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평의 시대
마을 어귀 미루나무 꼭대기에는
스피커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새벽은
그 금속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새벽종이 울렸네―”
잡음이 섞인 노랫소리가
잠든 공기를 찢으면
마을은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그 소리는 노래가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삽을 들고나가면
나는 삽보다 작은 아이였다.
“한 집에 한 명.”
몸이 아픈 어머니 대신
그 자리에 서야 했다.
돌을 나르는 여자들,
흙을 퍼 올리는 남자들.
두 시간 남짓의 노동.
대가는 빵 한 개.
빵은 음식이 아니라
허락이었다.
문제는 언제나 같았다.
“애는 빼자.”
“일도 못하는데 왜 줘.”
나는 그 말들을
내 앞에서 들었다.
결론은 늘 간단했다.
“아이한텐 주지 말자.”
그 말이 떨어지면
나는 사람 숫자에서 빠졌다.
그날,
요시꼬 아줌마의 허리춤에서
빵 두 개가 떨어졌다.
나는 그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툭.
내 몫이
바닥에 굴러가던 소리였다.
빵이 모자란 게 아니었다.
누군가 둘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배고픔보다
서열을 먼저 배웠다.
아버지도 늘 고개를 숙였다.
수확이 적은 해에는
더 낮게.
아버지의 허리가 꺾일수록
집안 공기도 함께 내려앉았다.
나는 뒤에서
말 없는 구조를 배웠다.
힘이 기준이 되는 법을.
세월이 흘러
나는 빵을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가끔
아이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몫이 사라지는 장면을 보면
미루나무 위 스피커가
다시 울린다.
사람 숫자에 드는 아이와
들지 못하는 아이.
이름은 달라졌지만
방식은 닮아 있다.
빵 한 조각은
결국 자리였다.
“너는 여기에 포함된다”는
작은 승인.
나는 그 새벽의 빈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의 몫이
조용히 사라지지 않도록
눈을 떼지 않으려 한다.
스피커는 오래전에 철거되었지만
명령은 형태를 바꾸어 남아 있다.
나는 그 소리에
다시 묻는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몫을
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