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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Sep 11. 2023

『폭풍의 언덕』: 믿음과 폭력 (1)

샤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출판된 바로 그해 인 1847년 세계 문학사에 또 한 권의 명작이 탄생합니다. 바로 샤롯 브론테의 동생인 에밀리 브론테가 쓴 『폭풍의 언덕』입니다. 언니의  『제인 에어』가 평단의 우호적인 평가를 받으며 대중의 인기를 단숨에 독차지한 반면 에밀리의『폭풍의 언덕』은 서점 한 편에서 먼지만 뒤집어쓰는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대중의 반응도 시원치 않았고 비평가들도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주로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반응 몇 가지만 인용합니다.


"이상한 책이다. 엄청난 힘이 있는 것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거칠고 혼란스럽고 삐걱대며 일을 법 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저속한 타락과 부자연스러운 공포의 혼합물이다." "이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 책은 지옥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악마의 책이다.  다만 장소와 사람들이 영국식이름을 갖고 있을 뿐이다."  "『폭풍의 언덕』은 이상하고 예술성도 없는 책이다." "『제인 에어』는 읽기를 권하지만 『폭풍의 언덕』은 불태워버려야 한다." "이 책은 끔찍하고 불쾌하다. 그나마 위안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엄청난 능력의 작가가 쓴 책으로 최근 나온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책이다."  


여성으로서 글을 써서 출판을 한다는 생각조차 금기시 되었던 시대 언니처럼 남성 작가를 연상시키는 엘리스 벨(Ellis Bell)이라는 가명을 쓰고 또 출판 비용까지 상당부분 댄다는 조건으로 가까스로 출판됐지만 이와 같은 비우호적인 세간의 반응을 보며 에밀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출판된 지 1 년만인 1848 년 30 살의 꽃다운 나이로 폐렴에 걸려 사망한 에밀리는 아마도  자신의 소설이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며 (혹은 작품의 진가를 몰라주는 세상을 원망하며) 숨을 거두었으리라 추정됩니다. 그리고 17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폭풍의 언덕』은 세계 100대 소설의 위상을 자랑하는 필독의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영화와 연극, 뮤지컬, 팝송으로도 재생산 되며 수도 없이 많은 후세 아티스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감을 제공한 이 소설의 마르지 않는 힘과 에너지의 근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오늘은 저주받은 악마의 책으로 태워버릴 것을 권고 받았던 작품에서 이제는 모든 이가 사랑하는 책이 되어버린 『폭풍의 언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폭풍의 언덕』은 두 장소에서 사건이 진행됩니다. 폭풍의 언덕으로 번역된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와  쓰러쉬크로스 그랜지(Thrushcross Grange)입니다. 이 두 장소는 이 소설의 메인 캐릭터들이 거주하는 저택의 이름입니다. 워더링 하이츠를 발음해 보면 모음이 많이 삽입되어 있어 발음이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쓰러쉬크로스 그랜지는 주로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는 탓에 발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조음기관에 신경을 써야 나오는 소리로 원어민조차 어려워하는 발음입니다. 소리부터 다른 두 장소는 그 성격도 동양의 음과 양처럼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워더링(Wuthering)의 의미는 이 저택이 위치한 지역 고유의 날씨형태를  가리키는 형용사로서 많은 비와 번개, 천둥을 동반한 폭풍우를 의미합니다. 또한 폭풍이 몰아치지 않는 날은 언덕 저편에서 매몰차게 불어오는 매서운 추위의 북풍이 지배를 하는 곳이죠.  이 폭풍과 북풍은 가혹한 자연현상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격을 상징합니다. 폭풍은 불안정하고 격정적이며 폭력적이고 또 무자비한 성격을 북풍은 매몰차며 냉혹한 성격을 상징합니다. 폭풍과 북풍을 그대로 닮은 주인공 바로 워더링 하이츠의 거주자인 히드클리프입니다. 쓰러쉬크로스 그랜지는 워더링 하이츠에서 4 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저택입니다. 쓰러쉬는 노래하는 새(songbird)로 즐거움과 평화스러움이 느껴지는 아름답고 눈부신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자연적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이며 인공적입니다. 진홍색 카페트가 깔려있고 그 위에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습니다. 금태 두른 하얀 천장과 그 중앙에는  유리로 만든 촛대걸이 장식물이 은 체인에 걸려 있습니다. 이곳은 자연보다는 문명, 상류사회, 계급사회를 상징하는 곳으로 이곳에 사는 캐릭터들 (린튼 부부와 그들의 자녀인 에드가와 이사벨라)은 세련되고 우아하며 점잖은 상류층입니다. 그들은 어법과 예법에 신경을 쓰고 살며 격식과 매너를 중시합니다. 원래는 린튼 부부의 소유였으나 작품이 시작되는 1801년 그 대저택의 주인은 히드클리프입니다.  

