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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경제는 후진국,
전세사기는 선진국

전세사기, 나라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죠. 사회적재난 수준인 전세사기 실태는 어떤지, 정부와 지자체의 대책은 실효성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Q1. 먼저 각 지자체의 전세사기 피해 대책은 어떤지, 이런 대책에 대한 실효성은 있는지 답변해 주시죠.  

    

A1. 우선 경기도는 화성시 동탄에서 피해자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전세사기 피해를 치유하는데, 이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피해자들에게 이주비 150만 원과 긴급생계비 100만 원 지원 예정입니다. 

 

부산시는 타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전담팀 신설하고,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도 설치 운영 중입니다. 또한 피해자에게 최장 2년 동안 공공임대주택 110 가구를 제공 예정이며, 민간임대주택으로 이사할 때 2년간 월세 40만 원과 이사비 150만 원 등을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인천시는 전세사기 피해 규모가 가장 큰 지자체죠. 그런데 지자체 차원의 전세사기 대책은 적극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인천시가 밝힌 대책은 피해자 중 만 18∼39세 청년이 민간임대주택에 입주 시 1년간 월 40만 원 지원하겠다는 것과 공공임대주택에 입주 시 가구당 이사비 150만 원 지원 정도만 눈에 띄네요. 

  

저는 전세사기를 금융사기로 봅니다. 금융정책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한 지자체로서는 한계가 뻔히 보입니다. 그래서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지원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필요로 하는 대책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임차인의 채무를 인수해 자금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 등 더 적극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합니다.  

   

Q2. 그렇다면 이렇게 전세사기 피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2.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한 사회 문제입니다. 전세제도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전세사기의 요인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전세제도가 몇몇 조건들이 맞으면 대규모의 전세사기로 폭발하는 거죠.   

   

부동산가격 상승기에 ‘무자본 갭투기’가 가능해져서 한 사람이 몇백 채씩 매입할 수 있었죠. 그런데 이걸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한국 정부의 정책이었습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말기부터 부동산시장 활성 대책 차원에서 전세자금대출을 확대했고, 문재인 정부 초기 임대주택등록제 도입에 따른 각종 세제 혜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금리인상으로 주택가격 폭락으로 깡통전세가 나왔고 전세사기로 발전한 거죠. 이것들이 현 전세사기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봅니다.     

 

Q3. 전세대출 규모가 늘어나면서 전세사기 피해 규모도 늘었습니다. 올해 5월 말 국회에서는 「전세사기특별법」이 통과 됐는데 실효성이 얼마나 있는지?     


A3.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법안 핵심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정부가 경·공매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 법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최우선변제금’만큼 최장 10년간 무이자로 대출해 주기로 했습니다. 근저당 설정 시점이나 전세계약 횟수와 관계없이 경·공매가 이뤄지는 시점에 ‘최우선변제금’ 범위에서 대출해 주는 거죠.        


(참고) 소액임차인 보증금 범위와 최우선변제금 기준은 각각 ▲서울 1억 6,500만 원 이하에 5,500만 원 이하 ▲인천을 비롯한 과밀억제권역과 용인ㆍ화성ㆍ세종ㆍ김포는 1억 4,500만 원 이하에 4,800만 원 이하 ▲광역시와 안산ㆍ파주ㆍ평택 등은 8,500만 원 이하에 2,800만 원 이하 ▲그 밖의 지역은 7,500만 원 이하에 2,500만 원 이하


그러나 실효성 측면에서 기대에 못 미칩니다. 「전세사기특별법」은 지난 4월 공개한 정부 대책보다는 진일보한 내용을 담았지만,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온전히 보전해 줄 수 없습니다. 조금 박하게 말하면, 빚을 내서 빚을 갚으라는 대책을 담은 법이죠.


Q4. 문제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는 것도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던데, 이 부분도 짚어주시죠? 

    

A4.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네 가지 조건에 맞아야 해요. 우선, 주택의 인도와 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를 갖춰야 할 것. 둘, 임대보증금 3억 이하(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에서 +2억 상향 가능). 셋, 다수의 피해 발생(예상)하고 (AND, OR가 아니고) 절차적 요건(임대인의 파산, 회생절차, 경매-공매, 압류 등)이 갖춰져야 할 것. 넷, 임대인의 보증금반환 채무 불이행 의도가 상당(명확)할 때,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사기를 당해 피해자가 되었는데, 피해자 인정받기가 쉽지 않죠. 더구나 이 조건에 충족한다는 것을 피해당사자가 증명해야 한다는 거죠.      


Q5. 전세사기가 임대차 3법 때문에 불거졌다는 의견도 있는데, 팩트는 무엇인가요?     


