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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셀프

폭식장애 심리상담 - TCI 검사

by 이로울리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이 좋은 말을 들을 때마다, 책의 좋은 글귀를 들을 때마다, 누가 이렇다더라 하는 말에 갈팡질팡하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상담 선생님은 내 TCI 검사결과지를 보며 설명했다.

“검사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선천적인 건 기질이라서 평생동안 거의 바뀌지 않는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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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I검사를 구글에 검색한다.

정체성(Identity)은 의식하지 못하는(무의식적인) 반사작용으로의 기질(Temperament)의식하고 인식하고 있는 성격(Character)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정리된다.


그럼 내가 알고 싶은 건 기질이다.

검사는 백분위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단위는 0부터 100일 것이다.

검사지 제일 첫 장에는 막대 그래프로 내 검사결과가 나타나있었고 갑자기 너무 과도하게 튀어나온 그래프에 눈길이 간다.


1점


1점????????

이게 뭐지????





기질은 네 가지로 구성되고 이를 Habit Systems(습관 체계)라고 본다.

이 네 가지가 한국어 검사지에는 자극추구(NS), 위험회피(HA), 사회적민감성(RD), 인내력(PS)이라고 나온다. 용어로만 보면 바로 와 닿지가 않아서 다시 또 검색을 시작한다.


손상을 방지하는 것, HARM AVOIDANCE

새롭게 되고, 색다르고, 재미있고 싶어하는 상태 또는 특징, NOVELTY SEEKING

보상 의존성, REWARD DEPENDENCE

어떤 것을 계속해서 하는 것을 허락하는 특징, PERSISTENCE


나는 ‘사회적 민감성’이라고 되어 있는 RD가 1점이었다.

나는 사회적 보상과 승인에 의해 전혀 동기를 부여받지 않는 사람이었구나.

알고 있었는데 다른 관점에서 보니 내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문제의 실마리이기도 했다.


나는 타인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내가 필요할 때조차 타인의 메시지를 읽어내는데 현저히 떨어지는 무감각하고 무지한 사람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발생하는 이 현상을 다른 관점으로 이번에 처음 바라보게 된 것이다.







타인의 메시지를 읽어낼 필요가 없었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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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나 혼자서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때였다.


애초에 타인은 머릿속에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타인이 필요할 때 세상에서 제일 난처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지 않는 삶이었기에

도움을 구해야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고

친분을 유지한 누군가도 거의 없었을 뿐더러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기에.


상담선생님은 나에게 인연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모르는게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주며 끌어가주는 사람이 나와 맞는 사람이라고 얘기해주셨다.


내가 원하는 것은 혼자 모든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 놓고 도움을 청해도 되는 사람이 나에게 필요했구나...





한 서점에서 남자와 아이가 책을 살펴보고 있다.

한 여자가 다가온다.

여자는 남자에게 응석부리듯이 말한다.

"오빠~ 나 커피먹고 싶어"

남자는 다정하게 대답한다.

"그래? 우리 커피마시러 갈까?"

아이를 데리고 여자쪽으로 이동한다


대각선 맞은 편에서 이 모습을 연극처럼 지켜본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대성통곡은 아니었는데 조용히 눈물이 났다.


나는 그렇게 커피먹고 싶다고 마음놓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


나는 커피 한 잔을 먹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면

그 작은 것 조차 누구도 내 의견을 흔쾌히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왔어서 그런가.





한편으로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무지한 부분에 대해 내가 알아가면 그런 사람이 필요 없는 거 아닌가?


구원은 셀프다.

내가 부족한 부분은 내가 스스로 채우며 살아가야지.


이래서 내가 사회적민감성 1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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