   

                " 히드 클리프씨인가요?"  그는 대답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바로 이 쓰러쉬크로스 그랜지에 작품의 첫 번째 내레이터인 로크우드가 일년 살기 개념으로 이사를 오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는 이곳을 사회에서 완벽하게 격리된 장소이며 인간 혐오자들을 위한 완벽한 천국이라 칭합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들어 온 로크우드. 그는 집주인인 히드클리프를  만나러 4 마일 떨어진 워더링하이츠에 갔다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기 세계에서 한 발짝도 나오기 싫어하는 듯한 모습의 주인과 손님을 기분 나쁜 태도로 대하는 하인 그리고 손님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짓는 양몰이 개들. 로크우드는 그날 갑자기 많은 눈이 내려 어쩔 수 없이 워더링 하이츠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됩니다. 바로 그날 밤 그는 악몽을 꾸게 됩니다.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는 중요한  꿈입니다.

   

    그는 꿈에 조셉에 의해 교회로 인도 됩니다. 교회에는 이미 열정적인 신도들로 꽉찬 상태입니다. 목사님은 총 490번 반복되는 죄에 대한 설교를 시작합니다. 이 설교는 마태복음의 18장 21-22 절에 근거한 것으로 원래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죄지은 자를 몇 번이나 용서를 해야 하냐며 일곱 번이면 족하겠느냐고 물어볼 때 예수님은 7 번에 70 을 곱하여 총 490 번을 용서하라고 대답하십니다. 로크우드 꿈에 나타난 490번에 대한 설교는 바로 이 내용입니다. 기본적으로 같은 개념의 이야기를 숫자만 바꾸어 가며 끊임없이 반복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으려니 로크우드는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품을 하며 몸을 비틀며 졸다가 깨어났지만 목사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로크우드는 그 설교가 너무 지루하여 자리를 뜨려고 하지만 그는 다른 열성 성도들에 의하여 매번 제지를 당합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는데 총 490 번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는 마침내 목사가 491번째를 언급하자 인내심이 바닥이 났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이렇게 외칩니다.


   선생님, 이 사방이 벽으로 둘러 쌓인 이곳에 앉아서 한 번도 쉬지 않고 490번의 설교를 듣고도 난 당신을 용서했습니다. 490번이나 나는 떠나려했지만 난 490번을 모두 제지당하고 강제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491번은 너무합니다. 자 순교자들이여! 그를 끌어내려서 그를 박살냅시다. 그래서 그를 아는 이 장소가 이제는 그를 기억 못하게 만들어 버립시다.       


그러나 목사님은 이렇게 반격합니다.


