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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r 25. 2022

10. 『오딧세이』와 동태 복수법

   서양정신의 근간인 복수법과 주고받기 정신은『일리아드』편에서 상세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오딧세이』에 관련된 복수법에 관해서만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오딧세이』의 시작도 복수법을 실천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다름 아닙니다. 환대의 법칙을 어기고 오디세우의 집에 기거하며 왕비를 탐한 108명의 구혼자들은 모조리 오디세우스에 의해 처단 됩니다. 제니아의 원칙을 어겼다는 말은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결론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 정신을 무시했다는 말입니다. 이타카의 왕비 집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놀며 왕비를 탐한 그들의 행동은 결국 준 것은 하나도 없고 받기만 했으니까요. 그런데 환대법을 어겼다고 108명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면 복수법에 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복수법 즉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는 처벌규정의 기본 개념은 피해를 본만큼 피해를 준다는 동태 복수법입니다. 이 동태 복수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시킨 조각상이 있는데 바로 정의의 여신 디케의 조각상입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 있는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조각상은 오리지날 디케상의 변형된 버전입니다. 우리나라 버전은 생김새도 한국여인이고 눈도 뜬 채 법전을 들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디케상은 눈을 감고 있거나 눈을 천으로 가린 모습이며 책 대신 검을 들고 있습니다. 가린 눈은 심판자는 편견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고 검은 벌에 대한 응징을 상징하지요.


    그런데 둘 다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울은 정의의 핵심을 나타내며 바꿀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이 저울은 벌과 죄의 무게를 재는 용도 입니다. 즉 벌에 상응하는 죄를 물어야 하며 죄와 벌의 무게가 동일하게 계산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눈에는 눈”이 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목숨을 빼앗은 자는 목숨으로 갚아야 합니다. 상당히 심플하지요. 그런데 이게 신분이 엄격한 고대 사회에서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신분에 따라 목숨 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두 가문이 싸움이 붙었는데 두 하인끼리 싸우다 하나 죽으면 해결하기가 간편합니다. 죽인 하인의 목숨을 거두면 해결됩니다. 하지만 하인이 상대 가문의 주인 아들을 죽이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귀족 한 명의 목숨은 하인 한명의 죽음으로 갚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해결책은 계산입니다. 신분이 다른 두 목숨의 무게 즉 중요도를 저울에 달아서 정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주인아들 한 명의 목숨에 하인 목숨 10 명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해서 심판을 내리는 겁니다.

   

   이런 개념의 동태 복수법은 커트 러셀과 발 킬머 주연의 1993년 서부극  툼스톤 (Tombstone) 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보시면 더 빨리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서양의 동태 복수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대사이며 유튜브에서 더 레크닝 (The Reckoning)을 치시면 2 분 45 초짜리 영상이 나오는데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대사는 영어로 나오는데 해석은 제가 여기에 올려놓은 번역을 참고 하세요. 보안관으로 나오는 주인공 커트 러셀과 악당과의 교전이 있었고 주인공 혼자서 악당 여러 명을 총으로 쏘아 처치한 후 나오는 대사입니다.         



A: 저런 거 본 적 있어?

B: 들어본 적도 없는데. 전혀.

C: 그는 어디 있나?

닥 할리데이 : 물 위를 걷고 있지.

C: 또 다른 기적을 기대해 보자구  내가 링고를 아는데 그는 곧장 우리에게 달려올 걸

그들이 내 형제라면 나도 복수를 했을 거야.

닥 할리데이: 아니. 틀렸어. 그는 복수(revenge)를 한 게 아니고 계산(reckoning)을 한 거야.     



커트 러셀의 동생이 악당에게 살해당했고 주인공은 그 범인 일당을 죽여 원수를 갚는 장면입니다.  보안관 혼자서 여럿을 죽이는 장면을 보고 그를 물위를 걸으며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에 비유를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대사를 보시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말이 나옵니다. “저건 복수야.” 하니까 아니 그건 “복수”가 아니고 “계산”이야 하는 대사입니다. 복수와 계산?  이건 무슨 뜻일까요? 레크닝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첫 번째 뜻이 “계산” 두 번째 뜻이 “복수,” “보복”입니다. 닥 할리데이는 레크닝을 언급할 때 두 번째 뜻이 아니고 첫 번째 뜻을 염두에 둔 겁니다. 왜냐하면 “복수”가 아니라고 강조를 하면서 “계산”이라고 했으니까요. 복수와 계산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악당들에게 동생을 잃은 주인공의 관점에서는 동생 죽음에 간여한 악당을 물론 그의 패거리를 모조리 죽여야 비로소 복수가 끝나는 겁니다. 주인공 동생의 목숨의 가치가 그만큼 더 소중하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주인공 편에서 싸우는 이들도 이 생각에 동의를 하는 것이며 이런 셈법의 복수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닥 할러데이는 주인공의 복수를 계산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레크닝의 두 번째 뜻인 보복은 바로 이 계산에서 유래한 겁니다. 이 계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구가 바로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동태의 개념은 왕을 능멸한 자는 모조리 죽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킵니다.  죽음을 맞이한 구혼자들 가문의 입장에서는 이는 너무 과한 처벌입니다. 해서 그들은 오디세우스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오디세우스 왕국을 공격합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형국이고 이타카는 결국 내전으로 빠져 듭니다. 이러한 인간의 끝없는 복수의 싸이클을 끝 낼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가 바로 신입니다. 제우스는 오디세우스의 복수를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이타카의 왕과 적에게 이제 과거를 잊고 평화협정을 맺으라고 선언합니다. 제우스 심판의 저울은 왕의 능멸 죄와 108명의 처단을 동태로 계산하여 인정한 거라는 말입니다. 오디세우스의 고난에 찬 10년간의 방황의 이면에도 복수법이 존재합니다.  인간과 신들이 알게 모르게 엮이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른 인간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해결된다는 믿음, 그 벌은 죄의 무게에 따라 철저하게 계산되어 집행되어야 한다는 그 신념이 바로 서양 정신입니다.    

   

   호메로스가 죽은 지 500 년 정도 지나 예수님이 오셨고 고대법에  뿌리를 둔 사회 정의시스템에 의한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한 말을 듣지 않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내주어라. . .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마태복음 5: 38-45)



이제 ‘눈에는 눈’은 과거의 법이며 이제는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개혁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200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과연 우리의 정의 시스템은 화해와 사랑의 가치로 대체 되었나요?  이 질문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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