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뒷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다.
역사의 숨결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선 소나무들,
봄이 오면
산은 철쭉으로 붉게 타오른다.
작지만 가파른 산길,
오르는 데는
늘 시간이 걸렸다.
정상에는 성터가 있다.
신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백제가 쌓았던 산성.
기억이 시작된 뒤로
그곳은 늘 나의 놀이터였다.
지금은 무너졌지만
돌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천년의 세월,
이끼가 겹겹이 내려앉아
시간을 붙들고 있다.
나는 그 돌을 만지며
세월을 더듬는다.
저 멀리 식장산까지
울려 퍼졌을
병사들의 함성.
그리고
한국전쟁.
이 산은 다시
사람의 피를 삼켰다.
여기저기 흩어진 탄피가
그날을 아직도 말해준다.
어른들은 말했다.
온 산이
미군과 인민군의 시체로
덮였다고.
그래서일까.
이 산의 철쭉은
유난히 붉다.
핏빛처럼.
철쭉 사이로
할미꽃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핏빛 꽃 옆에
고개를 떨군 꽃 하나.
손으로 만지면
부드럽게 스러질 듯한 그 촉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저 꽃은
떠나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들 곁을 지키고 싶은
한 어머니의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