린다. '천궁이야, 천궁이야' 얼른 좋은 곳으로 가시라, 달래고 또 달랜다. 사람들은 기다란 흰 천의 천궁 가는 길에 노잣돈을 얹혀주며, 잘 가시라 잘 가시라 눈물로 배웅한다.
갑자기 박자가 빨라진다. 천궁 가는 망자의 발걸음도 빨라진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이다. '나무아미타불, 가나니 보살'. '나무아미타불, 가나니 보살'.
가족을 먹이기 위해, 거친 바다에서 큰 배를 타다 돌아오지 못한 옆집 아배(아버지)는 그렇게 떠나갔다. 사람들의 마음속 '만약에'도 그렇게 함께 사라져 갔을까.
산자의 마음속 생각 지옥은 그렇게 함께 사라져 갔을까.
'괜찮아, 니탓이 아니야.' 밤을 새워 무녀는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갑자기 몰아친 태풍, 평화롭던 마을에 들이닥친 전쟁의 끝자락, 병고와 무정한 세월, 어리석은 인간의 잘못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지만, 밤새 악사와 무녀는 그것들을 씻기고 또 씻겨냈고,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지며 그렇게 풀고 또 풀어냈더랬다.
옆집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서울로 이사를 간 모양이었다.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를 바다에 잃은 사람들은, 그렇게 씻김굿을 하고 떠나, 타향 땅 어느 언저리에서 또 잘 살아냈을까.
할머니 치마폭에서 밤새 졸다 깨다 하며 들은 굿판의 소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섬마을 사람들의 삶의 일부였던 씻김굿은, 이제 세상이 변해, 예술의 이름으로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세상에는 여전히 허망한 죽음들이 많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오늘도 무녀를 대신한 또 누군가가, 조용히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악사는 없지만, 아픈 이를 위한 연민의 마음은 여전하다. 슬픈 사설가락은 없지만, 최신 심리학 이론들과, 뇌과학이 발달시킨 약물로 무장을 했다. 그렇게 여전히 치유의 씻김은, 모습만 달리 한 채, 그렇게 또 그렇게 이어지고 있을 터였다.
며칠 새 내린 비는 숲을 한바탕 씻기고, 하늘도 바다도 깨까시(깨끗이) 씻겼다. 녹음은 더욱 짓 푸르러지고, 바다와 하늘은 경계를 모르게 더욱 함께 푸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