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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y 27. 2023

『로빈손 크루소』 :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 (1)

   1685년. 유럽에 계몽시대가 시작됩니다. 계몽시대는 영어로 Enlightenment Age (1685-1815). 즉 인간의 머리 안에 빛이 들어온 시기란 뜻입니다. 과거의 무지한 상태에서 벗어나 이제 자각하고 깨어났으며 이성과 경험 그리고 과학을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유럽인들 사고의 중심이었던 신학이 과학으로 대체되어 이제 신앙도 이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멀쩡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한 마녀사냥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된 때도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가치는 개인의 행복과 자유. 1688년 영국이 군주제에서 의회 민주주의로 바뀌고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들을 폐지시킨 명예혁명의 정신은 계몽시대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만든 우수한 화력으로 무장한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여 식민지를 세우고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경제적 문화적 약탈을 자행합니다. 계몽시대에 서구인이 주장했던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오로지 백인 남성만을 염두에 둔 유럽인들만의 가치일 뿐입니다.  


   유럽인들만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제국주의가 전세계로 뻗어나가던 이 시기. 당시 영국인들에게는 생소한 형태의 새로운 문학작품이 탄생합니다. 한 남자의 28년 간 무인도 생존기를 다룬  다니엘 디포의『로빈손 크루소』(1719) 입니다. 알렉산더 셀커크라는 한 영국인 선원이 지금 칠레의 영으로 되어 있는 마사티에라는 태평양의 한 섬에 조난 되어 4년 간 생존한 실제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쓴 이 픽션은 런던에서 나오자마자 4 쇄가 순식간에 소진되는 히트를 칩니다. 영국 최초의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이 작품은 성경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된 소설로 기록되고 있으며 304년 이 지난 지금 우리 국민 누구나 한 번 쯤은 동화, 애니메이션, 영화, 혹은 소설 등을 통해 접해 본 해양 모험 스토리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로빈손 크루소』의 원래 제목은 『로빈손 크루소의 삶과 기이한 모험 이야기. 요크 출신이며 선원인 그가 직접 들려주는 』 (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 Mariner, As Related By Himself). 책 제목으로 허구가 아닌 진짜 이야기임을 강조합니다. 내용도  섬나라에 사는 영국인이면 한 번쯤 실제 겪게 될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행이며 모험입니다. 주인공도 왕족이나 귀족 같은 고귀한 피를 가진 사람도 아니고 성경 속의 신화적 인물도 아니며 시작부터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나오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영국인들이 잘 아는 요크 출신의 선원으로 오다가다 쉽게 만날 법한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의 관심 또한 시대의 가치인 개인의 자유와 행복의 추구입니다. 세상에 나가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겁니다. 그가 만나는 적이나 난관도 현실적입니다. 입에서 불을 내뿜는 용이나 사탄 같은 괴물이 아닌 노예를 팔아 돈을 버는 해적들이며 그가 극복해야 하는 시련도 낙담의 늪이니 허영의 시장이니 하는 정신적 추상적 개념이 아닌 태풍, 파도 그리고 무인도 같은 실질적인 야생의 자연입니다. 게다가 주인공은 우아하고 화려하며 라임이 들어가는 시 같은 말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일상적인 회화체를 씁니다.  내레이션도 그동안 영국 독자들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인칭 시점인 나로 전개됩니다. 시작부분만 읽어도 우리는 벌써 주인공 내레이터와 알 수 없는 친밀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당시 영국 독자들에게 『로빈손 크루소』는 신세계였고 베스트셀러가 안 되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로빈손 크루소』는 모든 명작이 그렇듯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로빈손 크루소 하면 누구나 갖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홀로 살아가는 장발에 수염 덥수룩한 원시인 같은 모습의 남자입니다.  그는 난파된 배에서 가져온 기초적인 도구만 갖고 이성의 시대의 인물답게 자신의 이성과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야생에서 살아가는 강인한 그러나 영리한 남성상의 표본입니다. 그러나 이는 주인공의 표면적인 모습에 불과합니다. 다이제스트 된 동화 버전이나 혹은 만화 영화 버전만 보아서는 절대로 이 요크 출신 선원의 내면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2 회에 걸쳐 로빈손 크루소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가 왜 중요한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는 겉으로는 아닌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실낙원』의 아담과 이브 그리고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의 종교적 영적 그리고 문학적 후예입니다. 또한 그는 르네상스에 태어난 햄릿형 돈키호테형 파우스트 형 인간에 이어 18세기에 탄생한 또 하나의 새로운 인간형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이른바 경제적 인간형입니다. 우선 이 소설의 종교적인 면부터 살펴봅니다.       



