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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원 Mar 06. 2023

꿈이 뭐냐고 묻지 마세요!

중고등학교 시절, 새 학년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자기소개서를 적었던 기억이 난다. 이름, 생년월일, 취미, 특기 등을 공유해 선생님과 같은 반에서 생활하게 된 친구들이 자신을 조금이나마 빨리 이해할 수 있게 돕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나는 매년 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게 그렇게 부담이 됐다. 장래희망. 언제나 빠지지 않고 채워야 하는 이 네 글자 문항에 쉽사리 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꿈이 뭘까. 난 커서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했다. 장래희망에 대해 답해야 할 때마다, 자신의 열정과 꿈을 쫓아 살아야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쉽사리 이야기하는 선생님들과 유명인들의 성공담들이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꿈이 뭐라고 한마디 얘기할 수 없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이러니는, 이렇게 꿈이 없는 내가 사실은 무척이나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든, 교회활동이든, 심지어 친구들과 하는 게임이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항상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주변 사람들은 나를 모범생이라고,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해주곤 했지만, 난 제대로 된 꿈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만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범생이었던 내가 제대로 된 꿈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기보다는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처럼 입시를 위해 10대에 공부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 10대 소년이 무슨 경험을 해봤다고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고 싶다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사실 돌이켜보면 내 꿈은 이것이라고 - 건축가, 과학자, 마지막엔 의사라고 -  타협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매년 작성해야 하는 자기소개서를 빈칸으로 남길 수 없어 결국에는 어떤 직업이라도 채워 넣어야 했고, 그렇게 채워 넣은 건축가라는 직업을 얼마든지 나의 꿈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타협. 하지만 나는 정말 이것을 타협이라고 느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항상 꿈이라는 건 어떤 더럽혀지지 않은 이상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느꼈고, 내 가슴이 뛰지 않는데도 이것을 꿈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은 대가로 나는 열심히는 살지만 꿈이 없는 상태로 20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5년 3월,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공부해 둔 덕분에 나는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에 진학하게 되었다. 기계공학과는 부모님의 지인이, 아직 꿈이 없다면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학과로 가라며 추천해 주어 선택하게 된 과였다. 대학생이 되고 나면 뭔가 달라질까 기대했는데 별 차이가 없었다. 어렸을 때 유행했던 카이스트라는 드라마에서는 대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로봇 축구 대회에 참가하면서 꿈도 찾고 사랑도 쫓고 그랬는데,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아마 나는 삶의 힘에 휩쓸려 군대에 가고, 대학교 졸업을 하고, 열정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안정감을 줄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겠지.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려고 애쓰다가, 몇 번쯤은 대차게 차이고, 결국에는 누군가와 결혼해 30대에는 아이도 낳고 가족을 이루겠지. 근데... 그때도 나한테 꿈이 없다면 어쩌지? 그때 내가 내 꿈을 찾기 위해 뭔가 도전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 같은데... 뭐야, 그럼 평생 꿈이 없다는 허망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건가?’


아찔한 생각이었다. 삶을 쉴 새 없이 앞으로 전진시키는 시간의 힘이라는 게,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특히나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공부할 때가 있고, 일할 때가 있고, 결혼할 때가 있고, 아이를 낳을 때가 있다”라고 굳게 믿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꿈이 있든 없든, 결국 시간이 밀어붙이는 대로 그렇게 살게 될 것이 20살의 나에게는 분명해 보였다. 어떤 프랑스 소설가가 했던 말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때 나는 방향을 틀어야겠다고, 20대의 10년을 꿈을 찾는데 쏟아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가만히 있으면 분명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시간에 휩쓸려, 꿈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거다. 그렇게 살기 싫다면?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시간을 투자할 각오를 해야겠지. 그럼 얼마만큼의 시간을 쏟아야 할까? 1년? 에이, 1년 만에 바뀌는 게 뭐가 있겠어. 3년? 적지 않은 시간인 것 같긴 한데, 내 성격에 3년의 경험을 가지고 확신이 생길까? 10년. 꿈이라는 게 그만큼 대단하고 소중한 거라면, 10년은 투자해야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그래, 혹 조금 돌아가더라도, 20대 10년의 시간을 쏟아서 그놈의 꿈이라는 걸 찾기만 한다면, 결국에는 더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40대 후반만 되어도 명예퇴직의 압박을 받는 세상이라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은 70대에도 모셔가지 못해서 안달인 게 또 이 세상이다. 꿈을 찾기만 한다면, 혹여 10년의 시간을 잃어버린다 해도, 결국에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열심히 노력하는 건 자신 있으니까. 그래, 한 번 사는 인생, 내 생각대로 살아보자!’


그런 마음으로 20대 10년을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우당탕탕 좌충우돌하며 보냈다. 잘 다니던 대학교를 2년 휴학하고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1년간의 세계일주를 했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마치 싸이라도 된 것 마냥 입대를 두 번 하며 산업기능요원과 육군 현역으로 도합 3년 6개월간의 군생활을 했다. 그 후에는 기타리스트인 친형과 함께 접이식 악보대를 개발하여 창업을 했다가 1년 만에 접었고, 마지막 29살에는 로보틱스를 한 번 해보겠다며 학부 후배들이 가득한 서울대학교 연구실에 막내 인턴으로 들어갔다. 


그럼 결국에 나는 꿈을 찾게 되었냐고? 그렇다. 10대 때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젠 어떠한 내적인 타협도 없이 이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노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삶이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한 결과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더 잘 살아내고 싶다. 30대에 나는 계속 로보틱스 분야에 몸담으며, 서울대학교에서, 네이버랩스에서, 하버드에서 연구를 해왔다. 그리고 2022년 말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마무리한 후, 지금은 내가 창립 멤버로 있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앞으로, 꿈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나의 20대 10년간의 방황을 적어볼까 한다. 그 10년 간의 발버둥을 통해 수없이 많은 걸 배웠지만, 결국 이 세문장으로 귀결되지 않나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다.
사람을 만드는 건, 말과 생각이 아니라 결국 선택과 행동이다.
어렵게 얻게 된 것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발버둥 치는 20대의 이야기가, 꿈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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