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장애 심리상담
상담사: 어렸을 때는 어땠어요?
나: 가난했어요. 근데 부족함은 없었어요.
가난한데 정말 부족함이 없었을까요?
얼마 전, 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부정하면서 살아왔던 폭식이 더 이상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범주를 초과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먹고 토하는 것을 더 이상 반복했다가는 식도가 남아나지 않겠구나 싶었다.
유튜브에 폭식증을 검색한다.
어두운 화면에 자살방지캠페인이라고 알람이 떴다.
나는 자살까지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검색해 보니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그때 이것저것 누르다 보니 무슨 병원에서 의사가 폭식증과 폭식장애의 차이를 설명하는 영상을 보게 된다.
나는 폭식장애였다.
상담사는 물었다.
"어렸을 때는 어땠어요?"
나는 대답했다.
"가난했어요"
음? 나는 가난했나?
나는 내 대답에 놀라웠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을 가난했다고 생각했었구나...
나는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았고 가난했다는 생각을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근데 왜 갑자기 반사적으로 가난하다는 말이 제일 먼저 튀어나왔을까...
"가난한데 괜찮았어요. 부족함 없이 잘 지냈어요."
상담사는 되물었다.
"가난한데 정말 부족함이 없었을까요?"
이 말이 머리에 징을 울렸다.
"어떤 부분이 부족함이 없다고 느끼셨나요?"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느꼈던 기억을 말했다.
"엄마가 학교 다녀오면 항상 집에 있었어요. 집에 오면 항상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어요. 오징어 튀김 먹고 싶다고 하면 학교 다녀오면 엄마가 오징어 튀김을 만들고 계셨어요."
"근데요"
조용한 강가에 먹이를 뿌리면 갑자기 어둠을 가르고 무리를 지어 튀어 올라오는 잉어 떼들처럼
기억은 그렇게 튀어 올라왔다.
#기억1
제가 고등학교 때 정말 정말 정말 사고 싶었던 운동화가 있었어요. 되게 오래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너무 갖고 싶어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엄마랑 같이 그 매장에 갔어요. 그래서 그 운동화를 가리키며 사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그 옆에 있는 훨씬 더 싼 운동화를 가리키며 "에이~ 이거 사면 안 돼?"라고 말했어요. 그때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뒤돌아서 매장을 뛰쳐나갔어요.
#기억2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그 당시에는 춤춘다는 것에 대한 시선이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래도 나는 춤출 때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기에 그렇게 살고 싶었다.
엄마 나는 춤추면서 살고 싶어.
엄마는 내가 춤추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엄마는 굳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야 하는 것이 아쉬운 듯 말했다.
"그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안돼"
#기억3
그렇게 아름다운 거울은 처음이었다.
연보라색과 연분홍과 화이트.
엔틱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던 초등학생 시절.
첫눈에 반해 거울을 사러 한참 시장을 돌아다니던 와중에 놀라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순간이,
이십 년이 넘어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가 이 거울을 보면서 말했었겠구나 싶었던 거울.
인생 처음으로 고집을 부렸다.
저 거울이 사고 싶다고.
하도 오래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자, 엄마는 끝까지 반대하셨지만, 결국 아빠가 사주셨다.
그때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렇게
그렇게
엄마는 내가 자라면서 숨겨왔던 비밀스러운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을 때, 나는 엄마에게 거절만 당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