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은
내 어린 시절의 바탕화면이었다.
쌀독도 찬장도 비어 있었다.
밥솥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 안에서는 더 이상
찾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들로, 산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들판을 돌아다녔다.
먹고 죽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식량이 되었다.
사람들은 봄을
아름다운 계절이라 말하지만
우리에게 봄은
가장 배고픈 시기였다.
겨우내 먹었던 것은 떨어지고
새로 거둘 것은
아직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 들판에는
우리 같은 아이들이 많았다.
네댓 명이 어울려
들판과 산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다.
삘기라 부르던 새순도 먹었고
찔레의 새순도 먹었다.
찔레순은 껍질을 벗기면
연한 속살이 나왔다.
하지만 몹시 배가 고플 때는
그럴 여유도 없었다.
가시에 찔리면서도
그냥 씹어 먹었다.
풋내와 약간 떫은맛이
입안에 번졌다.
그래도 그것은
봄 들판이 내어준
귀한 식량이었다.
삘기나 찔레는
오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깐 올라왔다가
금세 억세 지거나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는
아카시아를 오래 먹었다.
꽃이 피면
달콤한 향이 들판에 퍼졌다.
우리는 꽃을 따먹었다.
꽃이 시들 때까지 먹었다.
꽃이 떨어지면
어린잎도 뜯어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정말
작은 염소들이었다.
어디에 먹을 것이 있다는 정보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쉽게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늘 함께 다니던
친구가 하나가 있었다.
먹을 것을 먼저 발견한 쪽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손짓으로 불렀다.
어느 봄날
그 친구가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다.
영양실조였다.
내가 찾아갔을 때
친구는 힘없이 누워있었다.
콧잔등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마지막 순간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기를 찾아온 친구는
나 하나뿐이었다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도 봄이 되어
벌판을 걷다가 찔레를 만나면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가시 사이로 돋아난
어린 순을 바라본다.
그 순을 보면
그 친구가 떠오른다.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
머물던 시절.
들판을 돌아다니던
작은 염소들 가운데
이제 남아있는 것은
아마
나 하나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