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우연히 친구들과 서울숲에 갔다가 매주 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그 주의 주말과 한가로운 평일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열 받은 채로 렌더링을 하면서 보내게 되었다.
그날은 유난히 가을 햇볕이 좋았고 평소라면 당연히 버스를 탔을 거리도 또 그렇게 했을 친구도 투정없이 거리를 걸었다. 걸으면서 여자는 자신이 한낱 날씨에도 어느 누군가의 뜻없는 고백까지 받아줄 수 있을 만큼 감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놀랐다. 아마 여자의 지인들은 여자보다 놀라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여자는 쉽게 예민해지고 그것을 잘 숨기지는 못해도 똑같이 예민한 사람에게 들켰으면 하고 바랬다.
둔한 사람들 속에 둔한 사람인 척 섞여서 사는 것은 편하긴 했지만 자신을 억지로 깎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저만큼 날카로운 단면을 가진 사람이 나를 알아봐준다면 아직은 나 덜 갈렸구나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