니가 바로 그 사람이야. 목사님이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490번이나 얼굴을 찡그렸지. 그러나 난 490번 참았어. 이것이 인간의 약점이지. 그래도 용서를 했는데 자 491번째가 되었으니. 형제들이여 그를 성경에 적힌대로 심판합시다. 그 영광은 하나님 성자의 몫이요. (19)


원래 예수님의 490번 용서하란 말은 횟수에 관계없이 무한정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곧이곧대로 읽는 사람에게는 죄를 491번 저지를 경우는 처벌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490번을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목사와 로크우드 같은 사람들이고 또 이들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동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너의 죄를 (나를 지루하게 만든 죄, 설교 도중 자리를 뜨려 한 죄)  490번 용서해주었으니 491번째는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교회 안은 신도들끼리 이읏끼리 서로 뒤엉켜 싸우는 난장판이 됩니다. 설교자는 이 소란을 보며 단상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의해 로크우드는 잠에서 깨게 됩니다. 이어서 두 번 째 악몽이 계속됩니다. 그는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상하게도 창문에 전나무 가지인가 아니면 솔방울이 바람에 날리다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인지 뭔가 계속해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같은 소리가 계속해서 창문에서 들려왔습니다. 소리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어 전나무가지를 좀 어떻게 해보려고 창문을 열고 손을 뻗었는데  얼음장 같이 차거운 손이 로크우드의 손을 덥석 잡으며 “들어가게 해주세요” 라며 애원합니다. 워더링 하이츠에서 꾼 이 두 악몽은 이 작품이 앞으로 전개되고 무엇에 대해 이야기 할지를 암시합니다. 그 핵심은 “죄와 용서” 혹은 “복수와 화해”입니다.

   


   사회에서 완벽하게 격리되어 있는 워더링 하이츠와 쓰러쉬크로스 그랜지는 하나의 작은 세계입니다. 양과 음, 자연과 문명, 거칢과 세련, 모음과 자음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어떤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은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대표되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충돌 시킵니다. 로크우드가 이곳에 와서 일 년 살기를 시작한 1801년은 그 모든 사건이 거의 종결된 시점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로크우드. 그는 오자마자 이 지역이 음산하고 불친절하며, 적대적이며 냉정한 분위기에 인간 혐오가 팽배한 분위기라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신도들끼리, 이웃들끼리 서로 폭력을 휘두른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지역입니다. 게다가 원한을 품은 듯한 귀신이 출몰하여 들어가게 해달라고 울부짖습니다. 초기 비평가들이 지적한대로 이상한 사람들의 기괴한 이야기입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로크우드는 깊은 호기심에 빠집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폭풍의 언덕』을 다시 읽으니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워더링 하이츠와  쓰러쉬크로스 그랜지는 남과 북, 동과 서, 좌파와 우파, 없는 자와 가진 자, 남녀, 세대 간의 갈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싸우는 쪼개진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고 믿는 정치인들의 목숨 건 투쟁, 사람들의 불친절과 냉소, 폭력, 그리고 인간혐오가 일상화된 이상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언제 부터인가  우리는 미디어 관련 포털 최상단에 자리를 잡는 대당 비방 기사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집을 나서면 동네 길은 상대 당을 욕하는 현수막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욕과 비방으로 시작하는 하루에 강간 살해사건이 가세합니다. 대낮에 남자가 여자를 죽이고 미친놈이 갑자기 등장하여 쇼핑하러 온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살상합니다. 지나친 자식사랑의 표본인 『마스크 걸』의 염혜란 과에 속하는 학부모들도 나서서 선생님들을 자살로 몰아갑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미워하고, 젊은 세대와 나이든 세대가 서로를 비방하며, 학부모가 선생님들을 고발하고, 군대 최고위 상사와 부하가 충돌하는 나라. 신도와 신도가 싸우고  이웃과 이웃이 싸우는 워더링 하이츠 사회의 바로 그 모습입니다.  에밀리 브론테는 이러한 갈등과 폭력이 사람들의 질못된 믿음에서 비롯됨을 암시합니다. 마태복음 18장의 예수님 말씀을 제멋대로 해석하곤 자기 해석만 옳다는 그러한 믿음입니다. 서로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소리를 지르며 서로에게 폭력을 부추키는 목사와 로크우드. 오늘날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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