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상철학 들여다보기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고

"우연히 내가 카메라를 드는 쪽이 되었고 당신이 찍히는 쪽이 되었지만, 그로써 만들어지는 작품 혹은 프로그램에서 서로의 노력으로 뜻깊은 공적 장소와 공적 시간을 창출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방송이다"


91e179a0-6158-4644-9271-cbe8581bc41c.jpg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어느 가족> (2018)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출자로, 그의 영상철학은 피사체와 촬영자의 관계를 깊이 성찰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는 "우연히 내가 카메라를 드는 쪽이 되었고 당신이 찍히는 쪽이 되었지만, 그로써 만들어지는 작품 혹은 프로그램에서 서로의 노력으로 뜻깊은 공적 장소와 공적 시간을 창출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방송이다"라고 말하는데요. 만약 이런 사고방식이 성립한다면, 취재자와 피취재자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파트너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저서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은 이러한 영상철학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에요. 아름다운 장면들 뒤에 숨겨진 고민, 그리고 촬영 대상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다큐멘터리 방송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뜻밖의 만남이야말로 텔레비전의 매력"이라고 말합니다. 대중 매체로서 공공재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텔레비전과, 개인적이고 서사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화의 차이를 이만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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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세계와 만나는 도구다"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보도인이 아닌, 취재자로서의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흔히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는 보도국과는 다른 차원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그는 '내가 왜 카메라를 드는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왔다고 해요. 그 이유는 텔레비전이 공공의 것이기 때문이죠. 그는 단순히 사회고발을 넘어서, 취재자와 피취재자의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고 합니다. 이 지점이야말로 시청자로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아닐까요?


조작과 연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어요.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기록하는 장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연출자의 시선과 개입 자체가 일종의 ‘조작’ 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카메라가 무엇을 포착하든, 그것이 연출자의 내면세계에 갇혀 있다면 결국 왜곡된 시선일 수 있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대상을 진정으로 발견하고자 하는 자세’라고 강조하는데요. 특히 그는 몰래 찍는 ‘도촬’보다, 촬영 대상이 카메라를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더 의미 있다고 말합니다. 성숙한 다큐멘터리 연출자라면 대상의 존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 깊이 공감되는 부분이었어요.


578280_441709_5937.jpg <아무도 모른다> (2005) 스틸컷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의 극영화 철학은 다큐멘터리적인 시선과도 연결됩니다. <아무도 모른다>를 비롯해 그의 영화들은 대체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그는 촬영감독 야마자키 씨에게 ‘찍는 것 전부를 존경하며 찍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해요.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된 존재들이지만, 감독의 따뜻한 시선 덕분에 그들의 삶은 단순한 비극으로 그려지지 않죠.


한 인터뷰 중 "당신은 나중에 남겨진 사람, 즉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나 자살한 남편의 아내, 가해자 유족 등, 누군가가 사라진 뒤에 남겨진 사람을 그리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스스로 납득했다고 합니다. 그의 영화가 단순한 슬픔을 넘어, 존재하는 것 자체의 의미를 탐구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optimize.jpeg <괴물> (2023) 스틸컷


특히 <아무도 모른다>는 ‘니시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했는데, 그는 이를 단순한 ‘지옥 같은 현실’로만 그리지 않았습니다.

"방치된 6개월 동안 그들이 본 풍경은 단순히 잿빛 ‘지옥’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 사이에는 물질적 풍요와는 다른 형태의 ‘풍요로움’이 존재했을 것이고, 남매들끼리의 감정 공유와 성장, 희망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파트 밖에서 그들의 비극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전기가 끊긴 아파트 안에서 그들이 경험한 나름의 ‘풍요로움’을,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시선이야말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특별한 감독으로 만드는 요소 아닐까요? 그는 현실을 잔혹하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의 영화를 보고, 또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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