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하려다 날씨가 좋아서 보낸 메시지. 답으로 온 너의 급 약속 제안에 내 하루 뒷부분이 찬란으로 채워진다. 그거 알아?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해 나는 내 마음이 너무 커서 이렇게 튀어나올 줄 몰랐어. 파란 하늘 초록 나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한강 끝도 없이 펼쳐진 길들을 둘이 걸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겠어. 발이 아프고 물집이 잡혀도 나는 한참을 둘이 보낸 시간을 곱씹어야 잠들 수 있어 나는 잘 안돼 그게 친구는 다 똑같은 친구라는 생각이 잘 안돼. 니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섭섭한 이유는 내 마음이 그보다 커서겠지. 공평하게 마음을 나눠주는 걸 어떻게 하는건지 모르겠어. 나는 치우치고 싫어하고 좋아하는 게 적당한 것보다 쉬워서 한번에 깊게 사랑해버린다 그만큼 기대하고 실망할 걸 알면서도 난 니가 좋아. 상대보다 늘 마음이 커서 실망하고 상처받고 내가 이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매번 깨닫는 과정이 쉽진 않지만 그래도 어떡해 내가 그런 사람인데. 사실 그걸 받고 호들갑 떨어주는 것 보다 태연하게 조용히 받는 편이 나아. 이게 티가 나는 순간마다 조금 부끄러워. 창피해. 너는 나한테 다 똑같은 친구 중 한 명으로 대할 텐데 내가 마음이 더 큰 게 혹시나 부담이 될까봐 더 같이 있고 싶다 아쉽다는 얘기를 마음 편하게 하진 못하겠어. 그래서 아까 집에 갈까 할 때 엄청 아쉬웠는데 같이 있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턱 막혔어. 내가 학교에 와서 얻은 게 있다면 너랑 서울을 돌아다녔던 기억들 그리고 나눴던 얘기들이야 그 이야기들을 붙잡아 활자로 기록해놓고 나는 힘들 때 외로울 때마다 그 글들과 기억들을 꺼내서 봐 다시 돌아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계속 계속 꺼내봐도 질리지가 않아서 신기해 힘든 시간들을 지나오면서도 나눴고 서로에 대해서 생각하고 분석하고 서로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형태로 건넨 위로와 사랑들이 내 마음속에 새겨져서 지금의 내가 됐나봐 그래서 지금이 제일 좋아
가만히 몇십 년 뒤를 생각해 날 오랫동안 괴롭혀온 뿌리깊은 숙원같은 공포에 대해서 가끔 저항없이 생각해버릴 때가 있어 그럴 때면 정말 무서운 생각 이 모든 게 쓸모없다는 생각을 해 부질없고 사소하게 날 힘들게 하는 모든 작고 큰 것들에서 부정적으로 해방되어버리고 싶은 무의식에 새겨진 욕망이 깨어나서 나는 가만히 무연고지에서 떠도는 사람이 되어 소파에 앉아 잠자는 도시를 봐
너는 내게 해주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지 완전히 틀린 생각이야 나는 우리가 나누는 대화들을 같이 본 풍경들 햇살과 바람들을 원료삼아 사랑을 키워 그 사랑은 내 삶을 지탱하는 기저가 돼 가만히 숨쉬고 있지 않은 것 같던 도시가 너랑 가본 곳들에서 만들어진 기억들로 아는 곳이 되고 평면에서 입체로 일어서서 내 또다른 연고가 돼. 깜깜한 방 혼자 누워있을 때가 나는 제일 무섭지만 방 밖에 내가 아는 곳이 늘어나고 나를 아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더 살게 해준 핵심적인 이유야 같이 밟고 바라본 땅과 하늘이 여기 있음을 생각하고 낮에 나눈 메시지를 떠올리면 가쁜 호흡이 진정돼
현실에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 내가 여길 떠나도 달라질 것 같지 않던 도시에 숨은그림찾기처럼 차이점이 생긴 거니까
사랑해! 알고 있지.
굳이 굳이 적어보는 게 필요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