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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어머니의 음식 ③어머니표 김치와 밑반찬

by 박인권

어머니의 음식 ③어머니표 김치와 밑반찬


#밑반찬 인심

우리나라 음식문화를 거론할 때 꼭 따라다니는 말이 있는데, 밑반찬 인심이다. 한국 음식의 상차림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푸짐한 밑반찬이라는 사실은 집밥이나 식당에서나 다를 바가 없다. 한국식 밥상은 밥과 국, 찌개, 고기 또는 생선류의 주메뉴에다 네댓에서 대여섯 가지의 밑반찬으로 차려진다.


여기에 한국이 자랑하는 K푸드 김치의 존재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밑반찬은 오래 보관하고 먹을 수 있는 저장식품인 젓갈류와 장아찌, 조림류, 무침류, 볶음류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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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김치. ⓒCharles Hayne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김치의 자손들

주지하다시피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가 뿌리 깊이 배어 있는 우리나라 음식의 상징인 김치는 그 위상이 워낙 높고 넓어 다양한 종류의 김치 문화를 창조해 냈다. 총각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부추김치, 파김치, 오이김치, 백김치, 물김치,오이소박이, 나박김치, 보쌈김치, 고들빼기김치, 섞박지, 깍두기, 동치미는 모두 김치의 자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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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박김치. ⓒby ayustety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김치의 한자어는 잠길 침, 나물 채, 침채(沈菜)로 소금에 푹 절인 채소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오랜 세월 구개음화 현상을 거쳐 침채~팀채~딤채~김채~김치로 명칭이 정착됐다는 설(設)이 있다. 김치류의 특징은 소금에 절인 뒤 고춧가루 등 양념을 버무려 숙성시킨 발효식품이라는 점이다. 물김치와 백김치, 동치미만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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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milkchug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정통 한식 상차림에는 김치의 자손들이 두루 등장하는데, 눈의 호사(豪奢)를 덤으로 안기는 김치 식도락(食道樂)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겠다.


#어머니의 김치, 부추김치

기와집에 살 때 어머니는 배추김치 외에 열무김치, 부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 백김치를 자주 밥상에 올렸으며 겨울철에는 살얼음이 동동 뜬 별미 김치 동치미를 빼놓지 않고 담가 식구들의 입맛을 돋웠다. 가끔 부추의 경상도 방언인 정구지로 담근 부추김치를 밑반찬 삼아 내놓기도 했는데, 입맛이 없을 때 찬물에 밥을 말아 같이 먹으면 비교할 수 없는 새콤한 맛에 식욕이 살아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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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김치. ⓒPARK IN KWON


요즘에는 부추김치가 흔치 않은데, 어쩌다 식당 밥을 먹을 때, 부추김치가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는 풋풋한 맛보다는 신맛이 강한 곰삭은 부추김치를 좋아하는데, 배추김치나 다른 김치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풍미도 마음에 들지만, 옛날 어머니의 부추김치가 생각나는 특별한 추억을 안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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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 ⓒKorea.net/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3년 만에 사라진 주문식단제

우리나라 밥상 문화의 약방에 감초, 밑반찬도 한때 위기가 있었다. 1984년 손님의 주문에 따라 맞춤형 식단을 제공하는 주문식단제(注文食單制)가 의무 시행됐는데, 대대손손 전해온 한국 음식문화의 전통과 정서에 맞지 않아 3년 만에 폐지된 일이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낭비적 음식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였으나 한국인의 음식 DNA, 밑반찬 인심과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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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김치. ⓒsarang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어머니의 밑반찬

우리 집 밑반찬은 젓갈류와 장아찌, 조림류, 무침류, 볶음류가 다 망라됐다. 젓갈류는 명란젓, 하나만 먹었는데 간혹 오징어젓을 먹을 때도 있었다. 명란젓은 아버지가 너무 좋아해 끼니때마다 상차림에 빠지지 않았고, 어릴 때 입맛에 길들여 지금도 명란젓은 우리 집 젓갈 반찬의 독보적인 존재다. 희한하게도 아들도 명란젓 맛에 푹 빠진 것을 보면, 입맛도 대물림되는 것 아닌가, 싶다.


명란젓은 시장에서 사다 먹었고, 오징어젓은 어머니가 직접 담갔는데 식구들 모두 오징어 숙회를 훨씬 더 좋아해 식탁에 오른 기억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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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란젓. ⓒNissy-KITAQ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장아찌는 마늘장아찌가 단골 메뉴였고, 콩을 볶아 기름과 간장에 조린 콩자반, 소고기를 토막 내 간장에 조린 장조림, 감자조림, 우엉조림, 두부조림, 무채, 오이무침, 가지를 쪄서 무친 가지무침, 마른 오징어채에 양념을 넣고 무친 오징어채무침, 감자볶음, 어묵볶음 등이 어머니가 주로 만든 밑반찬이었다.


우리 집 상차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있었는데, 김이었다. 밑반찬의 범주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김의 존재감만큼은 독보적이었다. 다른 집도 그렇겠지만 우리 집 식구들도 불에 살짝 구운 마른 김을 기름간장에 찍어 밥을 싸서 먹는 즐거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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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장아찌. ⓒPARK IN KWON


#마늘장아찌의 존재감

어머니표 밑반찬 중 지금까지도 강렬한 인상으로 뇌리에 남는 것이 있는데 마늘장아찌다. 깐 마늘을 사용하는 요즘의 마늘장아찌와 달리 어머니는 마늘 속껍질을 까지 않고 통째 식초와 설탕, 간장에 절였다. 숙성이 잘된 마늘장아찌는 밥반찬으로 그만이었다.


맵고 독한 맛이 아리고 톡 쏘는 마늘장아찌는 발효 과정을 거친 간장 성분이 적당히 짭조름해 밥과 어울리는 균형미가 탁월했다. 속껍질을 까지 않아 껍질을 입안에서 발라내야 했는데, 불편함보다는 마늘장아찌를 밥반찬으로 먹는 즐거움이 가져다준 미각적 만족감이 더 컸기에 사시사철 밥상에 오르지 않는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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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박이. ⓒKatsumi funami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마늘 속껍질을 혀와 앞니를 요령 있게 부려 벗겨내는 재미는 우리 집 마늘장아찌를 먹을 때 누릴 수 있는 낙(樂)이라면 낙이었다. 마늘은 면역성을 강화하고 항암 효과에 뛰어난 밥상의 보약이라는 아버지의 말씀까지 더해 우리 집 식구들 모두 마늘장아찌를 사랑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짓거리를 내놓을 때, 네 식구 밥뚜껑에 수북이 쌓인 마늘 속껍질은 어머니표 마늘장아찌의 위상을 새삼 느끼게 한 징표(徵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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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Korea.net/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주말 상차림 당번일 때, 생각날 때마다 마늘장아찌를 직접 담그는데, 마늘을 씻고 다듬어 통에 넣고 간장을 붓는 행위 자체가 즐겁고 제대로 삭은 마늘장아찌를 식구들과 함께 먹는 행위는 더 즐겁다. 요새 내가 담는 마늘장아찌는 깐 마늘을 사용한다. 마늘뿐 아니라 양파와 대파, 청양고추까지 넣어 삭혀 먹는데 식구들이 다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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