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변경 쉽게 하는 법
예전 어른들은 자식들이 자기 맘 같지 않을 때 호적에서 파내버리겠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호적이란 한 집안을 중심으로 사람들 신분 관계를 기록하던 공적 장부를 말하는데요. 그 집안의 가장이라 할 수 있는 호주(戶主)를 중심으로 개인의 신분 기록이 이루어졌던 겁니다. 물론 호주 마음대로 호적 기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호적이라는 정해진 기준을 중심으로 사람 신분이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그 구성원들은 다소 종속적이었다고 볼 수는 있을 겁니다.
호적법이 폐지되면서 이제 호적이라는 용어는 사라졌지만, 이를 대신하는 용어인 가족관계등록부가 여전히 입에 붙지 않아 우리 주변엔 여전히 호적이 쓰이고 있습니다. 의뢰인 중에는 여전히 호적제도가 시행되고 있다고 믿는 분도 적지 않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호적변경, 즉 가족관계등록부 내용을 바꿔야 하는 경우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동작구에 사는 정원 씨(가명, 50세)는 얼마 전 놀라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나서였습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여동생이 어머니 가족관계등록부에 적혀있던 겁니다. 어머니는 살아계시는 동안 한 번도 말한 적 없었습니다. 정원 씨에게는 작은 일 하나까지도 숨기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숨겼을 리가 없었습니다.
당장 상속처리가 문제였습니다. 상속인이 한 명 더 있으니 아무리 얼굴 한 번 본 적 없어도 그 사람 동의가 필요했던 겁니다. 상속재산은 상속인 전원이 동의해야 나눌 수 있는 게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정원 씨는 어머니 호적변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친자식일 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였는지 몰라도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는 비록 조금 늦었더라도 바로잡는 게 옳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이런 일을 당했다면 누구나 놀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마땅히 물어볼 사람도 없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정원 씨가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를 바로잡으려면 친생자관계부존재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호적변경은 입으로 주장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반드시 법원이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겁니다. (물론 행정청이 직권으로 하거나 법원 허가만으로 가능한 사안이 있기는 합니다)
정원 씨는 동생에 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디에 사는지, 혹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송이 가능할까요. 그렇습니다. 일단 어머니 신분 자료에 나타난 사항만으로 소송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일단 소송이 시작되면 법원을 통해 동생에 관한 신상 자료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호적변경을 위한 친생자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전자 검사입니다. 그렇다면 동생과의 유전자 검사는 어떻게 이뤄질까요. 이는 법원에 수검 명령을 요청하면 됩니다. 혹시 동생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궁금하실 수도 있는데요. 그러긴 쉽지 않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1,000만 원 이하 과태료나 30일 이하 감치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과태료나 감치로 검사 의무가 면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받아야 합니다. 끝까지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친생자 소송에서 최근 문제가 되는 쟁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 즉 원고에 관한 문제인데요. 예전에는 민법상 친족이기만 하면 누구나 제한 없이 친생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대법원이 이를 뒤집어 ‘법적 이해관계가 있어야만’ 친생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겁니다. 사례에서 정원 씨 역시 이해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자칫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는 겁니다. 경험 많은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혹시라도 무조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소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꼭 유념하셔야 합니다.
호적변경, 즉 가족관계등록부에 적힌 내용을 고치거나 지우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신분 관계를 근거로 발생하는 공적 권리와 의무가 모두 가족관계등록부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인데요. 사례처럼 상속인을 정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어머니 친자식이 아니어도 등록부상 자식이기만 하면 상속인이 되는 겁니다. 실제 관계는 중요하지 않은 겁니다. 적어도 소송을 통해 그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법원이 등록부를 고치는 일에 신중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법원이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