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여 마음을 열어라 <신세기 에반게리온> 리뷰
역사적인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국내 최초로 개봉한다는 뉴스 기사를 봤다. 최초라는 단어에 이건 극장 가서 봐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 유년 시절 에반게리온을 만화책으로 먼저 접한 나는 미루고 미루던 차에 넷플릭스를 켜고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수위가 높은 장면들로 인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는데, 특히 EVA 초호기가 3호기를 찢어 죽이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 한편에 남아 있다. 총 26화에 해당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내가 본 애니메이션 중 가장 결말이 가장 찜찜했다. 배경도 상당히 음울한 편이라 우울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에반게리온은 꼭 글로서 다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던 큰 꼭지 정도로만 다뤄보려고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깊게 파고들수록 골치 아파지는 애니메이션이다.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있듯이 적정선에서 이해하고 매듭짓는 편이 오히려 더 명쾌했다. 뿌려둔 떡밥이 많은 만큼 깊게 파고들수록 개연성 부분이나 허점이 많은 애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감독 안노 히데아키는 제작 기간이 촉박하여 전개가 어긋난 점을 밝히기도 한 부분에서 결국 의도치 않았는데 열광하던 유저들이 빈틈을 메워나가면서 몸집이 불어난 케이스이다. 그래서 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어드벤처 게임처럼 느껴졌다. 퍼즐처럼 유저들이 빈틈을 채워나가면서 또 다른 해석들이 붙어나가고 그게 다음 세대로 또 전해지고 고전소설처럼 재해석되며 대대로 이어져 왔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의 배경을 파헤쳐보면 경제의 붕괴로 일어난 청년세대의 좌절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취업의 기회를 잃고 현실에서 도피해 폐쇄적인 생활로 이어졌다. 이게 흔히 말하는 버블경제 붕괴이다.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간 오타쿠들 심리를 반영한 대표 캐릭터가 바로 신지이다. 작품 내에서 겐도는 신세기를 열 ‘인류보완계획’이라는 파괴적인 대책을 펼치지만, 결과적으로 이 계획을 방해하는 큰 걸림돌이 존재하는데, 그게 바로 인간의 마음 ‘AT 필드’이다.
초반 AT 필드는 에바가 적에게서 물리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으로 표현되지만, 후반에 가서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경제 붕괴 이후 상처가 두려워 면대면을 멀리하는 사람들을 정의하는 니트족, 오타쿠, 히키코모리는 일본 내에는 유행처럼 빠르게 확산하여 갔다. 가상의 세계로 도피한 이들은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게 AT 필드 안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사회를 경험한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상처받고 성장하며 사람을 통해 다시 치유해 나갈 수 있음을. 이 점에서 나는 사도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성장하게끔 만드는 ‘인생의 고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고난의 벽을 넘어서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감독은 결국 “공포를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자!”라고 청년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벽을 치고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킬 것인지 벽을 허물고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 신지는 결국 후자를 선택하며 그 유명한 “오메데토!” 엔딩을 맞이한다. 우리는 AT 필드를 해제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마주 보며 상호작용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래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는 이유가 성립된다.
에반게리온을 보는 내내 겐도는 왜 이렇게 제 아들에게 매몰찬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냥 작중 제일 미친놈”, “소시오패스 같은데” 등 많은 의견에 동의하고 있지만, 아버지인 만큼 가장 신지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23화 제레에게 레이 대신 리츠코를 넘기는 장면에서 이용한다기보다는 신지가 아스카의 마음을 거부하는 것처럼 본인이 상처받기 전에 인간관계를 잘라내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자세히 보면 신지와 가장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다. 누구보다 AT 필드가 강력한 사람이다. 그리고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그의 최후를 보면 신지를 멀리한 이유가 위 의견과 비슷한 뉘앙스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신지와 다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밥 먹듯이 하는 걸 보면 정상인은 아닌 게 정설이다.
