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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우화 Dec 13. 2024

락볼트를 아시나요?

꽈배기 같고 스크류바 같은 하루

당장 다음 날 차를 써야 하는데 도움을 요청할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고  마침 그는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타이어에는 뾰족한 게 박혀있었고 그는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한 후 가라지로 갔다.

그가 가고 얼마 안 되어 인터넷 기사가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며칠 동안 인터넷이 안 됐는데 그렇게 연락해도 고쳐주지 않더니 이제야 방문하겠다고 한다.

기사가 오고 얼마 후 남편에게 전화가 왔는데 차가 있던 자리에 가서 부품이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라고 한다. 부랴부랴 나가서 확인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했더니 차가 움직인 동선대로 한번 따라가 보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 부품이 없으면 타이어를 교체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우선 하라는 대로 했다. 때마침 아이들이 도착해서 같이 찾아봤지만 무엇도 찾을 수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그의 목소리는 이미 가라앉아 있었고 자신이 와서 찾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와보니 그 사이 기사는 사라졌다. 밖에서도 보지 못했는데 대체 어디를 간 건지.

딸아이가 들어오며 “엄마, 아저씨 갔어.”라고 한다. “엥? 진짜?” “어, 다 고쳤대.” 그 말을 듣고 핸드폰을 열어 확인하니 ‘인터넷 연결 없음’이라고 뜨고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다.

다시 밖으로 나가면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기를 몇 번, 받아도 안 들리는 척 끊는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계속 전화하며 경비실 근처로 갔더니 거기에 그가 앉아 있었다. 인터넷이 안된다고 설명하고 그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왔는데 아들은 막 집에서 나오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짜증을 내며 “엄마, 인터넷 되는데”라며 아저씨 왜 다시 데리고 왔냐며 뭐라고 한다. 지금은 어떤 말을 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녀석의 태도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그러나 우선은 기사와 인터넷이 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확인해야 했으므로 화를 억눌렀다. 분명 내가 확인할 때는 되지 않았는데 내가 그를 찾으러 나간 사이에 연결이 된 모양이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를 돌려보내고 아들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아이는 남편과 내가 누군가에게 컴플레인하는 꼴을 보지 못한다. 나도 웬만하면 많은 것을 참고 넘어가는 편이지만 부당한 일을 많이 겪다 보니 그럴 일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우리는 이미 비용을 지불했고 지금 계속해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말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확인도 하지 않고 가면 그 사람들은 또 언제 올지 모른다. 엄마랑 확인하고 가는 게 맞는 거다,라고 설명했는데 아들의 태도는 여전히 건방지다. 물론 그 나이대가 그런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아이가 할 말도 못 하고 사는(내가 그랬다.) 사람이 될까 봐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아이는 어쩌면 내가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태도는 안되지…

그 사이 남편은 집에 도착해 차가 지나갔던 동선대로 꽤 멀리까지 걸어서 갔다고 한다.

사춘기 아들과는 얘기가 잘 통하지 않는 데다 안 그래도 이런저런 일로 심기가 불편했기에 급 피로가 몰려왔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땀을 비 오듯 흘렸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나무라고 싶기도 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락볼트라고, 그게 없으면 타이어를 뺄 수가 없다고 한다.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하면서 볼트 빼는 걸 깜빡했다고 한다.

타이어를 후다닥 교체했을 때의 남편의 땀방울은 참 멋졌는데 몇 시간도 안되어 밤고구마 백개는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안겨준다.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마, 표정으로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그 볼트 하나를 잃어버림으로 차는 내일까지 쓸 수 없었고 체인을 뺄 수 있는 전문 업체까지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과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거기다 남편이 우리 차를 맡겨두고 가라지 사장님 차를 타고 오는 바람에 사장님께서는 저녁 10시쯤 우리 집으로 차를 가지러 오셔야 했다. 매일 아침마다 골프를 치시는데 골프채가 사장님 차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장님이 타고 가라고 했지만 상황상 여러모로 번거롭게 해 드리게 되었기에 죄송했다.


생각해 보니 아침부터 일이 조금씩 꼬였던 것 같다. 모임 전날 정한 장소가 하필이면 월요일이 휴무라 부랴부랴 다른 장소를 찾아야 했고 다시 정한 장소도 한참 후 구글맵을 켜보니 월요일 휴무라 또다시 정해야 했으며 여러 사람의 의견도 모아야 했으므로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는 문 닫은 식당에 가서 알게 된 게 아니라 다행이었고 나름 과정을 잘 풀어갔다 생각했는데 막상 일이 이렇게 돼버리니 오전의 일마저 불운의 조짐으로 느껴졌다.


저녁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아 딸아이에게 엄마 신경쇠약이라 오늘 저녁 못하겠다 했더니 남편이 뭐 할까?라고 묻길래 그 말에 일어나 저녁을 열심히 차렸다.

이미 일은 일어났으니 어쩌겠는가. 알고 보면 이 일은 그리 큰 일도 아니다. 그동안 겪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금방 털어버려도 되는 일이었다. 속은 쓰릴망정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그래도 괜찮은 거라고 사람들이 그랬다. 그래도 보통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참 많이 변했다.

그런데 괜찮은 줄 알았던 남편이 조용히 다가와 속상하다…라고 침울하게 말한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그를 번쩍 안아 올렸다. 무거웠다. 허리도 삐끗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웃었다. 남편은 나에게 “너무 신경 쓰지 마.”라고 자신에게 말하듯 나에게 말했는데 “나 이제 신경 안 쓰는데?”라고 했더니 쿨하다며 놀린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정말 쿨한가 생각했더니 나는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남편에게 “글을 쓰다 보니 자꾸 에피소드가 생긴다. 그만 쓸까?” 했더니 남편이 웃는다. 아들은 삐져서 저녁도 안 먹고 씻지도 않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것도 나는 괜찮다. 내 배는 이미 충만하다. 고생하고 먹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삼겹살이 더 맛있다.  

2024/12/09


삼겹살과 잘어울리는 고수와 차이브 무침


지난밤 남편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몇 번을 자다 깨서 앉아 있고 화장실도 여러 번 가고.. 사실은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억지로 괜찮은 척했던 것인지, 내색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아마도 일을 해결해야 할 사람은 남편이다 보니 맘이 더 쓰였을 것이다. 가장의 무게가 이렇게 무겁다. 좀 더 자면 좋겠는데 약속이 돼있다며 수척하고 까칠한 얼굴을 하고서 나간다고 하니 맘이 쓰인다. 그때 지나가는 아파트 관리 직원에게 혹시 부품 같은 것을 보았는지 묻는다. 역시, 신경 쓰고 있었어…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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