『로빈손 크루소』의 종교적인 측면은 저자 다니엘 디포에 대한 이해로 시작해야 합니다. 영국에 왕정복고가 시작되던 1660년 런던에서 개신교를 믿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디포는 캘빈주의를 따르는 철두철미한 장로교 신자로 성장을 합니다. 캘빈주의 신자는 두 가지를 믿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며 두 번째는 예정론입니다. 전자는 하나님은 최고의 권위자이시며,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으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다는 의미이며 두 번째는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신의 은총에 의해 이루어지며 구원받을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 놓았다는 믿음입니다. 그는 개신교단의 교육기관인 모튼스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장로교 목사가 되는 것을 고려했으나 포기하고 포도주, 스타킹 류를 취급하는 무역상이 됩니다. 캘빈주의에 기초한 개혁신앙심이 투철 했던 디포는 찰스 2세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제임스 2 세가 가톨릭을 신봉하자 그를 폐위하자는 몬머스의 반란(1685)에 참가합니다. 그는 반란군이 참패하자 영국에서 추방되어 3년 간 유럽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윌리엄 오렌지공이 이끄는 개신교 세력이 제임스 2 세를 몰아내는데 성공을 하는 명예혁명(1688)이 일어나자 디포는 영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재개하나 비즈니스는 예전 같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는 엄청난 빚을 지고 파산하게 됩니다. 이 후 그는 부분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때 나온 작품이 바로 『로빈손 크루소』. 이 소설은 한때 목사 지망생이었던  저자의 종교적 신념과 빚에 쪼들리는 채무자로서의 현실적, 이성적 마인드가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결국 서로 타협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는 우선 전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로빈손 크루소』의 시작 부분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섯 문단의 원문을 두 문단으로 줄여 번역했습니다. )


   나는 1632 년 요크시의 남부러울 것 없는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 . . 이민자이신 아버지는 처음 헐에 정착하셔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버셨습니다. 사업에서 손을 떼신 후 요크시로 이주하신 후 양가집 규슈였던 어머니와 결혼하셨죠. 나는 두형제가 있었으나 형은 스페인과 전쟁 때 전사했고 둘째 형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셋째 아들인 나는 특정한 직종에 훈련을 받은 적은 없고 머리 속은 온갖 잡생각만 가득했죠, 나의 아버님은 옛날 분이시고 (ancient) 제게 엄한 가정교육을 시키셨고 제가 법조계로 나가기를 바라셨죠. 그러나 나는 바다로 가는 이외에는 나를 만족시킬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다에 대한 나의 동경은 아버님의 의지 아니 명령(commands)과  충돌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나의 친구들의 애원과 설득과 충돌했죠, 아마도 그런 나의 성향에는 치명적인 뭔가가 있어  내가 겪었던 불행한 삶과 연결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현명하고(wise) 진지한(grave) 나의 아버지는 내게 훌륭한 조언을 주셨습니다. 하루는 저를 불러 다정한 어투로 저를 나무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려는 이유가 뭐냐? 단지 너의 방황심리(a mere wandering inclination)탓이 아니냐? 이 아버지 집에서 그리고 네가 태어난 나라에서 좋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또 너만 부지런하면 내 재산을 불릴 수도 있지 않으냐? 그것도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면서 말이다. 바다는 절박한 사정이 있거나 아니면 해외 자연 탐험으로 유명해지려는 사람들같이 최고의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가는 거야.  . . .  힘든 육체노동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처럼 너무 불행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최상위 1%의 인간들처럼  교만하고 화려하고 야심 많은 삶도 그렇게 행복한 삶은 아니란다. 왕들도 최고의 환경에 태어난 덕에 얻게되는 비참한 결과에 종종 한탄을 한다고 하지 않니? 인생 최고의 행복은 두 극단의 중앙이고 최고와 최저의 가운데란다. 현명한 아버지는 진정한 행복에 대한 간증을 하시며 너무 가난해도 또 너무 부자도 안 된다고 하시면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5-6)            


