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1972 실화)
1. 전쟁의 파편
우리 마을은 6·25의 포화가 스쳐간 자리에 세워졌다.
전쟁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무너진 흙벽 너머에는 군화를 신은 채 매몰된 다리 두 개가
오랫동안 땅 밖으로 나와 있었다.
적군이라는 이유로, 십 년 가까이 누구도 손대지 못한 채였다.
그 다리는 썩어가면서도
이곳이 한때 서로를 죽여야 했던 자리였음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마을과 교회를 잇는 삼거리에는
제복을 입은 미군이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새벽안개를 가르고 지나가는 형체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돌아가지 못한 혼령이라 불렀다.
죽음은 묻혔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2. 붉은 돼지감자
교회 뒤편 앵두나무 숲과 돼지감자 언덕은
아이들에게 금기의 장소였다.
전쟁 당시 흩어진 시신을 한데 묻은 자리라는 말을
우리는 어른들 몰래 들었다.
그곳에서 캔 돼지감자는
유난히 붉었다.
우리는 그것이
땅속의 피를 빨아올린 것이라 믿었다.
어느 해 질 녘, 숲 속에서 불빛 하나가
툭, 솟구치듯 일어났다.
우리는 달아났다.
어른들은 그 불이 도깨비라고 했다.
그곳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얇게 겹쳐진 자리였다.
3. 담력의 시험
1972년 어느 밤,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지름길 산길을 오르던 중이었다.
앞쪽에 형체 하나가 서 있었다.
산발한 머리, 사람의 윤곽.
그러나 사람이라 부르기에는
어딘가 어긋난 정지.
헛기침을 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그것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얼굴은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
한동안 숨을 고르지 못했다.
두려움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내가 그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며칠 뒤, 밤 9시가 넘어 뒷산에 올랐다.
담력을 키우려 톱을 들고 나선 것이다.
공포를 베어내듯
나무를 자르며 스스로를 단련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내 옆을, 소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말없이 지나갔다.
남자의 어깨에는 가마니에 싸인 형체가 메어 있었고
여자는 낮게 흐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공동묘지 쪽으로 향했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도망칠 힘도 남지 않았다.
그날 나는 알았다.
내가 기르려 했던 것은 담력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고 싶다는 오기였다는 것을.
4. 믿음이라는 방패
해답은 산 위에 있지 않았다.
집 안에 있었다.
어머니는 새벽길의 소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해군제복의 그 미군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셨고
교회에서 홀로 기도하시다
귀신을 마주쳤을 때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셨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그 한마디에는
두려움보다 큰 확신이 담겨 있었다.
옆집의 점순 누님도 마찬가지였다.
귀신이 나온다는 산길을
야간 근무 뒤에도 홀로 걸었다.
그리고 그 길 한복판에 멈춰 서서
기도를 한다고 했다.
그들의 담력은
강한 심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돌아갈 곳을 아는 사람의 평안이었다.
5. 평안에 이르는 길
나는 이제 안다.
인간은 죽음과 실패 앞에서
근본적으로 약하다.
담력은 그 약함을 지워주는 힘이 아니다.
믿음은 공포를 없애지 않는다.
다만, 그 공포가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한다.
어린 시절 붉은 돼지감자를 떠올려도
이제 가슴이 조여오지 않는 이유는
내가 더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귀신을 통제할 수 있는 그분
그분의 이름이 내게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