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3)
케냐에는 여러 부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마사이족은 유목민으로 평생 몸을 씻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귀한 물이니 씻는 것보다 먹는 게 먼저였을 것이다. 광야와 같이 물이 부족한 지역은 물 때문에 부족 간 싸움이 일어나고 그래서 죽기도 한다. 자신들이 먹을 물보다 기르는 가축들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가축은 재산이다. 물부족 없이 살아온 나보다 이들에게서 물은 가장 가치 있게 빛나고 그 가치는 생존이며 생명임을 보여준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마사이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들로부터 들은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처음에는 듣고 다소 놀랐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는 일이다. 문화차이는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일 뿐 틀린 게 아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을 비하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마사이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 댁에서 사역지의 현지 목사님을 몇 번 뵈었다. 그런데 한 번은 어떤 행사로 인하여 마사이 지역에서 손님들이 많이 오셨는데 그분들에게는 현대식 화장실이 참 낯설었나 보다. 지금에서야 그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세면대는 뭐 하는 곳이고 변기의 용도는 무엇인지 아리송했을 것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손님들은 변기 안에 고여있는 물이 손 씻는 물인 줄 알고 그 물로 손을 닦으셨다고 한다. 대부분은 선교사님들이 사역지로 가셨기에 이분들이 현대식 화장실의 사용법을 모를 거라는 생각을 못하신 것이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한 번은 다른 선교 센터에서 현지 목사님들을 모시고 며칠간 세미나를 하는데 지방 곳곳에서 올라오셨던 목사님들 역시 수세식 화장실의 사용법을 모르셨던 것이다. 변기의 레버를 눌러야 물이 내려간다는 사실을 모르셨으니 나중에는 화장실 변기에 용변이 이 넘쳐서 한국 선교사님들이 손수 그것들을 퍼내야 했다고 한다.
우리에겐 당연한 것이라 설명할 필요를 몰랐고 그들에게는 낯선 것이라 신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변기 물을 한 번 내릴 때마다 약 13리터의 물이 소비된다는 사실을 물이 귀한 이곳 사람들이 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일 수 있다. 그 선교센터는 그분들의 문화를 한껏 이해하고 받아들여 다른 공간에 그분들이 사용하실 수 있는 화장실을 따로 마련하였다고 한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그 간극을 좁혀가는 것이 이해이고 배려이며 용납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