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국민학교 5번
그날
태형이는 소니 오락기를 학교에 가져왔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애들을 부르러 간다.
“야, 너희들 이거 알아? 우리 아빠가 사준 건데. 나 없을 동안 건드리면 죽을 줄 알아.”
태형이가 남기고 간 말에 남자애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옆에서 그걸 보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오은수가 문제집을 들고 말했다.
“이거 3번 답 2 아니야? 아까 네가 1번이라 한 것 같아서 내가 풀어보니까 2번이더라고.
수학시간에 내가 풀던 문제집을 보았나 보다.” 아까 잘못 풀었던 문제다.
“누가 너한테 물어봤어. ”
“저리 가줄래.”
나는 손으로 오은수를 밀었다. 세게 민 건 아니었다.
그냥 가까이 오는 게 싫었고 아는 척하는 게 귀찮아서 밀어낸 것뿐이었다.
오은수가 뒤로 비틀거리다가 태형이 책상에 부딪혔다.
탁.
오락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깐 조용해졌다.
다른 반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태형이 얼굴이 굳었다.
“이거 누가 그랬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다. “오은수가 친 것 같은데.” 다른 애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형이가 오은수 쪽으로 걸어갔다.
“야, 너냐?”
오은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울림은 딱 한 번이었고 교실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그때 뒤에서 소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얘들아, 그만해. 너무한 거 아냐.”
교실이 금방 조용해졌다. 그때 소리가 앞으로 나왔다.
“야, 박태형! 여자를 때리면 어떡해. 은수야, 괜찮아?
소리가 오은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손을 잡으려다 잠깐 멈췄다가 다시 손등을 살짝 건드렸다.
오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날 알았다. 나는 밀었지만 맞은 건 내가 아니었다.
은수는 앞으로 나갔고 태형이는 조용해졌고 소리는 자리에 앉았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교실은 다시 돌아갔다.
아이들은 다시 오락기 이야기를 했고 오락기는 멀쩡해 보였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종이 올리고 오은수가 다시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나는 문제집을 펼쳤다. 아까 틀렸던 3번 문제를 다시 봤다.
2번이었다. 나는 아무 표시도 하지 않았다.
잠깐 손을 멈췄다. 아까 오은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거 3번 답 2 아니야?
나는 그때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밀었다.
나는 그때 틀린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연필을 들었다.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고 누군가 먼저 밀려난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