A5.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집값 급등과 시장 교란을 초래한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이 전세 사기의 토양이 되었다"고 전세사기 책임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으로 돌렸습니다. 특정 정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가 2020년 7월 시행한 '임대차 3법'을 전세 사기 원인으로 지목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임대차 3법에 따른 전세금 폭등이 전세사기 원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임대차 3법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는 2020년 7월 말부터 시행되었죠. 이에 반해 '빌라왕'과 같은 1세대 전세 사기범이 '무자본 갭투기' 방식으로 빌라를 집중적으로 사들인 시기는 임대차 3법 시행 이전인 지난 2017년부터 2019년 사이죠. 

  

전세사기는 2017~2019년부터 발생하기 시작했어요.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임대차 3법이 전적으로 전세사기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죠. 일부 영향을 끼칠 수는 있지만요. 저는 2015년 부동산시장 부양책으로 내놓은 전세자금대출 확대와 2017년 말 임대주택등록제 도입으로 인한 임대사업자 혜택 강화 등이 배경이 되었고, 금리인상이 전세사기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Q6. 동탄지역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문제 해결에 나섰는데, 이게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 


A6. 전세사기 피해는 한 가지 해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재난이 아닙니다. 피해 주택의 유형도 다르고, 피해자들의 사회경제적인 상황이 다 다릅니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지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피해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결성한 탄탄주택협동조합은 여러 문제 해결 방법의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탄지역과 유사한 오피스텔 유형에서 전세사기가 발생한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시도할 수 있는 솔루션입니다.  


Q7. 전세사기 문제가 2019년부터 크게 불거진 걸로 아는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문제가 계속 진행 중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A7. 우선 부동산시장의 변동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저금리로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리면, 주택 등 자산시장으로 돈이 몰립니다. 이럴 때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이 상승하게 되는 거죠. 이에 반해 금리를 인상하면 시장에 풀린 돈이 회수되고 주택가격은 내려가죠. 바로 역전세 깡통전세 주택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이러한 부동산시장의 변동성을 배경으로 무자본 갭투자를 통해 악의적인 전세 사기범들이 등장한 거죠. 

     

두 번째로 보수정권,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주택정책은 주택가격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췄을 뿐입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주택가격이 오르자 규제정책으로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공급대책을 쏟아내면서 '시장의 안정화'에 주력했죠. 반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주택가격이 내리자 규제 완화 정책으로 투기수요까지 시장으로 불러드려 '시장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주택가격 급등, 급락 시 정부가 썼던 정책이 다 틀렸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여 주택시장 변동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문제는 주택시장 변동성(가격의 급등, 급락)에 따라 주택정책의 방향을 180도 바꾸다 보니, 시장 참여자들은 더 이상 정부 정책을 믿지 않게 된 거죠.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국민적 불신은 진보와 보수정권이 합작해서 만든 결과입니다. 

  

Q8. 전세사기 대안으로 전세보증금의 에스크로 제도가 언급되었는데, 어떤 제도이며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A8. 전세 에스크로(가상계좌)란 전세보증금 전액을 임대인이 아닌 금융기관에 일부 보관한 뒤 계약 만료 시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하면 갭투자를 막아 전세사기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임대인)이 집을 전세 놓는 가장 큰 이유는 전세보증금을 활용하려는 것입니다. 전세 에스크로를 도입하면 임대인 처지에서 전세로 집을 내놓을 이유가 없기에 때문에 월세로 전환이 빠르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임차인 처지에서는 임대료의 부담이 더 커지게 되죠. 한국 현실에서 실효성을 가지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Q9. 전세사기뿐만 아니라 현재 아파트값이 하락하면서 깡통전세, 역전세 문제도 심각하다고 하는데요, 어떤 대책을 마련하면 좋을지?     


A9. 깡통전세와 역전세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면 주택시장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금리인상은 주택시장에 강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파트 가격의 하락 폭이 커졌고, 주택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역전세 및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이 일어났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악하고 나쁜 일부 집주인’들이 만들어낸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주택시장의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고, 그렇기에 더 나아가 주택정책의 책임이 일정 부분 있는 문제죠.     

깡통전세 문제는 대중요법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장기적 관점의 일관되고 안정된 주택정책의 방향성이 필요합니다우선, 자산기반형 주거복지 차원에서 주택 구매를 위한 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둘, 자산기반형 주거복지만 하면 안 된다. 부담가능한 주택인 사회주택을 적극 공급해야 합니다. 셋, 부담가능한 주택의 추진을 위해서는 금융정책과 토지정책의 결합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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