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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낙엽

by 우아한 우화

알람 소리에 얕은 잠을 걷어내고 부엌으로 가 도시락을 싸고 아침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부엌 탁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하얀 바닥에 기다란 머리카락이 낙엽처럼 떨어져 있다. 길 안내하려 일부러 떨어뜨리기라도 한 듯 냉장고, 싱크대, 가스레인지 앞, 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어김없이 한 두 개가 떨어져 있다. 낙엽을 줍는 것보다 더 쓸쓸한 마음으로 머리카락을 주웠다. 가늘고 힘없는 머리카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왼손으로 머리채를 잡고 오른손으로 쓱 잡아당겼더니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저항도 없이 손에 잡혔다. 이토록 허약한 머리카락이라니..


얼마 전 밥을 먹던 아이가 밥 속에 머리카락이 있다며 줄다리기하듯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모습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 아이는 무안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곧 “엄마, 이건 내 머리카락인 것 같아.”라고 했다. 그 순간 지금보다 젊었던 나의 엄마에게 딸아이처럼 말하지 못하고 짜증 냈던 일이 생각났다. 머리카락이 음식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부주의한 위생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는 누구보다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사람이었을 뿐 단지 몸의 기능이 느슨해진 것뿐이었다. 그즈음부터 엄마는 종종 “너도 나이 먹어봐. 나이 먹으면 다 그래.”라는 말을 하고는 했는데 그때의 나는 나이 먹어도 이름을 바꿔 부르지 않을 것 같았고, 무엇을 하려 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그새 까먹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웬걸, 세월은 너무나 정직했다. 곧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 아이에게 “아니야, 엄마 머리카락 맞아.” 영락없이 가늘고 옅은, 이름표가 보이는 머리카락이었다. 그때부터였는지 엄마는 요리할 때 두건을 쓰기 시작했다. 나도 머리에 두건을 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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