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퓨하는 소리와 함께 추가 딸깍거리며 멈추었다. 전기가 나갔다. 순간의 정적. 전기를 먹고사는 것들의 파업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밀려오려는 짜증을 가까스로 추슬렀다. 벌써 11년째 겪고 있지만 겪을 때마다 새롭다. ‘벌건 대낮 놔두고 하필 밥 하는 저녁 시간에 전기를 끊을게 뭐람? 센스도 없다 정말..’ 나는 옆 컴파운드의 노란 불빛과 앞동의 몇몇 집에서 뿜어내는 온화한 불빛을 바라보며 단절된 느낌을 갖는다. 빛이 있다는 건 따뜻한 것이구나.
어두컴컴한 집안을 뒤져 오래전에 사놓은 손전등과 캠핑용 램프를 꺼내 겨우 밥상을 차리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 고요했다. 전기가 나가니 사방이 침묵이었고 우리 가족도 침묵 속에서 침울하게 밥을 먹었다. 인버터가 있었지만 배터리의 수명이 다한 것인지 채 한 시간도 안되어 전기가 나갔고 누군가로부터 그 쓴 양만큼 전기를 채울 때는 몇 배의 전기를 필요로 한다는 말을 듣고는 아예 선을 차단시켜 버렸다. 우리 집이라면 어떻게든 고치고 바꾸고 하겠지만 세든 집에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그런 호사를 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전기가 없는 저녁은 너무나 고요해 어색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평소에는 읽지도 않던 책을 답답한 램프 아래에서 열심히 읽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