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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몬스터 Jun 24. 2021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내게 남은 흔적들에 대하여 2.

말 못 하는 아이


  ‘생각’을 ‘말’하려면 먼저 ‘생각’ 해야 한다.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은 아무것도 없는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요리에 재료가 필요하고, 작품에 소재가 필요한 것처럼 생각에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생각을 하기 위해 먼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알아야 했다.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거쳤던 생각의 경로를 추적해야 했다. 그 길을 따라 달리다 길을 잃기도 했다.     


  길을 잃은 지점은 이런 식이었다. “연좌제를 어떻게 생각해?” 연좌제는 범죄자가 아닌 사람을 범죄자와 함께 처벌하는 것이다. (사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역적의 삼족을 멸한다느니 하는 그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3조 3항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고 명시하고 있다. 법적으로도 당연히 연좌제는 있어서는 안 된다. 경험적으로도 그렇다. 사고는 동생이 쳤는데 “네가 언니니까 잘 돌봤어야지” 하고 대신 혼날 때만큼 억울했던 적이 없었다. 여기까지는 문제 되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그럼 친일파 재산 환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이전까지의 친일행위로 모은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자는 법령이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이것이 연좌제에 해당한다며 이에 불복하고 행정소송 및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있다.      

친일파 재산 환수와 관련한 쟁점은 굉장히 다양하다. 먼저 앞서 말했던 연좌제 외에도 ‘그때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괜찮지 않으니까 벌을 받으라’ 면 안 된다는 법률 불소급의 원칙, 개인의 사유재산권과 같은 쟁점들이 그것이다.      


  관련법이 법률 불소급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의견, 국가의 개인에 대한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등의 의견이 있다. 이에 반대하는 우리 헌법이 규정한 ‘국민 사유재산권 보호조항’이 매국의 대가까지 포함하지 않는다는 의견, 매국행위로 얻은 재산이 ‘부당이득’이라는 의견이 있다. 


  지난 2019년 이와 관련한 재판의 결론이 국민의 법감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다. 국가의 이익(공익)을 해친 개인의 이익(사익)을 보호해 주어야 하냐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보다, 국가/다수의 이익이 중요한가, 한 개인의 사익보다 다수의 개인을 합한 국가, 사회 공익이 중요한가. 중요하다면 공익을 우선하며 개인의 권리를 제한해도 되는가와 관련한 치열한 논쟁은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다고 대답한 집단이 있다. 바로 나치 독일, 전체주의 시절의 일본이다.       


  옳고 그른 것을 명확하게 나눌 수 없다이것이 법이 나에게 남긴 두 번째 흔적이다. 언제 어디서나 맞는 답, 언제 어디서나 틀린 답은 있을 수 없다. 현실에는 결코 없을 이상적인 사회라던 토머스 무어의 유토피아에도 노예제도가 있었다.      


  법을 공부하는 과정은 양 극단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라, 최적의 중간 어느 지점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재판은 유죄/무죄 중 하나를 결론 내는 선언이 아니라 형량이라는 선을 그을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당사자 간의 권리와 의무, 개인과 국가 간의 권리와 의무라는 추상적인 기준 속에서 누가 어디에서 얼마나 무엇을 해야 할지 이익형량 할 섬세한 논리가 필요했다.      


  추상적인 기준을 기반으로 한 섬세한 논리만으로 어쩌면 개인의 삶을 바꿀지도 모르는 판단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실체를 탐구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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