    자세히 읽어보면 캘빈주의 시각의 성경이야기입니다. 핵심은 인간의 완전한 타락으로 인한 불복종입니다. 구약의 아담과 이브 스토리부터 신약의 돌아온 탕자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죽어라고 말을 듣지 않습니다. 원죄 때문이며 로빈손 크루소도  다르지 않습니다. 18세 열혈청년인 주인공 로빈손 크루소는 집을 떠나 바다로 나가고 싶어 안달입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아들을 말려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죠. 이 장면을 주의 깊게 보면 성경적 색채가 농후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방황심리를 지적합니다.『실낙원』에서 아담이 지적한 이브의 방황하는 버릇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방황은 불복종의 첫 단계였죠. 로빈손 크루소의 몸에도 이브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아버지를 오래되었으며 (ancient), 근엄하시며(grave), 그리고 지혜로우시다(wise)라고 강조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계획에 반대하며 쓰는 언어도 성경 구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계획에 반대하며 풍족함과 모자람 가운데 중간을 택하라고 충고를 하는데 구약의 잠언 30장 8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내가 속이고 거짓말하지 않도록 나를 도우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지 마시고 다만 나에게 매일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과 일치합니다. 또한 크루소는 자신의 생각에 확고하게 반대하는 아버지의 의사를 아버지의 명령(the commands of my father, 5)으로 표현하여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에게 지켜야할 명령과 연결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이를 어기는 것은 하나님과 아버지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것(the breach of my Duty to God and my father, 9) 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쿠르소의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 돌아온 탕자의 후예 로빈손 쿠르소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고 바다로 나갑니다.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순간입니다.  1651 년 9 월 런던으로 향하는 배에 생애 처음 올라타지만 배는 이내 폭풍우를 만나게 됩니다. 배가 뒤집어 질듯이 요동을 치자 아버지 말을 거역한 자신을 성경의 돌아온 탕자에 비유를 하며 자책합니다. 이제 아버지 곁으로 가기만 하면  다시는 바다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위험에서 벗어나자마자 언제 그랬나는 듯 다시 바다로 나갑니다.  그 당시 재테크 블루오션인 노예사업을 시작한 그는 노예를 사기위해 1659년 기니로 향하던 남미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 가 탄 배가 난파되고 그는 홀로 파도에 떠밀려 한 무인도로 밀려오게 됩니다. 이제 로빈슨 크루소는 인간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고립상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아버지 곁을 떠나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돈을 다 탕진하고 굶어가며 돼지농장에서 일하는 탕자의 신세가 된 겁니다.

   

   졸지에 무인도에 고립된 로빈손 크루소는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혼자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자연 속에서 자립하고 자생해야 합니다. 또한 외부와 단절된 채 혼자 살아남은 그는 이제 난생처음 자신을 성찰할 기회도 갖게 됩니다. 그가 무인도에서 구조되어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무려 28 년 간의 세월이 흐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포인트는 지금부터입니다. 디포는 로빈손 크루소가 겪는 28년 동안의 지난한 생존과정은 결국 우리의 삶은 결국 자신의 육체적인 생명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적 생명을 구하기 위한 투쟁의 길 임을 보여줍니다. 장소만 무인도로 택했을 뿐 그의 삶은 『천로역정』의 순례자와 다름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18세기 자연과 사회 경제 그리고 타자에 대한 당시 유럽인들의 가치와 사고를 여과없이 드러낼 뿐만 아니라 역사상 처음 등장한 새로운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지만 로빈손 크루소는 돈도 벌고 영혼도 구원받는 꿩 먹고 알 먹는 신앙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재벌 혹은 재벌 워너비 개신교 목사님들의 진정한 롤 모델입니다.  캘빈주의 신학이 18세기 계몽시대 이성과 만나 탄생시킨 이 새로운 유형의 크리스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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