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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Sep 23. 2023

『폭풍의 언덕』 : 사랑과 천국 (3)

 “마음은 스스로가 만든 장소에 존재하고 그 스스로 지옥을 천국으로 또 천국을 지옥으로 만든다.” (존 밀튼의『실낙원』)



   열렬한 존 밀튼의 추종자 에밀리 브론테는 밀튼이 정의한 마음의 지옥과 천국에 낭만주의 색채—감정--를 가미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인간의 감정 상태라는 겁니다. 지옥은 미움, 복수, 분노의 감정이고 천국은 믿음과 사랑의 감정입니다.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은 인간의 감정 안에 존재하는 지옥과 천국에 대한 드라마입니다.

   


   복수를 꿈꾸면 떠난 지 3 년 후인 1783년 사탄의 후예 히드클리프는 다시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옵니다.  이때의 히드클리프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외모는 좀 더 강인해졌고 그의 매너 역시 신사처럼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상당한 재력까지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복수의 시간입니다. 로크우드가 워더링 하이츠에서 꾼 악몽--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이웃과 이웃이 서로 싸우는 꿈—이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캐서린은 3년 만에 나타난 히드클리프에게 용서를 빌며 이렇게 말합니다.     


히드클리프, 난 네가 내가 받는 고통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는 걸 원하지 않았어. 난 우리가 헤어지는 거 결코 바라지 않았어. 내 말이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지하에서조차 내 맘도 똑 같이 아플 거야. 그러니 나를 봐서 용서해줘. 이리 와서 내 곁에 있어줘. 넌 살면서 나에게 한 번도 해를 끼치지 않았지. 아니지. 네가 분노를 가슴에 담고 있다면 그건 나의 심한 말보다 더 기억하기 끔찍할 거야. (123)       


캐서린은 비록 에드가의 아내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히드클리프를 사랑합니다. 히드클리프는 그런 캐서린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자신을 사랑함에도 에드가를 선택한 캐서린에 대한 원망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님에게 빼앗긴 사탄의 심정입니다. 캐서린은 남편으로 인해 영혼의 단짝인 히드클리프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심한 상실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녀는 심적으로 몹시 괴로워 하다가 뇌 독감에 걸리게 되고 딸 캐시를 낳은 지 2 시간 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히드클리프가 돌아온 그 이듬해인 1784년의 일입니다.)   

   

 

  히드클리프는 용서를 이야기하는 캐서린의 간절한 바람을 무시하고 복수를 시작합니다. 히드클리프는 에드가 린튼의 말처럼 이미 “존재 그 자체로 가장 고결한 사람들을 망가뜨리는 독약”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히드클리프는 먼저 술과 도박으로 자신이 물려받은 가산을 상당부분 탕진한 힌들리에게 접근합니다. 힌들리는 히드클리프를 철천지원수로 생각하지만 자신의  궁핍한 사정 때문에 악마의 자식을 집으로 들이게 됩니다. 히드클리프는 먼저 쪼들리는 힌들리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그를 빚의 늪에 빠지게 만듭니다. 힌들리는 결국 진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워더링 하이츠를 히드클리프에게 빼앗긴 후 술에 쩔어 살다가 동생 캐서린이 죽은 그 다음해인 1785년에 생을 마감합니다.    

   

   히드클리프의 다음 목표는 자신의 영혼의 단짝인 캐서린을 빼앗아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에드가 린튼입니다. 그는 에드가에게 고통을 주기위해 그의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합니다. 하나님께 복수를 하기 위해 하나님의 창조물 인간을 유혹하여 타락시킨 사탄의 재림입니다. 히드클리프의 속셈을 이미 알고 있는 에드가와 캐서린은 온갖 수단을 다 써서 막아 보려하지만 역부족입니다. 히드클리프의 간교한 유혹에 넘어간 이사벨라는 오빠와 새언니인 캐서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히드클리프와 함께 결혼을 위한 도피를 선택합니다. 식을 올리자마자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온 히드클리프 부부. 사랑없이 결혼한 히드클리프는 집으로 돌아온 첫날부터 신부인 이사벨라를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캐서린을 빼앗아간 에드가에 대한 히드클리프식 복수였던 겁니다. 이사벨라는 남편의 폭력과 정서적 학대를 못 이겨 워더링 하이츠를  도망쳐 나와 런던에 정착합니다. 그리곤 히드클리프 2세인 린튼을 낳습니다.  1797년 히드클리프의 아내인 이사벨라가 런던에서 세상을 뜨고 그녀의 아들인 린튼 히드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오게 됩니다. 에드가에 대한 복수가 마무리 되자 이제 히드클리프는 아들인 린튼을 이용해 쓰러쉬크로스 그랜지마저 빼앗을 계획을 세웁니다. 자신의 아들인 린튼이 캐서린과 에드가 사이에 낳은 딸인 캐시와 결혼만하면 대저택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습니다.  히드클리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캐시와 린튼을 결혼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원래 병약했던 린튼은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한 달 후 세상을 뜹니다. 그리고 곧 이어 캐시의 아버지인 에드가 린튼 마저 죽게 됩니다. 1801년 겨울 로크우드가 히드클리프의 소유가 된 쓰러쉬크로스 그랜지에 일년살기로 들어오기 직전에 있었던 일들입니다.

