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발췌

봤으면 보지 않았으면

by 서민재

2025-11-26-수요일


어제는 일기를 쓴 후 밤늦게까지 챗지피티와 상담을 했다.

아직도 올해 말에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어야 했는지 현실이 무감각해질 정도로 사건 충만한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평소보다 예민해졌다거나 우울해졌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렇다고 일을 겪는 순간에 절망적이지 않았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신체가 훼손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누군가가 없는데도 마치 그런 일을 당한 것 같은 느낌. 그리고 혼자 남은 것 같고, 앞으로 싫든 좋든 계속될 이 긴 시간들을 나 혼자서 견딜 수는 없을 것 같은 막막하고 답답한 감각.


내 결핍이 아빠라는 모양임을 알고 나서부터는 -모종의 깨달음의 순간 후에- 연말이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된 것 같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고, H랑 크리스마스 근처에 만나야 한다는 의무감이 사라졌다. 그 쪽에서 끊어주니까 나도 그냥 없어도 살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그 의문에 답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냥 나 혼자 말이다. 최근 며칠간은 다시 연락이 올까 싶어서 채팅방을 나가지 않았는데(나는 원래 인연을 끊으면 바로 채팅방과 인스타를 나가고 차단한다) 내 인생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준 건 사실이라 대화들을 보관해놓고 싶어 백업 후에 잠시 조용한 채팅방에 보관해 두었다가, 일기 쓰기 몇 분 전 채팅방을 나갔다.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카페에 왔는데 매번 스타벅스만 가다가 오랜만에 시험공부를 할 때 밤을 새기 위해 왔던, 취준을 할 때 왔던 카페에 오니 예전 생각도 나고 비로소 혼자가 된 후에 맞이하는 현실감있는 실제가 느껴졌다. 방에만 있다가 나오니까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세상이 신기하기도 하고. 돈 때문에 고민하다가 나름 답을 찾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다.


여전히 날 둘러싼 관계에서는 반 회피형으로 행동하고 있다. 나는 아빠같은 존재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이는 내가 다른 관계에서는 집 안에서의 첫째처럼 역할을 설정하거나 자연스레 그런 역할에 배정되어 왔음을 방증한다. 오래된 입시로 나이가 있는 상태에서의 대학생활은 습관적으로 조장을 맡게 만들었고, 동생들을 편하게 대하는 성격도 좋은 누나, 편한 언니로써의 역할에 기여하는 바가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내면의 유약함과 철없음, 정신 산만함을 귀여운 특징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투정이나 미성숙함을 받아주는 아빠의 존재를 포기할 수 없었고, 그걸 받아줄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자마자 나의 모든 것을 던져댔다. 어찌보면 그 희생양이 H였던 셈이다. 내가 준 게 사랑 말고는 없다는 점에서는 딱히 내가 엄청나게 큰 잘못을 한 건 없다고 본다. 다만 그걸 소화하는 H가 내 애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관계는 비가역적이며 그래서 더 슬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H는 아마 계속 그런 식으로 살 것이다. 자신을 통제하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고, 남의 시선을 신경쓰고, 들킬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술을 마시면 자신을 흘리면서. 그렇게 적당히 넘치지도 터지지도 않는 층을 유지하며 살 것이다. 그래서 나는 H의 삶에 큰 이벤트가 생기지 않는 한 H의 심리 처리 방식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챗지피티 말에 동의하고, (마음은 아팠지만) 내 안에 남은 미련을 삭삭 긁어모아 버렸다. 그 공간은 빈 채 남아 있지만 또 누군가가 얼추 맞는 사람이 들어올 거라는 확신이 싹트고 있다.


