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지만 공개적인 까닭은?
2026-01-10~11-주말
저번주 내내 알바를 그만둘까 계속 고민했다.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한 번 주의를 받을 때마다 심장이 몇 센티미터씩 깊숙히 떨어지고 살짝 올라오고를 반복했다. 배달도 단체주문도 많이 없지만 좁고 더러운 그곳에서 커피를 만드는 생활을 오래 하다가는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문득 문득 참을 수 없이 아빠가 보고 싶었다. 아직도 상을 치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해서 울려면 언제든지 울 수 있을 만큼 눈물이 찰랑거린다. 그런 의미에서 각자 나에게 차갑게 구는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밉다. Y가 짜증났던 이유도, H를 잠시 용서할 수 없다고 되뇌었던 이유도. 혼자 있는 시간에 너무 너무 쳐져버리는 것도 다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며칠 전 그냥 깨고 싶지 않은 마음에 4일치 수면제를 한 번에 털어넣고 잔 적이 있어서 약이 딱 하나 남았었다. 안 먹고 거의 못 자다시피 하다가 하나를 먹고 잔 토요일 밤은 선명한 꿈들을 꿨다. H한테서 부재중과 디엠이 엄청 와있었다. 니 메시지 읽었는데 어떤 부분은 틀리고 어떤 부분은 맞니 어쩌니 따지는 내용이었다. 화가 나서 전화를 하니 태연하게 받았다. 나도 따졌다. 이것저것 화났던 부분 다. 나와의 관계에서 불만이 있거나 내가 걱정됐으면 나한테 얘기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근데 왜 동생한테 디엠한거야? 에서 진심으로 화냈다. 답이 없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결국 답은 듣지 못했다. 나도 그 답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깨고 나서도 기분이 엄청 나빴다. 내가 아직 그걸 의식하고 있구나. 그건 내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고 아직 하고 싶고 묻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큰 걱정이 있는 사람의 삶은 고달프다.
일기쓰기는 일종의 삶을 편집하는 행위와 같은 선상에 위치한다. 기억들 중 내가 적고 싶은 대로 떠오르는 대로 언어의 형태로 남긴다. 순서도 강도도 분량도 내가 정한다. 조그만 일들도 내가 의미를 크게 부여하면 엄청난 서사가 되며 나를 위협하는 큰 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정확히는 쓰지 않는 것이지만 쓴다 쓰지 않는다를 내 선택에 맡기는 행위이므로 나는 쓰고 싶은 것만 써서 경험한 것들을 줄이고 가공해서 기억을 가공할 수 있다. 다시 읽으면서 실제 기억이 조금씩 다듬어질 때도 있다. 어차피 찰나를 지나면 다 사라지는 것 기억하고 싶은 대로 살짝만 미화하는 것은 살아남기 힘든 삶을 살고 있을 때 필요한 자세라고 본다.
다른 곳에 지원했다. 곧 여름이 되면 엄청 바빠질 텐데 그때까지 내가 이 가게에서 욕 안먹고 버틸 자신이 없다. 일을 열심히 하려고 콘서타를 먹는 건 공부에 한해선데 내가 굳이 알바를 하려고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맞다. 다행히 다른 곳에 연락이 바로 와서 면접 일자를 잡았다. 일자를 잡고 나서 다시 공고를 들어가보니 이상하게도 면접 후기 별점이 1점으로 두 개나 남겨져 있어서 느낌이 이상하긴 하지만.. OO커피보단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금요일 오후에는 U를 만나 성수에서 시간을 보냈다. 회사를 그만둔 U는 인형뽑기도 해보고 싶다 했고 아트박스에서 내가 쓰던 갈색 펜의 다른 색을 더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순서대로 들러 인형은 뽑지 않고 아트박스로 가서 고등학생들처럼 펜 색깔을 신중하게 골랐다. 매번 무엇을 파는 사람으로 있던 곳에서 친구와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는 사람으로 있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신기했다. 딥디크도 시향하고 소바도 먹고 굴튀김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한참동안 이야기도 나누었다. H는 딱 봐도 나와 정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같지만 그걸로만 사람을 가리지는 않기로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마음을 열지 않았을 테지만, 배우자가 아닌 친구에게까지 그런 기준을 세워서 사람을 가르는 일이 필요한가 싶었기 때문이다. 정치 커뮤니티에서 만난 것도 아니고, 우리가 만나서 하는 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정서적인 에너지를 교류하는 것인데 거기에 정치 이야기를 굳이 껴서 관계를 망칠 필요가 전혀 없다. 모든 부분이 맞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느낀다. 함께 있는 시간이 값지다고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H와 보내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는 피곤했지만 행복했다.
