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식은 또렷했다.
누구보다 예민했고, 시력 역시
지극히 정상이었다.
시내 외곽의 우리 마을,
도심에서 6km쯤 떨어진 곳이다.
도로를 따라 걸으면 한 시간,
산길을 이용하면 40분 거리였다.
1972년 6월 어느 날,
금속공장에서 야간을 마치고
나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달빛마저 침침했다.
산으로 들어서기 전,
논둑길을 바삐 걸었다.
노래를 흥얼거렸다.
밤길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소문 때문에
밤에는 그 산길로 다니지 않았다.
그날은 피곤했고, 배가 고팠다.
그래서 더 빠른 길을 택했다.
옷은 눅눅해졌고
논에서는 개구리 소리만 들렸다.
산길로 접어들어
백 미터쯤 갔을 때,
저만치 앞에
흰 물체가 보였다.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길은 좁았다.
“저게 뭐야…”
혼잣말을 내뱉으며 다가갔을 때,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말하던
귀신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발걸음이 멈췄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흰 드레스가 아닌
소복을 입고 있었다.
긴 머리는 앞으로 늘어뜨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힘을 다해 헛기침을 했다.
길을 막고 선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보지 않았다.
마치 밤하늘을 바라보는 듯했다.
너무 무서워
나는 끝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거리가
3미터쯤 가까워졌을 때,
멈췄던 내 발걸음이
저절로 움직였다.
제어가 되지 않았다.
스치듯 지나갔다.
팔꿈치가 닿았지만
아무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심장의 소리는
몸 밖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를 지나친 뒤
나는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별빛도 없는 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뛰기 시작했다.
20분 가까이
멈추지 않고 달렸다.
집에 도착해
문고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진땀이 흐르고
손이 떨렸다.
아침 식탁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려다 말았다.
해봤자
돌아올 말은 뻔했기 때문이다.
“왜 그 길로 왔어.”
세월이 흘렀다.
도시개발로 산은 사라졌고
그 무서웠던 골짜기도 없어졌다.
그 뒤로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그 산길뿐 아니라
마을 곳곳에 나타나던 것들.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