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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원 Apr 18. 2023

미국, 스탠포드에 가다

“스탠포드 ALC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2007년 봄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아시아와 미국 대학생들의 문화적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스탠포드 ALC 프로그램의 모집 공고를 보았다. 공고에는 프로그램에 선발되면 여름방학 한 달 동안 스탠포드, 일본 게이오대, 그리고 대만 국립대 학생들과 함께, 스탠포드 기숙사에서 지내며 수업을 듣고 개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고 적혀있었다.


‘오, 스탠포드에서 한 달 동안 살 수 있다고? 대박인데? 당장 지원해야겠다.’


아직 해외 경험이 별로 없는 나였기에 미국에서 한 달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솔깃했지만, 무엇보다 “스탠포드”에서 그곳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왜냐하면 2007년 나는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 축사에 완전히 빠져있어서, 그 연설을 100번도 넘게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그 연설 중에 특별히 내 마음을 울렸던 것은, 사랑하는 일을 찾으라는 그의 조언이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직 사랑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면,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계속 찾아 나서십시오. 언젠가 사랑하는 일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멋진 관계들이 그렇듯, 여러분들은 해가 지나갈수록 점점 더 그 일을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사랑하는 일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스티브 잡스의 연설이 내 마음을 그토록 울렸던 것은, 내가 스스로 꿈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을 작성하는 것조차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는, 서울대 수석의 성적을 거두면서도 몇 가지 질문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기계공학이 정말 내가 사랑하는 일이 맞을까? 이 길을 계속 간다면 80살이 된 나는 인생을 잘 살았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답을 할 수 없었기에, 사랑하는 일을 찾으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은 내 가슴을 깊게 찌르고 들어왔다. 그 이후로 스티브 잡스가 연설을 한 스탠포드는 내게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거기에 ALC 프로그램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미국, 일본, 그리고 대만의 내로라하는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서울대에서 만난 선후배들은, 꿈을 쫓는다기보다는 입시지옥에서 해방돼 술 마시고 노는 것이 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ALC 프로그램의 공고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특히 스탠포드 애들은 뭐가 좀 다르지 않을까?’ 혹시라도 내게 영감을 주고 도전의식을 일으킬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부푼 마음으로, 나는 스탠포드 ALC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교내 서류 평가와 스탠포드에서 직접 날아온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거쳐, 나는 서울대 참가자 15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유치하지만, 이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더 넓은 세상 속에서 나를 시험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해적왕이 되겠다며 모험을 떠나는 만화 속 캐릭터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그때 내 각오가 얼마나 비장했던지, 스탠포드로 떠나기 전날 밤 나는 머리를 빡빡 밀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후일담이지만, 스탠포드에서 나를 처음 본 몇몇 한국인들은, 내 빡빡머리를 ‘교포스타일’로 알고 당연히 스탠포드 학생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스탠포드 ALC 프로그램에 참가한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이곳에서 함께 보낼 시간이, 여러분들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순간(life-changing moment)이 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07년 7월 30일, ALC 프로그램 창립자인 드와이트 클라크 씨는 50여 명의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언어도 인간관계도 서툰 서로 다른 국적의 20대 청년들이, 앞으로 30일 동안 오직 순수함과 열정만으로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었다. 어떤 일들이 앞으로 펼쳐질지 모른 채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스탠포드에서의 첫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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