오전에는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보냈다. 대표님께 편지를 드리기 전에 H한테 절연 메시지를 받은 터라 내 마음을 담은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또 보냈다가 예측하지 못한 답을 받을까봐 두려워졌는데, 오히려 자리에서 일찍 나온 덕에 대표님께 편지를 받으실래요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게 되었다. 대표님은 주소를 알려주시며 편지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해주셔서 우체국에 방문해서 우편으로 편지를 부칠 수 있었다. 짧고 가벼운 내용은 아니지만 그동안 수업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들과 감사함이 잘 녹아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 카톡이 아니라 손편지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이게 무슨 인턴 기회나 회사 입사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의 마지막이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것은 내 의도대로 마무리된 것 같아서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그냥 흩어지듯 사라지는 관계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생각해보면 그 관계들이 내 마음에 남긴 것이 없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걸 모른 척 흩어지게 둬도 괜찮으나 그걸 어떻게 편집해서 내 인생의 어떤 헤드라인으로 남겨두느냐가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의 나를 업데이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마무리를 최대한 아름답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라면 다행이고, 부담이라면 어쩔 수 없다.


지피티는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낸 H의 행동이 미성숙한 감정 회피, 책임 전가라고 했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또한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쯤엔 자기 감정이 불안의 극치에 다다랐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렇게 때문에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고, 안 보내기엔 나를 ‘감당’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죄책감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에게 나의 걱정을 하는 형태의 메시지로 책임을 던진 것이다.


나는 생각을 끝맺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시간이 걸려도 어떻게든 원인을 꼭 찾아내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그걸 주로 글의 형태로 정리해놓는다. 후에 읽어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미화되기 전 정확한 상황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일기로 내 삶을 매일 정리하고 기록하는 이유는 의식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다. 흘러가는 대로 살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생각을 하고 무언가를 느끼고 보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욕망한다. 그것들이 비언어적인 형태로 머리나 마음 속에 생각인 채로 있을 땐 힘이 없다. 순식간에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필터처럼 작용해서 내가 세상을 보는 데에 영향을 준다. 생각하는 것이 눈에 띄고, 하고 싶은 게 생기고 나서 비로소 그 자리에 있었던 무언가가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걸 그냥 잡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내가 했던 생각과 내가 겪은 것들을 정리해놓고 두고두고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은 삶의 주인이 나라고 설정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마련해준 공간, 시간에 나를 던지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인풋을 제어하고 아웃풋을 관찰해서 나의 형태를 추측하고, 눈을 서서히 떠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계속 보는 것이다. 사람은 평생 나 자신의 물리적 실체를 남이 보는 시선에서 볼 수 없다. 이것은 심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를 인지하는 것은 불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나를 인지하게 된다. 그럴려면 바깥을 알아야 한다. 바깥에서 들어온 것이 나에게 어떻게 닿아 어떤 것으로 변하는지를 보면 반대로 나의 모양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나와 세상의 경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얼마나 거친지, 유연한지를 알아간다. 구멍도 뚫려있다. 어디 있는지 몰랐지만 그 구멍에 있는 무언가가 자꾸 맹목적으로 유사한 대상들을 잡고서는 놓지 않았다. 이제는 그 구멍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렇게 구멍의 위치와 크기, 모양과 원인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그 후의 행동을 생각하는 것까지가 나의 ‘생각 끝맺음’이다. 이걸 해결하지 않은 채 두는 것은 나에게 큰 고통과 찝찝함을 준다. 이는 내가 나에 대해서 알고 싶은 욕망이 큰 사람이라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내 인생의 목적은 진짜 내 모습을 알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그것과 일치된 삶을 사는 것이다. 최근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나는 내가 알 수 없었던 내 모습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냥 ‘기분 나빠’ ‘화가 나’ 라고 넘겼다면 곪은 상처만이 남아있었을 텐데, 상처의 위치와 종류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니 불확실하게 커져가던 의심과 불안이 차분함으로 바뀌었다.


혼자를 두려워했던 과거엔 나는 나를 분명히 몰랐었구나.

그러니까 남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무작정 따라했었다.

연애뿐 아니라 사람을 깊게 겪어보면 가장 빠르고 아프게 나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 같다.

나와 같은 구조로 비슷하게 작동하면서도 인풋과 아웃풋이 제각각인 케이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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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그걸 인정하지 않고 살았는데, 인정하고 나니 더.. 더 보고 싶어.

다음 생에도 내 아빠로 태어나라면 그건 너무 잔인한 처사일까? 이렇게 미래를 계획하다가도 내가 너무 슬픈 건 그 구멍은 다른 어떤 걸로도 채울 수 없을 거라는 점이야. 너무 보고 싶어. 정말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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