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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어머니의 음식 ④육회(肉膾)와 붕장어회

by 박인권

어머니의 음식 ④육회(肉膾)와 붕장어회


#육회와 우둔살

육회(肉膾)는 우둔(牛臀)살로 불리는 쇠고기의 연하고 부드러운 살코기 부위의 핏물을 빼고 얇게 저며 다진 마늘과 파, 깨소금, 간장, 참기름, 후춧가루, 채 썬 배 등을 섞어 조물조물 무쳐낸 생고기다. 우둔살은 소의 허리 아래에서 허벅다리 위쪽 좌우로 살이 볼록하게 나온 부위인데, 살코기가 많고 기름기가 적어 느끼하지 않고 감칠맛이 뛰어나다. 살코기라 부드러우면서도 힘줄이 살아 있어 씹는 맛도 우수하다.


신선한 생고기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육회는 채 썬 배를 섞어 같이 먹기도 하지만, 취향에 따라 고기 따로, 배 따로 먹기도 한다. 육회를 먹을 때 달걀노른자를 터뜨려 찍어 먹거나 고기와 섞어 먹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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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肉)사시미. ⓒTrainholic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쇠고기 회, 육(肉)사시미

육(肉)사시미도 육회와 마찬가지로 소의 생고기 요리인데, 써는 방법과 먹는 방법이 다르다. 육사시미는 활어회처럼 살코기를 썰어 양념장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대구 지역에서는 뭉텅이의 경상도 사투리인 뭉티기라고 부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회(膾)를 고기나 생선을 날로 썰거나 살짝 데쳐서 먹는 음식이라고 정의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회는 날로 먹는 생회(生膾)와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는 숙회(熟膾)로 구분된다. 일각(一角)에서는 살코기를 양념과 섞어 먹는다는 점에서 육회는 육회 무침, 활어회처럼 양념장에 찍어서 먹는 육사시미를 육회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양념에 섞어 먹는 육회 맛과 양념장에 따로 찍어 먹는 육사시미 맛은 다른데, 개인적으로 육회는 감칠맛에서, 육사시미는 생고기 고유의 담백한 맛에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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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집에서 자주 먹는 육회비빔밥. 칼질을 한 살코기 모양이 얇게 저민 육회와는 다르게 길쭉하다.


#아버지의 최애(最愛) 음식 육회

대구 기와집 시절 육회는 옻닭과 함께 아버지의 음식이었다. 옻닭은 옻나무 껍질을 닭과 함께 삶은 닭백숙(白熟) 요리다. 아버지는 무더운 여름날이면 식구들을 이끌고 대구 앞산 자락의 유명한 백숙집을 찾아 늘 옻닭을 주문했다. 옻이 오를 염려가 있어 나와 형들은 옻나무 대신 삼계탕 약재가 들어간 백숙을 나눠 먹었다.


옻나무는 독성이 있어 옻이 오르면 가렵고 두드러기가 나는 후유증이 있다. 나는 지금도 옻나무 향이 거북해 옻닭은 먹지 않는데, 아버지는 나쁜 피를 풀어주고 원기 회복에 좋다는 옻닭을 여름 보양식으로 즐겨 드셨다.


#육회의 매력 포인트

외식(外食)으로 해결한 옻닭과 달리 육회는 어머니가 직접 만들었는데, 아버지의 최애(最愛) 음식이라 밥상에 오르는 횟수가 잦았다. 고기 맛을 모를 어릴 때는 뭣도 모르고 귀한 소고기라는 말에 무턱대고 젓가락질했는데, 고소한 참기름 향과 달짝지근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맛에 식욕이 끌렸던 기억이 난다.


익숙해지면 좋아하게 된다고, 육회를 먹는 날이 많아지면서 언젠가부터 생고기의 맛을 알게 됐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소문난 육회 맛집을 일부러 찾아다닐 정도로 육회 예찬론자가 돼 요즘도 술자리 메인 안주로 육회를 즐겨 먹고 있다.


생고기로 먹는 육회의 생명은 당연히 신선한 고기에 있다. 어머니는 당시 고향 집 근처 성당동에 있던 도축(屠畜) 시장까지 발품을 팔아 육회용 우둔살을 샀다. 동네 단골 정육점에서 살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갓 잡은 고기의 신선도가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점에서 그편을 선호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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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회. ⓒdonza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어머니표 육회

어머니가 육회를 요리하는 방식은 조금 남달랐다. 어머니는 육회 양념 재료 중 간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붉은빛이 감도는 생고기 특유의 시각적 아우라에 검은 간장이 거슬린다는 이유도 있었고, 깨소금만으로도 간을 맞추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어머니한테 직접 들은 얘기다.


어머니는 흰자를 걷어낸 달걀노른자도 터뜨려 생고기와 채 썬 배를 함께 무쳐서 냈다. 노른자 특유의 비릿한 내는 마늘, 참기름, 후춧가루에 묻혀 존재감이 사라졌고, 촉촉한 미감(味感)이 살아났다.


아버지는 육회를 먹고 나면 힘이 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그 말이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는 옛말처럼 들렸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어머니, 할머니는 큰아버지가 계시는 경북 상주 큰집과 대구 우리 집에 번갈아 머물렀다.


밥상에 고기반찬이 올라왔을 때, 할머니는 고기 많이 먹어라, 고기 먹어야 기운이 나고 키도 쑥쑥 큰다고 채근하셨다. 안 그래도 열심히 고기를 집어 먹던 나의 젓가락질은 더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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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는 육사시미를 뭉티기라고 부른다. 생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내놓는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칼질하는 방식이 달라 모양도 육사시미와는 다르다. ⓒdonza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세꼬시(뼈째회) 같은 붕장어회

육회와 함께 붕장어회도 어릴 때 자주 먹었다. 70년대만 하더라도 살아 있는 물고기를 실어 나르는 활어차(活魚車)가 상용화되기 전이라 내륙 지방에서는 활어회를 먹을 수 없었다. 그때 집에서 먹을 수 있었던 회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게 붕장어회였다.


바닷장어 과인 붕장어를 경상도에서는 아나고라 불렀는데, 아나고는 붕장어의 일본식 명칭이다. 지금은 전국 어디에서나 다양한 활어를 생선회로 먹을 수 있는 시대라 까마득한 옛날얘기지만, 내가 어릴 때 내륙 분지 대구에서는 붕장어회가 유일하게 유통된 회였다.


붕장어는 회를 뜨는 방법이 좀 특이하다. 일반 회와 달리 붕장어는 아주 잘게 토막 내 썰 듯이 회를 뜬다. 잔뼈가 많기 때문인데 작게 회 친 생선 살이 꽈배기 과자처럼 말려 있어 겉모양이 투박한 것과 달리,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살아 나 자꾸 손이 가게 된다.


시장에서 사 온 붕장어회는 따뜻한 물에 살짝 데쳐 손으로 꽉 짜 물기를 빼낸 뒤 초장에 찍어 먹는다. 살을 씹을 때 쫄깃한 식감은 일반 생선회보다는 떨어지지만, 남아 있는 잔뼈가 뼈째 잘게 썬 세꼬시 맛을 풍겨 나름의 매력이 있는 회다.


비타민A와 칼슘이 풍부해 면역력 증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붕장어회는 부산 지역에서 유명하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붕장어회를 다루는 횟집이 많지 않다.

서대문 로터리 부근에 붕장어 소금구이와 붕장어회로 이름난 곳이 있어 자주 갔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육회와 붕장어회만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어머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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