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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우화 Dec 08. 2024

Fun Friday (1)

어른이 되어도 학교 가기 싫다.

학교에 갔다.

선생님들만 보면 혀가 굳어 최대한 눈을 안 마주치려 먼 곳을 응시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고 몸은 어색할 정도로 경직된다. 말하고 나니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학생 같다. 한국과 달리 이곳 학교는 부모가 학교에 갈 일이 잦았다. 그나마 중학생이 되니 덜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행사가 너무 많아서 빨리 중학생이 되기를 바랄 정도였다.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악순환처럼 영어를 못하니 선생님이나 학부모 만나는 게 꺼려졌고, 그렇게 한국 사람들만 만나다 결정적으로는 코로나때부터 영어 실력이 퇴보되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학교에 자주 가서 아이들의 활동도 보고 친구들도 집으로 초대하고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나의 소심함과 완벽주의가 마이너스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나는 더더더 위축되어 갔다.


그러나 나는 학교에 갔다.

두 달에 한 번 학부모회에서 ‘베이크 세일’이라고 해서 부모님들로부터 쿠키며 빵 등 각종 간식거리를 도네이션 받아 아이들에게 적은 금액에 팔고 그 기금을 모아 학교 중요한 행사 때 쓴다고 한다. 그래서 물건들을 진열하고 판매할 봉사자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여태 한 번도 갈 생각도 못했고 의지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학교에 갔다.

이곳의 제한된 생활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한정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일,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이 작은 용기를 내기까지 난 참 길게 망설였다.


그렇게 학교에 갔다.

입이 둔하니 말보다는 행동으로 열심을 내었다. 팝콘을 튀길 사람이 필요했는데 물건을 팔고 돈을 주고받는 것보다는 그 일이 쉬워 보여 자진해서 작동법을 익혔다. 어찌 됐든 팝콘만 튀겨내면 되는 일이었다. 학년별로 점심시간이 다른데  그때 아이들은 간식을 샀다. 처음에는 팝콘이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저학년으로 갈수록 인기가 치솟아 아이들은 줄을 서야 했고 예약까지 받아야 했다. 아이들의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했다. 진땀이 났다. 오늘 작동법을 익혔는데 하루 만에 전문가가 되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나니 학부모회 멤버들이 수고하고 잘했다며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고마웠고 나는 나대로 보람을 느꼈다. 나름 언어와 인종의 장벽이 아주 살짝 허물어졌다 생각했다. 그렇게 한시름 돌리며 학부모 라운지에 엄마들이 둘러앉아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중 몇몇 문장만 알아들을 수 있었고 대부분은 느낌과 분위기로 이해할 수 있었을 뿐  그들의 대화에 낄 수도, 같이 웃을 수는 더더군다나 없었다. 그들이 웃을 때 같이 웃지 못해 아쉬웠다. 씁쓸한 미소밖에 지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언젠가는 그들 틈에 끼어 같이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싶었다. 이제는 알고 있던 영어 단어도 기억나지 않기 일쑤이고 말하기 영상을 따라 하다가도 어느 순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마음을 먹어도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안 쓰던 영어를 쓰니 피로가 몰려왔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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