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9주기를 맞은 박찬욱 감독의 걸작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이 작품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로맨스입니다.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삼았지만, 한국적 정서와 동양적 미학을 가미해 독창적인 서사를 완성했어요. 김태리 배우의 데뷔작이기도 했지요.
이 영화는 성 정치와 여성 서사의 강렬한 조합으로 관객을 몰입시키는데요. 숨 막히는 화면과 세밀한 감정 묘사를 통해 여성들이 지닌 사회적 부담과 억압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어요. 일부 관객들은 자극적이고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요소들이 한국 영화계의 실험적 경향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가씨>는 독기를 품은 성 정치를 차려내는 작품이에요. 아름답다기보다는 습기가 있어 숨을 편히 못 쉬게 하는 카리스마를 뿜어내는데, 한국 정서상 여성들이 지니는 부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요.
때문에 "거부감이 든다", "자극적이다", "묘하게 불편했다" 같은 대중의 반응이 있기도 했는데요. <아가씨>는 대중에게 참기 힘든 긴장을 의도적으로 안겨주고 있어요. 불편하다고요? 그럼 제대로 보신 거예요. 그 불편함이 바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니까요.
숙희(김태리)와 히데코(김민희)는 완벽히 대비되는 캐릭터들이에요. 숙희는 "엄마보다 큰 도둑이 될 것"이라 하고, 히데코는 "엄마만 못한" 미모를 가졌다고 해요. 이 대비가 재밌지 않나요?
숙희는 사탕을 물려주며 목욕을 시키는 모성을 지닌 하녀예요. 반면 히데코는 "물새처럼 차가운 여자"로, 햇빛이 잘 안 드는 으스스한 저택의 여주인이죠. 두 여성의 대비를 통해 영화는 여성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어요.
영화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기사와 용(혹은 마녀), 그리고 공주를 포함한 전형적인 서양 동화 이야기를 현대화해서 짜놓은 구성이거든요.
다섯 살 때부터 저택에 갇혀 지낸 창백한 "공주" 히데코, 그녀를 가둔 이모부(조진웅)의 검은 혀와 "무지의 경계선"인 뱀이 상징하는 "용", 그리고 이모부의 서재를 파괴하고 클리셰적인 스윙을 날리며 뱀의 머리를 부수는 "기사" 숙희. 완벽한 'Fairy Tale' (동화)의 짜임새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동화는 뒤틀려 있어요. 공주는 순수하지 않고, 기사는 여성이며, 용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죠. 이런 전복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성 역할과 권력 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요.
히데코의 캐릭터에서 "위엄"이란 테마가 특히 두드러져요. 극 중 가장 심한 억압을 당하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별성을 표출하는 방식이 가장 미세하고 오묘하거든요.
그중 대표적인 상징이 "시계"와 "장갑"이에요. 시계는 개인, 하나, 히데코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이고, 장갑은 그 존재성을 가리는 베일 같은 역할을 해요. 히데코가 시계와 장갑을 끼고 벗는 때와 장소를 살펴보면 이 상징성이 더 잘 드러나요.
예를 들어, 백작과 이모부와 있을 때는 항상 장갑을 끼고 있어요. 반면 숙희와 단둘이 있을 때는 장갑을 벗죠. 이는 히데코가 누구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누구 앞에서 숨기는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아가씨>는 "진짜와 가짜, " "진실과 거짓"을 다룬 영화이기도 해요. 3부로 나누어진 구조로 관객을 두 번이나 속이는 줄거리가 이를 잘 보여주죠.
히데코의 낭독 연습 장면도 중요해요. 다섯 살 때부터 변태적 취향의 이모부 밑에서 자란 히데코는 일본 귀족들을 위해 포르노그래픽 소설을 낭독하는 연습을 해왔어요. 이 장면들은 영화 속 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진실과 연기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아가씨>가 그려내는 동성애는 인습적인 동양 미학에 일침을 가해요. 여성의 아름다움을 평가하고 감상할 자격이 남성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거든요.
히데코와 숙희 사이의 사랑은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보다는 으스스한 느낌이 강해요. 이는 기존의 로맨스 영화와는 다른 접근이에요. 박찬욱 감독은 오래 가두어둔 여자들이 풍기는 아우라를 이해한 것 같아요. 여성의 성적 욕구와 주체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섬뜩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표현해 냈거든요.
이런 표현 방식은 남존여비 사상이 만들어낸 억압적인 미적 개념에 반기를 들고 있어요. 여성의 성적 욕망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이 꼭 남성의 시선을 통해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거죠.
<아가씨>는 단순한 스릴러나 로맨스 영화가 아니에요. 성 정치, 권력 구조, 미학,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담고 있는 작품이죠. 불편하고 낯설 수 있지만, 그 불편함 속에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어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런 영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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