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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생부인허가청구, 이혼 후 낳은 아이 출생신고하려면

이혼 후 300일 이내 낳은 아이 출생신고하는 법

by 오경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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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여정


이혼은 단순한 서류 절차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부부가 이혼을 결심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법적으로 정리되는 과정도 길고 복잡합니다. 특히 아이가 있는 경우, 아무리 두 사람이 이혼에 완전히 동의하더라도 ‘숙려기간’이라는 이름으로 법이 일정 시간을 두고 생각할 여유를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협의이혼조차 최소 몇 달 이상이 걸리고, 재판상 이혼은 짧게는 7~8개월, 길게는 2년 이상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부부 사이의 갈등은 깊어지고, 일상적인 관계는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이혼 중 만난 새로운 사랑


용인에 사는 민경 씨(34세, 간호사)는 전남편의 잦은 폭행과 모욕적인 언행을 견디다 못해 별거를 시작했습니다. 그 일이 벌써 3년 전입니다. 전남편은 술을 마시면 돌변해, 집 안 물건을 부수고 손찌검을 일삼았습니다. 몇 차례 병원 치료를 받았고, 경찰이 출동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별거 기간에도 그는 민경 씨에게 집요하게 연락하며 낮에는 사과하고 밤에는 협박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민경 씨는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은 2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전남편은 자필 반성문을 제출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판사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민경 씨는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지훈 씨(37세, 물리치료사)와 가까워졌고,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까지 생기게 되었죠. 이혼 판결이 확정된 후 약 6개월쯤 지난 시점에 아이가 태어났고, 두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주민센터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현재 상태로는 아이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민법상 ‘친생추정’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왜 전남편 아이가 되나요?


민경 씨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아이의 생부는 분명 지훈 씨이고, 이혼 판결도 이미 마무리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전남편의 아이로 추정된다”며, 출생신고를 하려면 법원을 통해 ‘친생부인허가청구’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이 절차 중에 전남편에게 이 사실이 통보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민경 씨는 전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걱정했습니다. 어렵게 시작한 새로운 삶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민법이 정한 친생추정 제도란?


민법 제844조는 혼인 중 또는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 출생한 자녀에 대해 남편(또는 전남편)의 자녀로 자동 추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물학적 부모와 법적 부모가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법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장치입니다. 여성은 아이를 직접 낳기 때문에 모자 관계는 분명하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즉, 출산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법적으로 추정해 보호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혼인 중 아이를 가지면 남편 아이’라는 단순한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현실과 괴리되기도 합니다. 특히 이혼 소송 기간이 장기화되거나, 별거 기간이 길었던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민경 씨처럼 이혼 후에 아이를 낳았지만, 법적 기준일(300일) 내에 포함되어 출생 신고가 제한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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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새로운 절차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헌법재판소는 2015년, 혼인 종료 후 300일 이내 출생한 경우까지 전남편 아이로 추정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절차가 바로 친생부인허가청구입니다. 이 제도는 기존의 ‘친생부인의 소’보다 간소화된 절차로, 전남편을 소송 당사자로 포함시키지 않아도 서류만으로 법원이 판단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전남편에게 의견을 청취하거나 동의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는 전남편의 법적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되지만, 현실에서는 민경 씨 같은 사람에게 위자료 청구 등 2차 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 여지를 남깁니다.


절차의 불합리성과 개선 필요성


문제는 이 절차가 재판부에 따라 지나치게 복잡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법의학 교실 등 특정 기관에서 재검사를 요구하거나, 전남편에게 통지하는 재판부도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서류상 절차로 끝낼 수 있는 일을 지나치게 갈등적 상황으로 확대시키는 경우가 있어 논란이 됩니다.


많은 법률 전문가들은 “아이의 출생을 국가가 인정해주기 위한 절차가 왜 생부와 산모에게 고통과 불안을 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하느냐”고 지적합니다. 당사자의 사생활 보호보다 형식적 요건에만 치중된 시스템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실무상 꼭 기억해야 할 점


민경 씨처럼 전남편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 경우, 친생부인허가청구를 제기할 때 재판부에 명확한 의사 표시를 해야 합니다. 의견 청취나 통지 절차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재판 진행 중 재판부와 수시로 소통하며 불필요한 오해나 잘못된 절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심판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실무자의 실수로 전남편에게 판결문이 송달된 사례가 있으므로, 반드시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와 상의하여 사전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생신고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한 아이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대한 문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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