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이지 Aug 09. 2024

나는 오이지입니다

Wow! Pickle!

잠에서 깨서 부엌으로 들어오는 둘째가 말합니다.

피클 아니고 오이지야.

둘째는 눈이 동그래집니다.

오이지는 또 뭐지? 하는 표정입니다.

큰아이는 어릴 적부터 김치를 물에 씻어 열심히 먹여왔었기 때문에 매운 김치를 너무 좋아하지만 둘째는 미국에서 육아하며 우리 음식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김치를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김치찌개나 김치전은 먹으니 아주 못 먹는 것은 아니겠네요.


나의 필명은 오이지입니다.

글을 쓰자 마음먹던 무렵 가장 그립던 친정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아삭하고 청량했던 오이지.

음식을 잘 먹기도 하고  좋아했던 딸부잣집에  넷째 딸은 매일 엄마의 음식에 감탄했습니다.

도대체 엄마는 음식에 뭘 넣길래 모든 음식이 맛있지?

어린 마음에도 늘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덥디더운여름날 차가운 물에 예쁘게 썰어 동동 띄워진 오이지는 낯설었습니다.

그렇지만 참기름깨소금 넣어 맛깔나게 무쳐낸 오이지무침은 내 영혼을 모두 뺏기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아마도 그날부터입니다. 오이지를 사랑한 건..


미국에 오니 오이지용 오이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그동안 그리워하다가 짧지만 귀여운 샐러드용 오이를 사서 오이지를 담가봅니다.

샐러드용 오이와 할라피뇨에 소금물을 끓여서 부어줌
삼일이 지나서 좀더 삭은 오이지

소금물을 끓여서 부어주니 다음날부터 노랗게 예쁜 색을 내줍니다.

3일 후 큰 냄비에서 덜어내서 김치통 두통에 옮겨 담고 앞으로 7일 후에 부었던 물을 다시 한번 끓여 완전히 식혀주면 완성입니다.

 청양고추대신 미국할라피뇨를 섞어주었고  조선오이대신 샐러드용 짧은 오이로 만들었지만  골마지 하나 피지 않고 노란빛을 내니 그럴싸합니다.

미국에 생활은 한국 것들이 그리운 시간들의 연속이지만 대신할 수 있는 것들로 위로하며 비슷하기만 해도 만족하는 마음도 가르쳐주었습니다.

노랗게 예쁜 오이지

 날이 지나면 맛이 깊어지는 오이지처럼 나의 매일도 깊이 익어가길...

내가 나를 오이지라고 부를 수 있는 오늘은 가장 빛나는 나의 날입니다.

훗날 나의 아이들에게  오이지 같은 달콤 짭짤 고소한 유쾌한 엄마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엄마는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셨을까요..

많이 나눠보지 못했던  엄마와의 세밀한 추억들이  아쉬움으로 남아 마음 가득 퍼져갑니다.

나에게 오이지는 그냥 엄마입니다.

엄마의 오이지는 정말  최고였다고 말해드렸어야 했어요.

얼마나 좋으면 내 필명이 오이지라고 말씀드릴 수 있었다면 고운 엄마는 곱게 웃으셨을 텐데요.

엄마의 웃는 얼굴이 그립습니다.


일어나 배고파하는 둘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다 돌아서서 아이의  아침을 준비합니다. 일단 근사하게 아침을 차려주고 데리고 앉아 오이지 찬양을 이어가야겠습니다.


아삭한 하루가 되길 유쾌한 하루가 되길

오늘하루도 오이지!




작가의 이전글 기상청에서 알려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