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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머니에 대한 기억 ②어머니의 소리 - 다듬잇방망이 소리

by 박인권

어머니에 대한 기억 ②어머니의 소리 - 다듬잇방망이 소리


#나에게 어머니는 고유명사

이 땅의 모든 어머니라고 할 때의 보통명사 어머니가 사적 영역으로 귀속(歸屬)하면 고유명사, 특별명사가 된다. 보통명사 어머니의 모습이 고유명사, 특별명사로 치환(置換)될 때,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나에게 어머니라는 이름 세 글자가 특별한 이유이며, 모든 자식에게 어머니가 각별한 까닭이다.


나에게 어머니는 고마움, 죄송함, 그리움으로 읽힌다. 낳아주고 길러준 정이 사무쳐 고맙고, 사람 구실 하도록 평생 희생만 하신 게 죄송하고, 하해(河海) 같은 은혜에 티끌보다 못한 불효(不孝)가 회한(悔恨)의 앙금으로 남아 그립다. 올해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9년이다.


2004년 6월, 아버지가 묻혀 있는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당시 일흔이던 어머니와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모습.


가끔 내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은 어머니의 피라 어머니가 여전히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전자 과학이론은 육체적 생명이 소멸해도 유전자는 공기 중에 흩어져 사방으로 퍼져나간다고 설명한다. 결국 모든 생명체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다른 모습으로 계속 존재하는 것이라, 내 어머니도 내 몸 안에서, 내 후손들의 몸 안에서, 또 다른 어딘가에서 영원히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머니에게 다듬잇방망이는 고유명사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내 눈앞으로 소환되는 감회에 빠지곤 한다. 어머니의 모습은 소리로도 재현되는데, 나에게 다듬잇방망이 소리는 어머니의 소리다.

어머니에게, 내 또래의 모든 자식의 어머니에게 다듬잇방망이는 그 시절 생활필수품의 의미를 넘어 어머니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에게 어머니가 그러하듯이, 어머니에게도 다듬잇방망이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 특별명사였다.


어릴 때, 고향 집 대청마루에는 다듬잇방망이와 다듬잇돌이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다듬잇방망이와 다듬잇돌이 먼지 타지 않게 늘 보자기를 덮어놓았다. 어머니의 소리, 다듬잇방망이 소리는 글 읽는 소리와 갓난아이 우는 소리와 더불어 예로부터 마음을 기쁘게 하는 세 가지 소리, 삼희성(三喜聲)이라 전해진다.


#다듬잇방망이 소리의 다중적 의미

다듬이 소리에는 삼희성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 다중적(多重的)인 의미가 실려 있다. 모성애(母性愛)로 불리는 어머니의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고, 가사(家事)를 책임지는 부녀자(婦女子)의 근면 성실을 시사하는가 하면 때로는 고달프고 때로는 삶의 보람을 느끼는 살림살이를 대변하는 애환(哀歡)의 소리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몸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신성한 노동과 가족 사랑의 정신을 디딤돌 삼아 메아리치는 다듬이 소리는 기뻐도 두들기고, 슬퍼도 두들기고, 화가 나도 두들기고, 힘들어도 두들기는 삶의 소리, 그 자체였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의 소리인 다듬이질 소리가 가장 한국적인 전통미를 대변하는 소리인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100대 문화상징을 발표한 결과 가장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소리로 다듬이질 소리가 선정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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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잇방망이와 다듬잇돌. ⓒInSapphoWeTrust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다듬이질과 다듬잇돌

국어사전은 다듬이 또는 다듬이질을 옷감 따위를 구김이 없이 반들거리게 방망이로 두드리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다듬이 도구를 모두 나열하면 다듬잇방망이와 다듬잇돌, 다듬이포대기에다 홍두깨와 홍두깨틀까지 포함된다. 홍두깨는 모시나 명주와 같은 얇은 옷감을 세탁한 뒤 감아서 다듬잇돌 위에 얹어 놓고 반들반들하게 다듬는, 박달나무로 만든 방망이를 말한다. 홍두깨틀은 홍두깨다듬이를 할 때 홍두깨를 걸쳐 놓는 나무틀이다.


우리 집 대청마루에는 다듬잇방망이와 다듬잇돌, 다듬이포대기만 있었다. 어머니는 홍두깨를 사용하지 않았다. 여름 한철, 아버지만 삼베로 지은 옷을 아주 가끔 집에서만 입었을 뿐, 우리 집 식구들이 입는 옷 단장에는 굳이 홍두깨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향 집 다듬잇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흑갈색을 띠는 광물인 흑운모(黑雲母) 무늬가 있어 유리 광택이 났고, 검은 듯 흰 듯 묘한 빛깔이 아름다웠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장만했다는 다듬잇돌은 어림잡아 두께가 15cm 정도 돼 보였는데 단단하고 묵직해 보이는 겉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부터 어머니와 고락(苦樂)을 함께한 고향 집 다듬잇돌은 2000년 봄, 30년 가까이 정든 기와집 생활을 마감하고 양옥(洋屋)으로 이사하면서 어머니 품을 떠나갔다. 다듬잇돌을 떠나보내던 날,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염주(念珠) 알을 굴리며 손때 묻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펼쳐 소리 내어 읽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길쭉한 직사각형, 장방형(長方形) 모양의 다듬잇돌 윗면은 반지르르한데, 손으로 만지면 손가락 끝이 미끄러지는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졌다. 다듬이질당한 옷감이 다듬잇돌과 부딪혀 찢어지거나 상하는 것을 방지하고 다듬이질이 지향하는 소기의 목적을 차질 없이 달성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재질이 단단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화강암을 쪼고 깎고 다듬어 다듬잇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땀 흘렸을 이름 모를 석공(石工)들의 우직한 장인(匠人) 정신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듬잇돌 양쪽 가장자리 아래에는 홈이 파여있다. 손가락 끝마디가 홈에 걸치게 잡고 들어 옮길 수 있도록 한 석공의 배려이자 지혜다. 다듬잇돌 윗면 가운데가 미세하게 솟은 모양인데, 다듬이질 때 옷감의 무게중심이 양옆으로 퍼져나가도록 해 구김이 펴지는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슬기로운 제작 의도다.


