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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Jun 02. 2023

『로빈손 크루소』 :돌아온 탕자 (2)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 욥기 23:10 )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기 42:10) 


『로빈손 크루소』는 지난번에 이야기했지만 해양 모험, 조난 그리고 무인도 생존기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불복종 시련 회개 구원이라는 전형적인 기독교 알레고리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계몽시대 캘빈주의 관점의 영적 여행입니다.     

   

   크루소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돈을 벌러 바다로 나왔다가 풍랑을 만나 무인도에 갇히게 됩니다. 그가 갇힌 무인도는 늘 하나님 눈에 청개구리인 요나가 갇힌 고래 뱃속이며 아버지를 졸라 자신의 몫을 챙겨 타지에 갔다가 재산을 몽땅 탕진한 탕자가 일하게 된 돼지 농장이며 또한『천로역정』의 크리스천이 살던 파괴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크루소는 구약의 선지자나 신약의 탕자, 그리고 번얀의 순례자와 달리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인간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남태평양의 섬으로부터 생환은 기적 같은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때 구조는 구원을 의미하며 그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캘빈 사상의 핵심입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회개가 우선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태껏 교회 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온 청년입니다. 그는 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실용적인 가치를 찾는 계몽시대의 남자입니다. 그는 행복은 돈에 있다고 믿으며 늘 돈만 좇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는 무역선을 타고 바다에 갔다가 심한 풍랑을 만나거나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생활을 할 때 아버지 말을 듣지 않은 자신의 사악함을 후회하며 생전 찾지 않던 하나님 이름도 불러보았지만 스스로 고백했듯이 이건 순전히 습관적인 행동에 불과했습니다. 위험만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나님과 멀어졌었죠. 이제 세 번째 맞이한 위기도 우연으로 믿고 잇는 크루소. 자신의 죄에 대한 깊은 자각이 없는 상태에서 회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크루소는 조난 초기 무인도 근처에서 좌초된 난파선을 발견하곤 이 배에서 무인도에서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과 장비를 조달합니다. 이때 배안에서 훌륭한 상태의 성경 세 권을 발견합니다. 이 성경은 그에게 육체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명의 중요성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며 이때부터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이름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모든 걸 이성적이고 실용적이며 늘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해 왔던 사업가 크루소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나를 살리시고 내게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무척 실용적인 개념입니다. 그가 무인도 정착 초기에 기록한 자신의 상태 분석표를 보면 하나님은 선의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대차대조표 수입의 자리로 흑자의 개념입니다.     

 

(크루소가 작성한 자신의 상태 분석표) 


  이성과 근면을 바탕으로 무인도 생활을 영위하던 그에게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깁니다. 집 근처에서 자란 보리를 우연히 보게 된 후 그의 마음속에 신앙의 작은 씨가 뿌려집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종교적인 근거로 행동하거나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던 그는 섬에서 보리가 자라는 걸 발견한 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옥수수를 키우기에 적당하지 않은 날씨에 게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는 가운데 이곳에서 보리가 자라나는 것을 본 후에 나는 놀랐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분의 곡식을 아무런 씨를 뿌리는 도움 없이 자라게 하셨다. 그건 순전히 황량하고 끔찍한 이곳에서 나를 살리시려는 의도가 아닌가.   나는 감동했으며 눈물이 났다.  이런 엄청난 자연의 사건이 나 때문에 생기다니 나는 스스로를 축복하기 시작했다. (63)  


이후 (나를 반드시 살리시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존재가 그의 마음속에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말을 안 듣고 집을 떠나온 것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를 하면서 진지하게 기도를 올립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전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젠 틈틈이 성경도 읽기 시작하죠.  “위험에 처해있을 때 나를 찾으라 내가 너를 구하리라 그러면 너는 나의 영광을 노래하리라.” 너무 절실하게 다가오는 구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이곳에서 구원해 주실까?” 하나님과의 대화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 드리어진 의심의 그림자는 완전히 걷어 내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인도에서의 삶이 길어지면서 그는 이제 아버지 말은 하나님의 음성이었고 자신의 행동은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불복종의 죄였음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불복종의 죄를 저지른 나를 치는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내가 거절하다니. 그 말씀만 따랐다면 나는 지금쯤 행복하고 편한 생활을 하고 있을 텐데. 이게 지금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아무 도움도 위로도 충고도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으니. 난 울부짖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전 지금 커다란 난관에 빠졌습니다. (73)     


