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2

양보는 없다.

by 써니짱

서로 이의가 없다는 서약서를 과장에게 제출하고 나니 과장은 일사천리로 특별승진 대상자 선정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아무리 자신감이 있어도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나도 반장들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 그런데 나를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전 00 반장이 모친상을 당하여 참석을 안 하게 되어 한 표가 날아간 것이었다.


우리 반장이야 당연히 나를 밀겠고, 경찰대를 갓 졸업(4기, 5기)하고 순환보직으로 형사반장을 하고 있는 2명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당신네들은 앞으로 우리 경찰의 희망이고 꽃인데 정에 끌리지 말고 앞으로 우리 경찰의 미래를 위해서 일을 열심히 한 사람에게 투표를 해라. 김 선배가 일을 더 많이 했으면 김 선배에게 투표하고 내가 일을 더 많이 했으면 나에게 투표를 해라”며 설득을 시켰다.


그리고 서무반장은 며칠 전 나에게 신세를 진 것이 있는데 나를 안 찍을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하면 투표 1주일 전 평리파출소에서 사기 수배자를 피해자 신고로 검거하여 아침 월요조회 참석을 하면서 데려와 수배담당 서무에게 인계를 했는데 월요일 각 파출소에서 들어온 문서정리를 하는 사이 수배자가 슬그머니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1시간 정도 지난 뒤에야 수배자를 인계받은 서무반에서 도주 사실을 알게 되어 난리가 난 것이다.


검거하는 것이야 없어서, 또는 몰라서 검거를 못 할 수 있지만 검거하여 온 피의자를 놓치는 것은 전쟁에서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가 돼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를 못한다는 말과 같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피의자 도주사건은 근무태만에서 일어나는 일로 담당자는 징계 처분을 받는다.


나는 외근을 한다며 밖에 나가 있었는데 과장으로부터 호출되어 사무실로 들어오니

“김 형사 큰일 났다. 파출소에서 검거하여 온 수배자를 서무에서 인계를 받았는데 놓쳤다. 어떻게 해서든지 잡아야 한다,


피해자가 기자에게 알려서 매일신문 기자가 알고 있는데 그 기자가 저녁때까지 잡아오면 모른 체 한다고 했으니 빨리 잡아와라”라고 하는데 도대체 도망간 놈을 어떻게 잡을 것이며 도주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기범을 어디서 잡을 것인지 난감하였다.


우선 인적사항과 전과, 범죄 사실들을 확인 후 주거지나, 친구, 지인들을 파악해서 다녔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평리 0동에 있는 세자창 주인인 김달웅(가명)이 도주한 수배자와 친한 친구라는 것을 알고는 나보다 나이가 3살 정도 어린 김달웅을 세차장에서 만나

“야! 김 사장 한번 도와줘야 되겠다.”

“형님 뭔데요?”


“니 친구 양준수라고 있지?”

“예! 나하고 친한데요 왜요?”


“그 자슥이 아침에 경찰서에서 내뺐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빨리 잡아야 되는데 큰일 났다. 못 잡으면 우리 직원 다치는데.. 어차피 잡힐 것이니 그냥 빨리 오라고 케라.”


“형님! 도망간 놈을 내가 우째 압니까?”


“지랄하지 말고 딴 놈들한테 연락해서 찾아라.”

“아이고 형님! 할끼 있고 안 할끼 있는데 내가 설사 연락이 돼도 어째 오라고 하겠습니까?”


“인마야! 니! 나 안 볼래? 직원이 다치면 내가 너 가만 두겠나?”

“도망간 거는 그놈인데 왜 나한데 그럽니까?”


“어차피 잡힐 거 애 먹이지 말고 들어 오라케라! 뭐 들어가 봐야 사기범들은 일찍 나오는데..”


“연락되면 내가 술을 한잔 산다고 하고 00 호텔 밑 나이트로 오라케라”하고 세차장을 나와 양준수가 다닐만한 곳을 몇 군데 다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흘러 저녁 21시가 지났는데 연락이 왔다.


“형님! 준수 연락이 되었는데 혼자 경찰서 들어가려고 하니 쑥스럽다고 하는데 형님 말처럼 00 호텔 나이트로 가겠습니다.” 해서 00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술을 한잔 먹인 뒤 경찰서 유치장에 입감을 시키고 지휘계통으로 보고를 하니 과장부터 칭찬이 말이 아니었고 서무반 전체와 징계를 먹어야 할 담당자는 그저 고마워할 뿐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의 투표라 당연히 서무반장은 나에게 투표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2:5 정도로 내가 이길 것으로 생각을 하고 과장실에 들어가 반장들 앞에서 각자 소견을 이야기하고 사무실에 와서 기다리는데 3;4로 내가 결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겼으니 관계가 없지만 2;5로 생각을 했는데 3;4라고 하니 조금은 이상했지만 반장 한 명이 투표 전 과장이 김 선배를 지지하는 말투를 듣고는 그렇게 투표를 한 것이었다.


투표결과 소식을 들은 사무실 형사 50여 명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을 하지만 일부는 어린 내가 경사 특진을 올린다고 하니 시기질투 어린 눈으로 보는 형사들도 있었지만 격려해주는 선배들도 많았다.


그 후 지방청 심사위원회에서는 본청 특진 약속이 있었다는 것 등이 작용하여 1991. 12. 17 경사로 특진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여 한 파트너가 1년에 같이 특진을 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1992년 초 심사승진발표가 있었는데 김 선배 또래의 유형사가 “야! 김 형사! 너 때문에 내가 이번 심사에 떨어졌다.”

“형님! 왜 내 때문입니까?”


“김 00가 특진을 너한테 져고 나서 자존심이 상했는지 내가 심사로 승진하려고 다해 놓았는데 김 00이 차고 들어와서 내가 안 되었는데 그것은 전부 김 형사 너 때문이다.”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하고는 1993년도에 심사승진을 하셨다.


계급사회에서는 계급이 깡패라고 무어라고 해도 계급이 높아야 말발이 선다.

특히 보수적인 형사들한테는 계급을 빨리 안 올라가면 그만큼 말발이 안 서기 때문이다.


그 후 우리 조는 더더욱 열심히 범죄자들을 잡기 위하여 활동을 했다가 성서경찰서에서 발생한 개구리 소년실종 사건에 또 차출이 되어 부산, 경남지역 출장수사를 했었다.(기히 연재하였음)


개구리 소년에 동원되어 수사를 하던 중에 또 거성관 방화사건이 발생되어 원대 복귀하여 사건을 처리한 후 다시 개구리 소년 수사를 하게 되었고 프로로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나의 조원을 하였던 파트너, 잘생기고 키가 큰 배 00 형사는 일을 한다고 집에 잘 들어가지 못하자 부인이 의부증(疑夫症)이 생겼고, 남편이 일을 핑계 삼아 놀고 있는 줄 알고 야간에 일을 하고 있을 때는 경찰서 정문 앞에서 기다리는 등으로 곤란하게 하자 직장도 좋지만 가족을 지켜야 한다며 몇 년 뒤 사표를 내고 퇴직을 했다.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내지만 그때는 너무 아까웠고 나로 인해서 온전한 가정을 깨뜨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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