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수(下水)면 어때? 내가 삶의 고수(高手)인걸!

물(2)

by 우아한 우화

케냐의 우기는 밤에 비가 내리고 낮에 멈추는 게 일반적인데 요즘은 온난화 때문인지 낮밤이 없는 데다 지난 건기에는 비가 꽤 내렸다.


오늘은 아침에 비가 개어 운동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 집 주변 높고 낮은 집들 사이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많은 초목 사이로 페트병과 과자봉지등 각종 쓰레기가 잡초처럼 엉켜있고 물은 맑은 날에는 붓을 헹군 물처럼 진한 암녹색이거나 비가 오면 황토색이다.

오늘은 지난밤 내린 비 때문인지 아니면 하수도 배관이 오래되고 낡아 제 기능을 못해서 그런지 이곳저곳에서 황토물이 세차게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띈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하수도가 흐르는 길 가장자리에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상의를 걷어올리고 작은 헝겊 같은 것으로 몸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그 물로 몸을 닦으면 깨끗해질까 하는 의문과 얼마나 씻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납득 사이에서 잠깐 상념에 잠겼다.


하천이나 하수도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작은 세차장을 열거나 각종 나무와 꽃을 전시하고 파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들은 큰 생수통에 하수도나 하천의 물을 담아 세차해서 돈을 벌고 식물들을 키워 판매를 한다. 그런데 씻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내가 보기에 더러워 쓸모가 없어 보이는 물이었지 이들에게는 효용성이 크다.




얼마 전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전기가 나가 있었다. 아이들이 샤워를 해야 해서 커다란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김치 담글 때 쓰는 스테인리스 대야를 성인 한 사람 겨우 들어갈 정도의 욕조에 놓고 찬물과 섞어가며 샤워를 시켰다.

먼저 세수하고 그 물로 머리를 감고, 머리를 감은 물로 몸을 씻으면 주전자 반의 물로 한 사람이 씻을 수 있었다.

가끔 이런 옹색한 모습에 헛웃음이 날 때가 있지만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든 다 살아가게 마련이었다.

때때로 기본적인 것, 상식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상황에 놓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이방인으로 이들의 터전에 와서 살고 있다. 무엇이 기본이고 상식이라는 것은 다 나의 기준일 뿐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Clean W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