믿음과 회의가 반복되던 어느 날 그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고 시름시름 앓다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됩니다. 이때 그는 자신의 무릎을 칩니다. “바로 이거야.  난 이미 구조된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육체적인 구조보다 영적인 구조가 먼저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이후 그의 생활에도 변화가 옵니다. 성경을 매일 읽으며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며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서 사악하게 살았는지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제 먼저 할 일은 진정한 의미의 회개임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그는 또 기도합니다. “예수님이시여 제가 회개하도록 도와주세요.” 그는 자신을 섬에 오게 하여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섬은 자신을 벌주기 위한 고통의 섬이 아니라 자신을 과거의 사악함에서 구원해 주기 위한 축복의 섬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제 이 섬은 자신의 아름다운 집입니다. 그는 자신의 거처를 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성에 사는 자신은 왕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과 절망을 바라보는 자세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고 또다시 회의에 빠집니다. 스스로를 위선적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은 객관적으로 나아진 게 아니고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에 의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영적 구원의 길은 끊임없이 자신과 벌이는 고독한 싸움입니다. 디포가 크루소를 아무도 없는 섬에 가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 가는 길은 지난번 우리가 『천로역정』에서 보았듯이 모든 역경을 헤치고 가족까지 버린 채 혼자서 묵묵히 걷는 가시밭길입니다. 크루소는 천상의 도시를 목표로 외로운 영적투쟁을 벌이는 크리스천 순례자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 버전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완전히 단절된 채 오로지 성경에 의지한 채 모든 걸 혼자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 그의 머릿속에 런던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나 애정은 자리할 틈조차 없습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나의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섬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은 후 주님과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가 찾은 구원의 길입니다. 그는 늘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생활에 필요한 기술 (도기나 바스켓제작 등)을 익히고 축산기법을 실험하며 터득하고 늘 자신을 개선하려 노력합니다. 그는 허리가 부러질듯한 고통 속에 노동을 하며 육체적인 고통을 경험하고 있지만 이는 그가 느끼고 있는 원죄로 인한 영적인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섬 내 어디를 가나 늘 자신이 위험에 빠지면 하나님이 지켜주시리라는 성경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며 행동합니다.   

  


    이제 자신의 죄를 회개한 후 주님을 맘속에 모신 크루소의 다음 행보는 복음 전파입니다. 그는 무인도인 줄 알았던 섬에서 남미 카리브 원주민들을 납치하여 잡아먹으려는 식인종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식인종에게 희생될 뻔했던 한 흑인을 구해주고 그의 이름을 프라이데이라고 지어줍니다. 이제 그는 프라이데이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며 그를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는 일을 합니다.  이러한 크루소 행동의 진짜 목적은 그를 개종시켜 자신이 원하는 목적에 유용하게 써먹기 위함입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의 개종입니다. 당시 식민지 원주민들에게 기독교 전파에 열을 올렸던 서구인들의 의식을 반영합니다.  

   

   마침내 크루소와 그의 충실한 종이 된 프라이데이에게 섬으로부터 탈출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구원의 사인입니다. 보트 한 척이 무인도에 들어오는데 선장을 인질로 잡은 선상 반란 범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크루소는 몰래 선장에게 무기를 주어 반란 범들을 제압하게 도와줍니다. 대가로 그는 선장의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무려 28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고 그의 부모님들은 이미 오래전 돌아가셨습니다. 영국에 귀환한 그는 자신이 엄청난 부의 소유자 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해적으로부터 탈출하여 브라질로 갔을 때 사놓은 농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크루소는 자신을 구약의 욥에 비교하며 이렇게 좋아합니다.  


나는 욥기의 끝부분이 시작 부분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아 편지들을 보니 내 마음이 얼마나 떨리는지 표현을 못하겠네. 특히 내게 생긴 이 모든 부를 보니....  나는 갑자기 오천 스털링 현금의 주인이 되었고 브라질에 매년 천 파운드 정도의 수입을 올려주는 사탕수수농장이 영국에 있는 듯 확실하니 너무 좋아 어떻게 주체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221)



크루소는 기적적으로 절망의 섬에서 벗어났으며 영국으로 돌아간 뒤 자신이 엄청난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음을 깨닫고 행복해합니다. 크루소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이며 은혜의 결과입니다. 크루소는 끊임없이 영적으로 갈등하는 가운데에서도 불복종의 원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늘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동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영접한 후 자신의 믿음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이며 행동입니다. 크루소에게 하나님의 물질적인 축복은 구원받은 자만 허락받는 보너스 성격입니다. 사실상 믿지 않는 21세기 독자의 눈에는 크루소의 구원이 우연인지 진짜 하나님의 섭리인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모두 크루소의 주관적 판단이고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빈손 크루소가 경험한  영적구원과 물질적 성공은 신앙과 재물이 이제 서로 손을 잡고 같이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후 개신교회는 영적축복, 물질적 축복 둘 다 바라며 기도하는 장소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교회 재벌화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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