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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윤 Dec 02. 2024

인생무상, 덧없는 인생

오즈 야스지로가 해체한 현대사회 속 가족의 이미지

영화 『동경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쓸쓸함과 고독을 표현한 작품이다. 도쿄를 방문하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의 가족 군상을 고찰하며, 그들의 쓸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덧없다」고 표현하고는 하는데, 이 말은 많은 함의를 내포한다. 삶의 무상함, 헛되고 허무한 느낌, 불확실한 미래 등과 같이 다양한 감정을 포함하는데, 이 덧없다라는 표현이 동경 이야기에 퍼즐처럼 딱 들어맞는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마치 숙제처럼 여겨지고, 그로 인해 노부부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우리는 인생의 덧없음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주인공 슈키치와 토미는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시골에서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의사인 장남 코이치, 미용실을 운영하는 장녀 시게, 오사카에서 근무하는 셋째 아들 케이조, 그리고 교사로 일하고 있는 막내 쿄토까지, 이는 흔히 '엄친아'와 '엄친딸'이라는 말이 연상될 정도로 그들 가족의 겉모습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탄탄해 보인다. 


슈키치의 옛 동료들은 그의 자식들이 출세한 모습에 부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좋은 점만 가지고 있을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가까이서 실제로 겪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는 타인의 좋은 점만을 부각시켜 바라보고, 나머지는 우리 머릿속 상상으로 채워 넣기 때문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다. 카메라가 되어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처럼 다양한 고충과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게된다. 영화 『동경 이야기』는 이러한 가족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며, 겉으로 보기에는 번듯한 가정도 그 안에는 여러 고충과 상황이 있고, 그들의 삶 또한 부러움의 대상만은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한다.






가깝고도 먼 사이, 가족

손자들도 노부부를 꺼리는 모습

노부부는 동경에서 자리 잡은 자식들을 찾아갈 생각에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그에 비해 자식들은 부모님의 방문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각각 병원과 미용실을 운영하는 장남 코이치와 장녀 시게, 그리고 바쁜 일상을 보내는 다른 자식들까지, 본인들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자식들에게 부모님은 환영받는 방문객이 아니라 일종의 부담으로 느껴진다. 슈키치와 토미는 내심 오랜만에 만나는 자식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자식들은 서로에게 떠넘기기 바쁘다. 이는 현대 사회 가족들의 표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식들의 모습을 통해 노부부가 짐짝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게, 부모님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온천에 보내자는 시게의 의견에 장남 코이치도 동의하고, 노부부는 온천으로 향한다. 저녁까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지만, 밤이 되자 왁자지껄한 소리에 밤잠을 설치게 된다. 그 온천은 밤이 되면 유흥과 도박이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놀이터였고, 결국 노부부는 반쪽짜리 선물에 일정보다 빠르게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온 부모를 보고 짜증을 부리는 시게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졌다며 징징대며 불평한다. 이 장면은 시게의 이기적인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던 순간이기도 하며, 마치 우리가 부모님에게 투정을 부리는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이런 자식들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노부부는 내색하지 않는다. 마치 부모로서 자식들을 배려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말이다.






가족 단위의 변화, 개인의 시대

좌 장남 코이치, 우 장녀 시게

『동경 이야기』는 마냥 행복하지 않은 쓸쓸한 이야기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베풀었던 사랑에 비해 자식들이 되돌려주는 효도는 밀린 방학 숙제를 순식간에 해치워버리듯, 코이치와 시게의 주 대화 내용은 부모님이 무엇을 좋아할지가 아닌, 어떻게 시간을 땜질할지다. 그렇기에 세대 간의 간극이 보이고, 자식들에 의한 매정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 부분이다. 동경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우리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나 역시도 돌아보게 됐다. 본가에 가서 얼굴을 비추고 부모님 해주는 밥을 먹고 나의 공간으로 황급히 돌아온다. 때론 이 모든 게 형식적으로 느껴진다. 자취를 시작하고부터 이제는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보다 떨어져 있는 것이 더 익숙해진 것처럼.


그래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어쩌면 새로운 가족의 형태, 21세기 가족은 마치 이럴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시대에는 대가족 단위로 함께 한 집에서 모여 살았지만, 이제는 각기 각자의 집에서 생활하는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린다.




참 묘한 일이다. 자식보다 오히려 남인 네가,
더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구나.
―극 중 슈키치가 노리코에게






유대, 피보다 진한 관계

노리코 역의 하라 세츠코

그에 반해 슈키치와 토미에게도 진심을 보이는 인물이 있다. 혈육이 아니지만 가장 혈육처럼 행동하는 며느리 노리코이다. 그녀는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노부부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사하며 값진 시간을 선사한다. 토미는 노리코와 보낸 시간이 도쿄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말할 만큼, 노부부도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얼굴 한번 보고, 함께 밥 한 끼를 먹으며 자식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뿐, 비싼 온천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노리코의 행동은 부모가 원하는 「진짜 시간」이었을 것이다.






노리코에게 아내의 유품인 시계를 건넨다

동경 여행 이후 급작스럽게 토미가 죽고 나서야, 자식들은 그제야 부모를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도 자식들은 이기적인 태도를 보인다. 내려가기도 전부터 올라올 계획을 세우고, 셋째 케이조는 임종이 지나서야 집에 도착한다. 그리고, 한자리에 모여 추억을 곱씹기도 잠시, 시게는 어머니의 옷을 유품으로 갖겠다는 용건만을 표현한다. 오랜만의 식사 자리에서도 다들 떠날 생각에 급급하다. 뒤처리는 며느리인 노리코에게 맡긴 채 모두 자리를 뜬다. 슈키치는 말이 없다. 얌체인지 자식인지, 옆자리를 지키던 토미가 금세 그리워졌을 거라 생각된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슈키치는 노리코에게 전한다. 아내가 며느리의 집에서 잔 날 밤을 가장 행복했었다며 진심 어린 대화를 주고받기를 시작하는데, 동경 이야기의 정수라 해도 좋은 유의미한 씬이다. 이를 통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떠올랐는데, 피가 섞인 사이가 아니어도 더 가족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제 모두 돌아가는구나.
―모두가 모인 식사 자리에서 슈키치가






위치에 따라 달리 쓰인다


현재 자식의 입장으로써 동경 이야기를 이해했다면, 먼 훗날 부모가 되어 마주했을 때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지금 부모의 시야가 트이지 않는 상태에서, 노부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할 뿐, 나 또한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뵈러 오랜 시간 찾지 않은 적이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노부부 편에 서기도 하고, 자식 입장에도 서며 양가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30대의 동경 이야기는 인생의 무상함과 씁쓸한 감정이 주된 요소였다면, 노년에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짐작되면서도 복잡미묘하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얌체같이 행동하는 자식들의 행동에도 미소를 잃지 않던 류 치슈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지어 보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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