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지대

날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습니다.

by 아지song

어릴 적 우리 세대의 로망은 대기업 취업이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초고층 빌딩에 근무하며,

사원증을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다니는 것.

그것이 부모님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효도라고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20대를 마무리하며 최고층 빌딩까지는 아니어도 보기 좋게 높은 빌딩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처음 1년은 행복했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 어디엔가 소속되어 있다는 안도감,

“너 요즘 뭐 하니?”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직업을 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그게 뭐 하는 건데?”라고 되묻지 않는다는 그 사실.

한도가 나오는 마이너스 통장, 지금 생각하면 사소하지만 그땐 분명 행복이었다.


5년이 지나자 회의감이 들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중 자아실현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직업을 가진다는 것이 자아를 실현하는 길이라 믿었건만.

현실은 자아를 접어야만 무탈했다.

그래도 버텼다. 어렵게 들어온 자리였고,

누군가는 부러워했으며, 또 나가면 나는 그저 나이 많은 퇴사자가 될 뿐이니까.

“열심히 살자.” 또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그 말로 스스로를 붙잡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처음 발을 디뎠던 그 건물은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았다.

거대한 닭장처럼 보였다. 출근길의 비슷비슷한 옷차림, 같은 자세로 컴퓨터 앞에 웅크린 모습들.

높게 쌓인 뜬 장 안에 질서 정연하게 배치된 닭들 같았다.

힘 있는 라인을 따라 모여드는 무리,

반대편의 허점을 발견하면 일제히 달려가 부리로 쪼아대며 먹이와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


우리가 하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매일 비슷한 규격의 알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생산해 내는 일.

점심시간이 되면 모이를 기다리듯 일렬로 이동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조금씩 닭이 되어갔다.


규칙적인 시간에 울고, 비슷한 알을 생산하고, 비슷한 모이를 쪼아대던 어느 날,

문득 창밖을 보니 두루미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유난히 힘찬 날갯짓이었다.

고개를 숙여 나를 보니 짧고 엉성하지만 날개 비슷한 것이 달려 있었다.

‘나도 날개가 있는데 날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중얼거렸다.

옆에 있는 동료는 중얼거리는 나에게 말했다.

너는 닭이고 저 새는 두루미야.

같은 조류라고 다 새는 아니지.


그래도 나는 닭장 주인에게 가서 이제 닭장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주인은 한참 나를 보더니 말했다.

“거울을 보렴.! 나이 들어 털은 빠지고 그 짧은 날개로 어디를 가겠다는 거니?

그리고 너는 모르겠지만 네가 생산한 알은 우리 닭장에서 나왔기에 1등급이 될 수 있는 거야.

닭장 안은 안전하다. 튼튼한 우리가 청설모로부터 너를 지켜주고 있던걸 모르니?.

네가 아파서 며칠 알을 생산하지 못한다 해도 사료는 줄이지 않지.

나는 인자한 주인이거든.

그는 덧붙였다. “밖으로 나가면 너는 청설모의 먹이가 될 거다.

꼬챙이에 꿰여 전시된 닭들도 부지기 수지.

그래도 내가 특별히 배려해서 정량의 알만 생산해 준다면

늙어서 치킨집에 넘기지 않고 농장으로 보내주지.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알을 많이 생산한다 해도 정량의 사료는 늘지 않는다.

또 청설모의 발톱보다 우리 안의 부리가 때론 더 날카롭다는 걸.....


고개를 들자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넓어 보였다.

설령 내가 두루미처럼 날지 못한다 해도....

비둘기나 참새처럼 작고 날개가 짧은 새들도 잘 날아다니지 않는가.

그래도 ‘꼬챙이’라는 말에 선뜻 나가길 주저하고 대신 다른 지역의 닭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일시적으로 닭장 문은 개방되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만 뛰어내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뜬 장을 나오는 것은 쉬웠다.

닭장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첬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닭장밖을 뛰어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초면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닭장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정기적인 사료는 없다. 밤이면 청설모가 나올까 두렵고,

치킨집 앞을 지날 때면 발걸음이 절로 떨려온다.

내가 생산한 알은 똑같은 품질임에도,

주인말대로 누구 하나 도장조차 찍어주려 하지 않는다.

뒤뚱거리는 내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도 애처롭다.


그래도

아직 살아는 있다. 날개를 퍼덕여 보지만 날아오르지는 못한다.

대신 비둘기의 방향을 따라가 먹이를 찾고, 처음 먹어보는 풀잎도 뜯어본다.

아직 두루미처럼 날지는 못한다. 아마 비둘기처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뜬 장 밖에도 나는 아직 살아있다.

풀때기는 맛이 없고 갈색털만 보여도 움츠려 들지만....

닭장 안에서 처다 보던 네모반듯한 사각하늘보다, 지금의 하늘은 훨씬 높고 푸르다.

비리고 미적지근한 그 온기대신, 미세한 깃털을 가르는 공기의 차가운 결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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