#다듬이질의 절차와 절도 있는 다듬이질

어머니의 다듬이질은 의식(儀式) 행위처럼 절차가 까다롭고 절도(節度)가 있었다. 다듬이질에 앞서 세탁한 옷이나 이불감에 풀을 먹이는 푸새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위해 작은 양은 냄비에 풀을 끓여 식히는 일도 만만찮았다.


끓인 풀은 너무 뻑뻑해도, 너무 물러도 곤란해 어머니는 늘 풀을 끓일 때 신경을 곤두세웠다. 풀이 뻑뻑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중간 상태로 끓여졌을 때 풀 먹이기가 쉬운 데다, 풀 먹인 옷감의 기세가 빳빳하게 서기 때문이다.


푸새 질은 다듬이질의 성공 여부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게 다뤄졌다. 풀을 먹였다고 푸새가 끝난 것은 아니다. 풀 먹인 옷감의 건조 과정이 끝나면 어머니는 손가락 끝에 물을 묻혀 옷감 여기저기에 튀기거나 입 안에 머금은 물이 사방으로 골고루 퍼지도록 고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리릭 빠르게 젖히며 뿜었다.


나는 그 모습이 스프링클러로 잔디에 물을 뿌리는 것 같았는데, 어머니는 다듬이질을 앞둔 옷감의 목욕재계(沐浴齋戒)라고 농(弄)을 섞어 말씀하셨다.


촉촉해진 옷감 전체로 물기가 다 퍼져 나가면 실로 꿰맨 솔기를 기준선으로 예쁘게 각진 사각형 모양이 되게 잘 접은 뒤 보자기로 감싸는 데, 이로써 다듬이질에 들어갈 준비가 끝난다. 보자기로 싸기 전 옷감을 접을 때에는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옷감을 잡아당기면서 솔기에 맞추는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어릴 때 나도 해봤는데, 어머니의 숙련된 동작을 따라잡지 못했다.


#다듬이질과 4분의 4박자

어머니의 다듬이질은 비로소 시작되고 다듬잇방망이 소리도 다듬이질과 동시에 집안 가득 울려 퍼진다. 다듬잇방망이는 두 개가 한 짝이다. 나무의 조직이 단단한 박달나무로 만든 다듬잇방망이 두 개를 양손에 쥔 어머니는 무심한 표정으로 다듬잇돌 위에 놓인 옷감을 바라보며 4분의 4박자의 경쾌한 소리를 우리 전통 가락으로 연주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초벌 다듬이라, ‘따, 따, 따, 닥’, ‘따, 따, 따, 닥’, 약한 강도의 느린 4분의 4박자 리듬으로 방망이를 두들긴다. 다듬잇방망이 소리는 나무와 화강석 돌이 옷감 또는 이불감을 사이에 두고 부딪히는 소리다. 소리가 정답고 구성지며 신명 나는 데다 울림의 폭이 넓어 가까이서 들어도, 멀리서 들어도 어깨가 들썩여진다.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리듬감을 따로 배웠거나, 박자 맞추는 법을 익힐 리가 없었을 텐데도 한 쌍의 다듬잇방망이가 연출하는 소리는 희한하게 고저장단(高低長短)의 화음(和音)을 이루어 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다.


초벌 다듬이에 이어 ‘따따따닥’, ‘따따따닥’, 보통 강도의 중간 속도로 4분의 4박자 리듬이 이전보다 빠르게 허공을 가르면 어머니의 몸도 빨라진다. 이때쯤, 어머니의 이마에 송골송골 구슬땀이 맺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무조건 반사적으로 움직이던 양팔의 힘이 빠지려는 순간,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동작을 취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다듬이질의 최종 목표, 다듬잇살

양팔 대신 한쪽 팔로만 다듬잇방망이를 두들기고 다른 팔은 편하게 내려놓아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팔을 바꿔가며 한 팔 다듬이질이 어느 정도 진행됐다 싶으면, 어머니는 다시 보통 강도의 중간 속도로 4분의 4박자 가락에 올라탄다.


이윽고 다듬이질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시간, 센 강도의 빠른 속도로 4분의 4박자 다듬잇방망이 소리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한바탕 흥을 돋운다.


‘딱딱딱딱’, ‘딱딱딱딱’, ‘딱딱딱딱’, ‘딱딱딱딱’, 아까와는 전혀 다른 4분의 4박자 리듬이 목표지점을 향해 줄달음친다. 목표지점은 다듬잇살, 다듬이질을 통해 옷감이 윤이 나고 풀기가 찰지게 되는 현상이다. 어머니는 다듬이질을 멈추고 다듬잇살이 잘 오른 것을 확인하고서는 마침내 목에 건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친다.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 어머니

다듬잇살은 정신을 모아 집중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는 이 땅의 어머니들의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고귀한 집념이 신성한 육체적 노동과 어우러져 빚어진 아름다운 성취의 다른 이름이다.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 그 이름은 어머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다듬잇방망이를 두들기며 다듬이질로 평생을 보낸 어머니와 내 또래 자식들의 어머니들은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 무대의 원조 배우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는 사라진 다듬잇방망이 소리, 어머니의 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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