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장애 심리상담
잠을 청하기 위해 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누워있는 평온한 시간
심장이 쿵쾅쿵쾅 대는 것이 점점 심해진다.
호흡이 짧아진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나를 달래 본다.
숨을 깊게 들이쉰다.
그런데 숨이 깊게 들이쉬어지지 않는다.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외로워서 그런 걸 거야.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나면 나아질 거야. 돈이 없어서 그런 걸 거야. 돈이 좀 생기면 괜찮아질 거야. 밤이라서 감정적이 되어서 그래. 해 뜨고 산책하면 좋아질 거야. 청소하면 좋아지겠지….
내가 내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인 게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그 상태가 계속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어떻게든, 어떻게든 내가 나를 납득시키고만 싶었다.
시도를 했었다.
오랜 시간 나와 대화를 하는 누군가라도 내 얘기를 꺼내주기를, 들어주기를 기대했다.
나는 원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서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이 익숙해져 갔다.
어쩌다 친구들과 만나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면 친구들은 나에게 자기만 혼자 얘기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에 만나도 또 주로 혼자 얘기하고 나는 듣고, 그렇게 나는 지쳐갔다.
사실 이번 심리상담은 두 번째 시도이다.
첫 번째는 큰 회사에 다니면서 복지차원으로 다섯 번의 심리상담이 무료이기에 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 상담받을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나도 좀 안다는 오만함이다. 대학원 때 교학과에서 조교를 하면서 기독상담심리대학원과 한 사무실을 같이 썼다. 그 중 한 조교와는 너무 친해져서 자취방에서 먹고 자고 논문 쓸 때도 같이 의견을 많이 주고받았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주워들은 것도 꽤 많아서 나도 대충은 안다는 건방짐과 인간의 생각으로 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영적인 뜻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거부감도 있었다.
총 다섯 번에 걸친 상담이 진행되었으나 내가 기억나는 것은 가장 마지막 상담 마지막 순간이다.
그 외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얘기를 많이 들어주셨다.
인간은 왜 내 이야기를 들어줄 타인이 필요할까... 그것에 공감해 주는 타인이 필요할까... 그것이 인생의 딜레마다. 그게 없다면 타인은 필요 없어도 될 텐데...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텐데 왜 타인이 필요해야 하는가...
그동안 나는 나를 꽁꽁 싸매고 내 이야기를 마음 놓고 할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었던가보다.
마지막 상담에 나는 터지듯이 내 속마음 깊숙이에 있던 생각이 울분과 함께 튀어나갔다.
그때 나는 내 생각을 처음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카타르시스와 그 생각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타인과의 반응에서 엄청난 치유를 받고 삶의 오랜 시간 힘듦을 지탱해 주는 힘이 돼주었다.
폭식장애로 상담을 시작한 지 어제로 4회기가 지났다.
결론은 대충 한 곳으로 모아진다.
결국 내가 나로 살지 못해서 불안했던 것이다.
내가 중심이 되지 못하는 삶이다 보니 타인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나는 아예 타고나기를 타인의 눈치를 아예 알아차릴 수가 없었으므로 눈치를 살펴야 하는 삶은 내 타고난 기질과 너무 맞지 않는 삶이었던 것이다.
타인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이유는 바로 내 '생존' 때문이었다.
매슬로우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에서 살펴보면 가장 아래에 1단계인 '생리적 욕구'라고 되어 있다.
인간의 의식주와 관련된 생명을 유지하는 욕구, 배고픔과 갈증을 해소하려는 욕구이다.
2단계는 안전의 욕구이다. 신체적 안전과 경제적 안정 등을 의미한다.
상담 선생님이 상담을 하면서 대다수의 내담자들이 자신들이 1단계와 2단계 사이에 있다고 대답을 한다고 한다.
즉 우리 사회가 지금 생존이 너무 급급한 사회라는 것이다.
생존만을 추구하면서 기성세대들이 살아오다 보니 생존 이외의 모든 것들(예를 들어 정서적인 발달)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아 지금 내 나이대를 포함하여 그 아래 세대들도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해결방안은 대략 이렇게 된다.
1. 경제적인 쿠션을 만들어서 비빌언덕을 스스로 만들어 타인이 주는 스트레스에 크게 관여하지 않게 한다.
2. 나는 열심히 눈치를 살펴도 아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냥 물어본다.
그게 눈치 없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지언정 눈치채지 못해 생기는 손해는 받아들인다.
3. 나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치관을 정리해 본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 된다.
남들이 원하는 삶이 좋은 삶이 아니라고 말해왔지만 그럼 나는?
그럼 나는 그게 아니면 어떤 게 좋은 삶인데?
그런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하고 다양한 형태의 케이스를 아직도 많이 보지는 못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고, 나는 어떤 직장 상사가 되고 싶고,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결정 내리는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나름 어느 정도 기준을 잡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얕은 수작에 불과했나 보다.
내가 내 스스로를 보살펴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아니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그 방향으로 꾸준하게 꾸물꾸물 기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