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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어머니에 대한 기억 ③어머니의 신체적 비밀

by 박인권

어머니에 대한 기억 ③어머니의 신체적 비밀


#어머니와 혹 주머니

어머니에게는 말 못 할 신체적 비밀 하나가 있었다. 어머니는 오른쪽 무릎 안쪽 접히는 부위 바로 밑에 지름 1cm 크기의 혹 주머니를 평생 달고 사셨다. 어머니는 서른다섯이던 1969년 여름, 아버지의 사업 부도 충격에 따른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 그 무렵 어느 날 목욕을 하던 중 우연히 작은 종기를 발견한 것이 혹 주머니의 출발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시간이 가면서 종기는 점점 커져 병원을 찾게 됐다. 검진 결과 통증이 없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그냥 지내도 무방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료 지식이 있을 리 없는 어머니는 의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데다 당시 동네 외과 의료 수준이 오늘날과는 많이 달라 혹 주머니는 그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와 운명을 함께 했다.


다행히도 혹은 지름 1cm쯤에서 성장을 멈춘 가운데 악성 종양으로 발전하지도 않았고, 이렇다 할 통증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어머니 몸에 얌전하게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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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 어머니의 팔찌와 반지, 목걸이. ⓒPARK IN KWON


의학 용어로 어머니 몸에 생긴 혹은 주머니 모양의 혹인 낭종(囊腫)으로 양성 종양(腫瘍)이었다. 양성 종양은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서 덩어리가 된 혹이 주변 조직을 침범하거나 전이(轉移)되지 않는 착한 종양인데 염증이 생기거나 증상이 없는 이상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혹을 구성하는 세포가 곪아 염증으로 악화하면 수술이 필요하며 간혹 조직 검사 결과 암이 발견되기도 한다니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어머니의 경우는 잘못될 경우의 수를 모두 비켜나간, 아주 운이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30대 중반의 젊은 여자 무릎 안쪽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제법 큼지막한 종양은 어머니에게 심리적 상처를 안겼다. 눈에 띄기 쉬운 노출 부위에 무단으로 둥지를 튼 종양은 일단 어머니의 옷차림새를 강제로 옥죄었다. 어머니는 무릎이 아예 드러나지 않는 긴치마나 바지만 고집했다.


무더운 여름,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통이 넓은 펑퍼짐한 반바지를 착용했는데, 그것도 식구들만 있는 집안에서 만이었다. 남에게 선뜻 보여줄 수 없는 신체적 비밀이라 어머니는 늘 심리적 트라우마를 안고 사셨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의 혹 주머니를 처음 본 순간

내가 어머니의 종양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2~3학년 때였다. 안방에서 한쪽 다리 무릎만 세운 아주머니 다리를 하고 앉아 과일을 깎는 어머니의 살짝 올라간 치마 밑으로 이상하게 생긴 종양을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무릎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놀라움과 궁금증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뭐긴 뭐야 혹이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처음 마주한 어머니의 혹은 어린 내가 보기에 흉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괴상한 과일 열매를 닮은 것이 매달려 있었는데, 만져보니 울퉁불퉁한 살덩어리가 유쾌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고, 손가락으로 눌러도 뒷걸음질을 치지 않고 버티는 촉감에서 단단한 물성(物性)이 전해졌다.


어머니의 몸에서 겪은 시각적 놀라움과 촉각적 충격은 곧 무뎌졌다. 별일 아니라는 어머니의 말을 무조건 신뢰했던 어린 나이인 데다, 수시로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부자연스러운 혹의 생김새가 어느 순간부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어머니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막내아들의 철없는 장난기

어머니 무릎에 난 혹이 놀라움과 충격에서 일상적이고 낯익은 모습으로 인식되자 그때부터 나는 마치 장난감처럼 그것을 만지고 흔들며 철없이 낄낄대는 일이 잦았다. 어머니도 짓궂은 나의 장난기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는지, 그럴 때마다 그러려니, 하고 막내아들이 스스로 그만둘 때까지 제지하지 않았다.


이런 나의 철부지 행동은 꽤 오래 계속됐는데, 고등학교 때도 멈추지 않은 것을 보면 나에게 어머니의 혹은 혹이 아니라 어머니였던 게 아니었나, 싶다.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의학 지식으로 볼 때, 어머니의 종양은 피부 바깥 부위에 매달린 주머니 형태라 일반적으로 피부층 아래에 생기는 표피 낭종이나 피지 낭종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아주 드문 양성 종양 사례라고 들었다.


내가 그림 재능을 조금만 타고났다면 어머니의 혹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글로써 대신하려니, 태부족(太不足)인 필력(筆力)이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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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천수경 중 일부. 어머니는 시간 날 때마다 염주를 돌려가며 불경을 소리 내어 읽었다. ⓒPARK IN KWON


양성 낭종은 피부 손상 또는 피지와 각질 등 각종 노폐물이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피부밑에 쌓여서 생기거나 유전적 요인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정확한 생성 원인은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누구에게나 양성 낭종이 생길 수 있으며 주머니 속 생체 조직에 염증이 심해지면 수술로 제거해야 하는데, 재발하는 수도 많다고 한다.


어머니의 혹은 생성 시기로 미루어 볼 때, 아버지의 사업 부도가 유발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는지, 일반적인 양성 낭종의 원인 때문인지, 이도 저도 아닌 알 수 없는 신체 조직의 부조화 탓인지 나로서는 여전히 알 도리가 없다.


#어머니의 유골에서 발견된 기이한 조각

오래전, 화장(火葬) 절차가 끝나고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어머니의 유골(遺骨)에서 나는 이상한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초승달처럼 생긴 기이한 모양과 색깔이 뼛조각과는 확연히 달라 정체가 궁금한 나머지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뚫어지게 쳐다본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 조각의 실체가 궁금하다.


아마 어머니와 마지막까지 함께 한 혹 주머니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믿거나 말거나 한 상상을 해 본다. 별것 아닌 혹 주머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그리운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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