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을 이야기할 때 주로 히드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독자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 두 사람의 이루지 못한 사랑은 이 작품의 핵심은 아닙니다. 이 낭만주의 시대가 낳은 이 걸작의 주 관심사는 남녀의 사랑보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은 틈만 나면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마태복음 22; 39)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를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마태 복음 18 : 21-22)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 (누가 복음 6:35).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고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며 특히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바로 워더링 하이츠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에서 또한 이웃과 이웃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워더링 하이츠가 인간혐오와 불친절 그리고 이웃과 이웃이 폭력을 휘두르는 지옥 같은 곳으로 변하기 전 이곳은 언쇼 가족이 평화롭게 살던 곳이었습니다. (로크우드의 요청으로 이 집의 하녀인 넬리 딘이 이야기합니다.) 로크우드가 이곳으로 일년 살기를 오기 꼭 30년 전인 1771년. 워더링하이츠의 주인인 언쇼씨가 리버풀로 출장을 갔다가 거리에서 발견한 고아인 일곱 살 박이 히드클리프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다른 인종의 떠돌이 집시가 양자로 들어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니 언쇼씨 가족 중 그 누구도 어린 히드클리프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하인들조차도 새로 온 아이를 배척했죠. 가족 중 가장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 아이가 바로 히드클리프보다 일곱 살 위인 언쇼씨의 장남 힌들리였습니다. 게다가 히드클리프가 오자마자 힌들리의 엄마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힌들리는 자신의 불행이 히드클리프 탓 인양 그에 대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합니다. 나이도 더 어리고 체력적으로도 열세인 히드클리프가 힌들리에게 일방적으로 얻어 맞는 처지이긴 하지만 거리에서 고아로 7년을 보낸 히드클리프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닙니다. 다음은 둘이 벌이는 싸움에 대한 넬리 딘의 목격담입니다. 히드클리프와 힌들리는 아빠로부터 망아지를 각각 선물을 받습니다. 히드클리프는 먼저 더 멋진 말을 차지했음에도 자기 말이 절뚝거리자 힌들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니 말을 내 것과 바꿔줘야만 할 껄. 난 내 말이 맘에 안들어. 만일 안 바꿔 준다면 아빠한테 이번 주에 니가 나를 세 번이나 때린 사실을 말할 꺼야. 아빠한테 어깨까지 시꺼멓게 멍이 든 내 팔을 보여줄 거야. ”
“꺼져 이 개새끼야.” 힌들리는 감자나 건초의 무게를 잴 때 쓰는 쇠로 된 추로 그를 위협하며 소리쳤습니다. “던져 봐” 히드클리프는 가만히 서서 응수했습니다. “그럼 난 아버지가 죽자마자 나를 내 쫓겠다고 하며 자랑한 너를 아버지에게 이를 거야. 아버지가 너를 내쫓지나 않을는지 모르지.” 히들리는 그 쇠뭉치를 히드클리프에게 던져 그의 가슴에 명중시켰습니다. 그는 고꾸라졌고 곧바로 비틀거리며 일어났습니다. 그는 숨도 쉬지 못하며 얼굴은 창백해졌습니다.
“내 망아지를 갖고 가라 이 집시 놈아.” 어린 언쇼는 외쳤습니다. “그 말이 네 목을 부러뜨리길 기도하마. 갖고 가라 그리고 저주를 받아라. 이 거지같은 침입자야. 아빠를 감언이설로 꼬득여서 아빠의 재산을 차지하려 하지. 아빤 추후에 네가 누군지 알게 될 거야. 이 사탄의 자식아. 내 말을 갖고 가. 내 말이 너 머리를 박살내주길 바란다.” (30-31)
이 사건은 힌들리의 잔인성을 드러내지만 히드클리프 또한 무서운 아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히드클리프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이용하여 가해자인 힌들리를 협박하여 원하는 것을 기어이 취하고 마는 영악한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이의 모습입니다. 워더링 하이츠의 가혹한 환경에 내 던져진 히드클리프는 서서히 악마로 변해갑니다.
힌들리에게 박해를 받는 히드클리프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양아버지 언쇼씨와 처음엔 차갑게 대하다가 서서히 마음을 연 자신보다 한 살 어린 힌들리의 여동생 캐서린에게서 위안과 행복을 얻습니다. 특히 자신을 따르며 좋아해주는 캐서린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이며 미래의 희망입니다. 늘 힌들리의 미움을 받던 히드클리프는 언제부터인가 힌들리에게 복수를 꿈꾸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영혼의 단짝 캐서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반드시 힌들리에게 갚아 줄 거야. 내가 할 수 만 있다면 얼마나 걸리든 지 상관없어. 그때까지 그가 죽지 않기를 바랄뿐이야.“ (47)
캐서린은 이런 히드크리프를 나무라면서 악한 이를 벌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고 강조하며 우리는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응수합니다. 그러나 히드클리프는 이렇게 반박합니다.