첫 번째는 매력적인 설정과 디자인들. 미려하지만 투박한 전투를 펼치는 EVA에는 인간의 영혼이 담겨있다던가 파일럿들이 입는 전신 플러그 슈트 그리고 탑승 후에는 LCL 용액이라는 액체가 차오르는 등 신비로운 설정들이 그득하다. 감독의 사상을 더한 AT 필드라는 은유적 표현까지 오타쿠들은 파고들 요소에 열광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특히 EVA 초호기 메카 디자인은 작중 가장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독특한 설정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접목되어 유저들은 각자의 퍼즐을 맞춰가며 공유하거나 정보를 나르곤 했을 것이다. 입소문이 무서운 것처럼 애니메이션 방영 당시 에반게리온은 삽시간에 인기를 퍼뜨렸다.
두 번째는 저예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스무스하게 흘러가는 연출이다. 전개가 굉장히 스피디한 편이고 짧게 짧게 장면전환이 많지만 부산스럽거나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사이다처럼 시원한 전개가 유행하는 요즘 시대에도 전혀 뒤지지 않으며, 미사토의 맨션 같은 경우에는 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땜빵하는데도 EVA와 사도의 전투씬은 고퀄리티로 유지해 주니 크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취향을 재조립해 작품에 녹여낸 그의 테크닉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겠다. 괜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제자가 아닌가 싶다.
세 번째는 사운드가 주는 만족감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음습한 도시에 사도가 쳐들어올 때면 ‘Disive Battle’의 둥둥 울리는 팀파니 소리에 나도 덩달아 긴장하게 된다. 미지에 가까운 사도에게 허를 찔려 초호기가 그로기 상태가 되면 ‘The Beast Ⅱ’ 곡과 함께 신지는 각성하고 초호기는 울부짖는다. 이 외에도 상황에 잘 맞아떨어지는 OST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에반게리온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라면 예능에서 흔히 들어왔던 효과음들이 에반게리온 OST에서 상당수 갈무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Misato’라는 곡을 들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익숙한 소리에 바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무엇보다도 바보 트리오(신지, 켄스케, 토우지)가 등교할 때면 들려오던 매미 소리와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단순하지만 가장 편안함을 느꼈다. 우울한 분위기만 일어나는 세기말 배경에서 친구들과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는 신지의 모습이 가장 평화로운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셋이 함께 등장할 때면 밝은 분위기로 전환되는 이유에 더욱 애착이 갔다.
27년 만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 한국에 뜬금없이 개봉한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 일본의 청년들이 마음의 문을 닫은 것처럼 지금 한국의 청년들도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있다. 평생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어서 누군가를 책임지기보다는 자신을 먹여 살리기 급급하다. 청년들은 이제는 결혼하지 않으며 남녀는 문제를 서로에게 떠넘기기에 바쁘다. 기성세대들은 노력이 부족하다며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한다. 우리는 더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거대 AT 필드가 형성된 것처럼. 그래서 우린 에반게리온을 통해 벽을 허물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만 신세기를 맞이할 수 있다.
괴로운 걸 아는 인간이 남들한테도 잘하는 거야.
그건 약한 것과는 달라.
- 작중 카지의 대사
P.S.1 영화 리뷰 유튜버 백수골방님의 해석 영상이 가장 이해하기 쉽고 깔끔히 정리되어 있다. 복잡한게 싫다면 이 영상 하나로도 충분히 궁금증은 해결된다.
P.S.2 해석과 숨겨진 떡밥들을 찾아보느라 꽤나 시간을 쏟았다. 그 과정에서 에반게리온에 있어서 권위자(?)로 통하는 엄디저트님을 알게 됐는데, 방대한 내용의 글들을 인터넷상에 공유해왔다. 깊게 파고들고 싶다면 '엄디저트'라고 구글링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 글은 애니메이션 뉴스레터 애니알지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