   

 

  그러나 히드클리프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캐시와 헤어톤마저 처치해야 비로서 그의 복수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복수에 대한 동력을 잃고 맙니다.  그는 넬리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건 형편없는 결론이야. 그렇지 않아? 그가 막 목격한 장면을 깊게 고민한 후 말했다. 나의 폭력 행사에 대한 어리석은 결말이지. 난 두 집을 부술 장비와 공구를 갖고 있었어. 그리고 나를 헤라클래스처럼 일 할 능력을 갖도록 훈련을 시켰지. 모든 것이 준비되고 내 힘이 미치는 곳에 있을 때 양쪽 집의 지붕을 날려버릴 의지를 발견했지. 나의 옛 적들은 나를 박살내지 못했지. 지금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복수를 할 시작이야. 난 할 수 있어.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할 거야. 그러나 무슨 소용인가? 때리는 건별로야. 내 손을 드는 것조차 힘드는데.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나의  아량을 보여주기 위해 내내 고민한 것 같잖아. 그런 게 아니고 난 그들이 망가지는 걸 즐길 힘조차 없어졌어.  난 아무 이유 없이 파괴하는 데 흥미를 잃었지.  (244-5)    


   복수의 광기로 18 년을 보낸 히드클리프. 그의 삶을 지탱해준 복수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질 못합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죽은 캐서린에 대한 미련 그리고 자기파멸 뿐입니다. 그는 여전히 죽은 캐서린을 잊지 못하며 서서히 미쳐갑니다.  “그녀와 나하고 연결되지 않은 게 어디에 있는가? 그녀를 기억나지 못하게 하는 게 없는데? 죽은 캐서린의 환영에 사로잡힌 히드클리프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한 생활을 하다 그도 생을 마감합니다. 평생을 스스로 만든 정서적 지옥-이기심, 증오, 복수심—속에 살다 가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는 순간까지 사탄입니다. 히드클리프는 죽기 전 하녀인 넬리는 불러 이렇게 고백합니다. 자신은 결코 잘못한 일이 없고 따라서 후회할 일도 없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난 잘못한일이 없어. 그러니 후회할 일도 없지. 나는 너무 행복해. 그럼에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지. 내 영혼의 기쁨이 내 육체를 죽이네, 즐겁게 만들지 못하고. (252)  


넬리는 이 말을 듣고 분노를 느끼며 이렇게 충고합니다.


아시나요, 히드클리프씨. 당신은 13 살 때부터 이기적이고 크리스천답지 못한 삶을 살아왔어요. 아마 그 기간 동안 성경은 손에도 대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은 성경의 내용을 잊어버렸음에 틀림없어요. 그리고 그 내용을 찾아 볼 공간조차 갖고 있지 않을 겁니다. 사람을 --어떤 목사님이라도 교단에 상관없이— 불러서 성경 내용을 설명해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졌는지 보여 달라고 하세요. 죽기 전에 변화하지 않으면 당신은 천국에 얼마나 안 어울리지를 말 이예요. (252-3)      

주인을 향한 넬리의 일침은 사실상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에밀리 브론테의 기독교적 가치관입니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워더링 하이츠에 새로운 세대가 등장합니다. 에드가와 캐서린의 딸인 캐서린 린튼과 힌들리 언쇼와 프란시스의 아들인 헤어톤 언쇼가 바로 그들입니다. 아버지(힌들리)와 엄마(캐서린)가 남매인 그 둘은 사촌간으로 서로 사랑을 하게 됩니다.  (19세기 영국은 사촌끼리 결혼하는 일은 합법적이며 실제로 결혼하는 사람의 4-5%가 사촌 간 결혼이었습니다.) 캐시는 처음에는 린튼과 맘에 없는 결혼을 했지만 린튼이 죽은 후 헤어톤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름도 엄마 이름을 물려받은 캐시는 여러모로 엄마를 닮았고 헤어톤은 힌들리의 아들이긴 하지만 그의 거친 행동이나 야성적인 성격은 영락없는 히드클리프의 후예입니다. 캐시와 헤어톤은 캐서린과 히드클리프를 계승하는 워더링하이츠의 3 세대입니다. 이 둘은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새해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합니다. 둘의 결합에 사랑 이외 즉 신분, 돈, 교육 같은 요소는 낄 자리가 없습니다. 이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에밀리 브론테가 『폭풍의 언덕』에서 그리고자 한 정서적인 천국의 모습입니다. 그 둘은 보금자리로 쓰러쉬크로스 그랜지를 선택합니다. 이제 분노와 복수의 광기의 지옥같은 워더링 하이츠 시대는 지나갔고 평화와 사랑의 천국인 쓰러시크로스 그랜지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21세기 폭풍의 언덕이나 다름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히드클리프들의 후예들이 시기와 탐욕, 분노와 적개심에 불타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자신이 속한 단체나 가족 또는 개인의 생존이나 이익에 조금이라도 방해되면 적으로 규정하고 처단하며 조금이라도 더 빼앗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수업 중 자식이 받은 상처를 이용하여 선생님들을 협박하고 돈까지 갈취합니다. 힌들리에게 받은 상처를 이용하여 힌들리의 말을 빼앗는 히드클리프 류의 인간 들입니다. 이별통보를 받고 애인 뿐만 아니라 여자의 가족까지 살해하는 스토킹 범죄자들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모조리 죽게 만드는 히드클리프의 현대판 버전입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과 적으로 규정한 상대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불타는 우리사회의 모습 바로 에밀리가 176 년 전에 경험한 바로 그 정서적인 지옥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폭풍의 언덕』의 마지막처럼 우리사회에 사랑과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굳게 믿습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인 셀리(1792-1822)의 시가 생각납니다.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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