“아니야 내가 복수를 해도 하나님은 만족을 못 하실거야. 난 어떻게 해야 최고의 복수가 되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혼자 있게 해줄래. 계획을 세워야 하거든. 난 계획을 세우는 동안은 고통도 느낄 수 없어.” (47)
이제 복수는 히드클리프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힌들리가 히드클리프를 학대하는 걸 참지 못한 언쇼씨는 자신의 장남을 멀리 있는 대학교로 보내 버립니다. 그리나 3 년 후 언쇼씨는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제 학교에서 프란시스라는 이름의 여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힌들리는 아버지 부고 소식을 듣고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옵니다. 이제 워더링하이츠의 새주인은 힌들리 부부입니다. 프란시스 역시 히드클리프를 보자마자 그를 바퀴벌레 같은 인간으로 취급합니다. 이에 더욱 신이 난 힌들리는 히드클리프가 잠시나마 누렸던 언쇼씨의 양아들이라는 지위를 박탈하고 그를 하인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 후 힌들리와 그의 아내인 프란시스 사이에 아이(헤어톤)가 태어나는데 프란시스는 산고를 겪다 그만 목숨을 잃고 맙니다. 와이프를 잃은 슬픔에 빠진 힌들리는 자신이 겪는 불행의 원인이 전부 히드클리프인 양 그를 매질하며 더욱 못살게 굽니다. 자신의 자식인 헤어톤도 돌보지 않고 틈만 나면 히드클리프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합니다. 히드클리프에 대한 분노와 미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힌들리의 삶은 결코 정상적일 수 없습니다. 그는 술과 도박에 빠져 서서히 폐인으로 변해갑니다.
그러던 중 워더링 하이츠에 새로운 사건이 생깁니다. 캐서린을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난 겁니다. 그는 바로 이웃집인 쓰러쉬크로스의 소유자로 엄청난 부와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린튼씨의 아들인 에드가 린턴이었습니다.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 히드클리프를 사랑하는 캐서린. 그러나 그녀는 결혼과 사랑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캐서린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그녀는 넬리에게 이렇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히드클리프와 결혼을 하게 되면 내 지위가 낮아질 거야. 그러니 그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 거야. 그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고 그는 나보다 더 나 같기 때문이야. 우리 둘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그의 영혼과 나의 영혼은 똑 같애. 나와 린턴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처럼 아니면 얼음과 불처럼 서로 달라.” (62)
캐서린은 자신이 비록 에드가를 선택한다 할지라도 자신과 히드클리프는 절대로 헤어질 수 없는 하나라고 강조합니다.
“넬리, 난 히드클리프야. 그는 언제나 언제나 나의 마음에 있어. 나 자신도 내게 기쁨이 되지 못하듯이 그 역시 기쁨으로가 아니고 나와 같은 존재로 내게 있는 거야. 그러니 우리가 헤어진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어.” (64)
캐서린이 생각하는 히드클리프에 대한 사랑은 영적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에드가와 결혼한다 해도 자신과 히드클리프와의 관계는 변치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자신과 히드클리프는 하나이고 히드클리프에 대한 사랑은 영원한 바위 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랑은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캐서린은 히드클리프와의 결혼으로 자신이 사회적 계급에서 한 단계 떨어질 거라고 인식합니다. 히드클리프는 돈 한 푼 없는 고아이며 사회적으로도 바닥 중의 바닥입니다.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교양도 없고 거칠고 야만적이며 게다가 피부색도 다릅니다. 그러나 에드가는 세련되고 교양이 있으며 기품있는 매너를 가진 신사중의 신사입니다. 게다가 그와 결혼하면 쓰러쉬크로스 그랜지라는 대저택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신분과 재산 등 여러 면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줄 에드가가 현명한 선택임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에드가 린턴과 결혼하면 숲속의 나뭇잎이 겨울이 되면 변하듯 그녀의 사랑이 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 껍데기 뿐인 영원한 사랑? 아니면 사랑 없는 사회적 지위와 재산? 캐서린은 결국 에드가를 선택합니다. 그녀는 린튼과 결혼 한 후 린튼의 돈으로 히드클리프를 도와 그를 성장시키고 궁극적으로 그를 힌들리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만들겠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넬리의 말대로 돈과 계급은 현실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남편을 결정하는 데는 잘못된 동기가 분명합니다. 자신의 삶의 유일한 희망인 캐서린의 선택에 낙담한 히드클리프는 분노를 가슴에 품고 워더링 하이츠를 떠납니다. 이제 그에게 복수의 대상이 한명이 더 생겼습니다. 자신을 미워하며 노예처럼 부려먹은 힌들리 그리고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에드가입니다.
복수를 꿈꾸면 떠난 지 4 년 후 히드클리프는 다시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옵니다. 히드클리프는 많은 돈을 가진 부자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매너와 외모도 신사처럼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동안 꿈만 꾸어왔던 복수를 실행에 옮깁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성공회 목사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성경을 끼고 살아온 에밀리 브론테. 성경을 읽으며 또 아버지 설교를 들으며 “서로 사랑하란” 말을 수도 없이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밀리 브론테는 화목하기보다는 서로 갈등하고 다투는 가정을 서로 사랑하기보다는 서로 싸우는 이웃을 더 많이 경험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보고 “서로 사랑하고 무한정 용서하란” 말씀을 다시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