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정숙희

새천년국민학교 8번째 이야기

by 아지song

4학년 1반 교실에 한 여자가 들어왔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파마머리. 베이지색 투피스 정장.

안에는 핑크빛 블라우스를 단정하게 받쳐 입고 있었다.

여자는 아이들을 둘러보지 않았다.

곧장 녹색 칠판 앞으로 가 하얗고 긴 분필을 집어 들었다.

교실은 조용했다.

그녀는 칠판에 이름을 세로로 써 내려갔다.

그 옆에 한자까지 또박또박 적었다.

글씨를 쓰는 동안 한 번도 아이들을 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자기 치마 끝에 가 있었다.

이윽고 분필을 내려놓은 여자가 뒤돌아섰다.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내가 이 반 담임이야.

나는 성질이 아주 더러워.

올 한 해 잘해보자.”

소개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녀는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그 말은 강력했다.

숙제를 처음 내준 날, 몇몇 아이들이 해 오지 않았다.

그날 그 아이들은 교실 앞으로 불려 나와 서로 마주 보게 섰다.

“너희는 내가 내준 숙제를 안 해 왔지. 그건 나를 무시한 거야. 그럼 선생님도 너희를 무시해 줄게.”

아이들은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서로 때려.”

정숙희는 서로의 뺨을 때리라고 했다.

“한번 제대로 망신을 당해봐야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지.”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못했다.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녀가 아이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숙제를 안 해?”

그리고 첫 번째 아이의 뺨을 올려붙였다.

짝.

교실 안에 소리가 번졌다.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정확하게 열 번의 소리가 교실 안에서 끊어뜨려 울렸다.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이들은 모두 숙제를 해 왔다.

그녀의 이름은 정숙희였다.

그녀의 벌은 언제나 기괴했지만 그녀의 의상은 언제나 단정함의 표본이었다.

햇살이 비추는 아침이면, 교실 앞 왼쪽 탁자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책상 위 커피잔에서는 하얀 수증기가 천천히 올라와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손에는 둥글고 긴 나무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그 막대기는 교실에서 그녀를 언제나 더 커 보이게 만드는 지휘봉 같은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1교시가 끝나면 20분 정도의 공식 간식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가져온 과자를 책상 위에 꺼내 놓고 먹었다.

월요일 오전 아홉 시가 되면, 각 반의 선생님들이 4학년 1반 교실로 모여들었다.

아이들이 의자를 내어놓으면 선생님들은 교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아이들이 가져온 간식을 거두어 갔다.

선택된 간식을 가져온 아이의 표정은 밝다.

과자의 절반이 공물처럼 걷혀 나가도 오히려 기분은 좋아 보였다.

지아는 아예 선생님이 드실 쿠키와 커피를 따로 준비해 와 책상 위에 올려두곤 했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지아는 만 원짜리를 받아 들고 사과를 사러 달려갔다.

선생님의 심부름을 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날 간식의 중심도 대개 학부모운영위원이던 지아 어머니가 챙겨 보낸 것들이었다.

오전 아홉 시.

햇살이 교실 유리창을 비스듬히 통과해 들어오고, 작은 책상 위에는 부스럭거리며 간식 봉지들이 놓였다. 선생님들은 줄 사이를 걸으며 그것들을 집어 갔다.

스무 분 남짓 이어지는 그 시간 동안, 간택된 간식의 주인은 영광을 얻었고, 그냥 지나쳐진 책상의 주인들은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다.

1990년대 어느 가을날, 지아는 사과를 사 들고 돌아오다가 창문에 비친 교실 안을 보았다.

선생님들은 평화롭게 간식을 먹고 있었고, 아이들도 자리에 앉아 과자를 먹고 있었다.

유리창 속의 교실은 한 폭의 정물화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햇살이 그 풍경 위에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지아는 한동안 그 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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