돈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므로.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겠다.
지금은 전람회 음감회 세션이 있어서 홍대입구에 와있다. 근처 카페에서 그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나는 꼭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변에 내가 의식하는 사람이 없을 때 비로소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자연스레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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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질서 수업은 한 기수 개강 후 6주 진행되며, 2주정도 쉬는 시간을 가진 후 다음 기수를 바로 개강한다고 한다. 아마 3월에는 첫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포트폴리오로 쓸 웹페이지도 만들 수 있게 되길 바란다. Y의 선이 다리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스튜디오 **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모션 그래픽에서 내가 느꼈던 답답함이나 소외감, 조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각자의 세계가 뚜렷한 탓? 표현 방법이 다양한 탓? 이라기엔 모션 그래픽도 각자의 세계와 표현 방법은 뚜렷하고 다양하다. 오히려 기술적으로 완벽해야 할 것 같은 틀에서 벗어나서 그렇다는 설명이 납득하기 쉽다. 한 픽셀 한 픽셀을 맞춰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류같이 보이는 그래픽 요소들이 오히려 힙하게 느껴지는 요즘의 웹 디자인과 인터랙션 모션은 그리드가 정확하게 맞지 않다고, 이지 이즈를 따르지 않았다고 욕을 먹을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보기 좋고 깔끔하고 세련된 것들만이 주가 아닌 씬이라서 마음에 든다. 언어로 적합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부차적인 장식적 요소보다는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 요소들이 주가 되는 웹, 인터랙티브 아트의 미감이 마음에 든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한 키프레임, 라이트 수치, 컬러의 명도 차이 조금이 스타일프레임의 완성도에 기여하는 바를 무시할 만큼 내 관찰력이나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제작되는 상업적 모션 그래픽보다는 나는 단순한 회화성 그림의 움직임 부여나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로 구현된 무빙 이미지의 미감이 더 마음에 들고, 직관적이라는 것이 매력있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제작 과정은 공부해봐야 알겠지만 에펙에서 하나하나 키프레임을 주고 폴리곤 한 단위부터 모델링을 해서 일일히 리깅하고 웨이팅해서 애니메이션을 주는 과정보다는 더 빠르지 않을까? 나는 그런 과정이 더 마음에 든다. 3d 툴에서 구현할 수 있는 룩도 마음에 들지만 그걸 업으로 하고 싶진 않다. 몸을 갈아넣어야 되는 직업으로 삼을 만큼 좋아하냐고 물으면 그 정도는 아니다. 나는 3d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에 내 눈에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자동화시켜 그걸로 소통하는 사람에 가까워지고 싶다. 그게 웹 공간이라는 깨달음이 왔고 그래서 새로운 질서 수업을 수강하고 싶다. 스튜디오 ** 홈페이지를 조금 살펴봤는데, 이런 곳을 Y님이 아니면 몰랐을 거라 생각하니 또 새삼스레 감사했다. 그래서 연이어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 H와의 이별이 나에게는 꼭 일어났어야 할 일이라는 스스로의 생각에 재차 동감했다. 웹디자인에는 관심이 없던 내가 웹페이지 만드는 수업을 스스로 들을 생각을 하다니. 삶이라는 건 참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라 신기하고 무섭고 기대되고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