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집에서 여름나기 ②아이스케키와 빙수(氷水), 냉차(冷茶)의 추억
#대(大)프리카, 대구(大邱)의 여름
나는 초중고를 대(大)프리카, 대구에서 다녔다.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은 시간대인 여름철 오후 2시~오후 3시, 고향 집의 마당은 펄펄 끓었다. 아침부터 인정사정없이 내리쬔 뙤약볕에 달궈진 마당 아래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열기(熱氣)가 기승을 부리는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눈을 어지럽혔다.
이때쯤, 어머니는 수돗가에 놓인 고무호스를 끌어다가 마당 구석구석에 물을 뿌려댔다. 마당의 뜨거운 기운은 강제로 물을 흠뻑 머금는 바람에 한풀 꺾이고, 촐랑대는 움직임으로 시야(視野)에 아른거리던 아지랑이도 짐짓 다소곳해지는 척했다.
옛날 아이스케키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스바. ⓒGeoff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여름 주전부리, 빙과(氷菓)
여름방학 때 도서관보다는 집에서 공부하는 버릇이 몸에 밴 나는 어머니에게 하루치 용돈을 받아 들고 단골로 애용하는 어딘가로 향하는 날이 많았다. 어딘가는 나무막대 얼음과자의 그 시절 이름, 아이스케키 가게였다. 우유에 설탕과 식용색소, 향미료를 섞어 틀에 붓고 나무막대기를 꽂아 얼린 얼음과자인 아이스케키는 당시 아이들의 최애(最愛) 여름 주전부리이자 별미였다.
아이스케키는 동네 아이스케키 가게에서도 팔았지만, 아이스케키 통을 어깨에 메고 다니며 호객행위로 입맛을 유혹하는 아이스케키 장수한테서 많이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골목길을 부지런히 오가며 아이크케키를 팔던 행상꾼의 모습은 무더운 여름날 오후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딸기빙수. 요즘 빙수는 아득한 아날로그 시절 빙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Wyteoh2000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이스케키 행상꾼
아 이~스 케키, 시원한 아 이~스 케키 있어요, 라고 외치는 소리는 늘 군침을 돌게 했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아이스케키 장수가 지나가면 다 같이 아이크케키를 사 먹었다. 나와 친구들은 빨아먹다가 막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먹기도 하면서 아껴 먹었는데, 아이스케키를 다 먹고 나면 입술과 혓바닥이 노랑, 파랑, 빨강으로 물든 모양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런 모습을 서로 쳐다보며 우습다고 깔깔대곤 했었다. 아이스케키에 들어 있는 색소 때문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이스케키는 불량식품일 것이 틀림없지만, 그때는 더운 날 아이들의 동심(童心)을 사로잡은 꼭 먹고 싶은 얼음과자, 빙과(氷菓)였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용돈벌이 삼아 아이키케키 장사를 하는 아이스케키 청소년들도 적지 않았다. 아이스케키 장사는 더울수록 장사가 잘되고,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었다.
어머니도 아이크케키를 싫어하지는 않았고, 형들이 집에 있으면 형들 몫까지 사서 나눠 먹었다. 아이스케키의 추억은 지금 생각해도 입맛을 다시게 할 정도로 강렬한 맛이었다.
화려한 요구르트 빙수. ⓒCYAN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치명적인 오싹한 맛, 빙수(氷水)
아이스케키와 함께 빙수(氷水)도 그 시절 더위를 식히는 특별식이었다. 그때의 빙수는 요즘의 빙수와 달랐다.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빙수 기계 상단부 틀에 얹고 손잡이를 돌리면 눈꽃처럼 얼음 가루가 아래에 수북이 쌓이는데 그 위에 삶은 팥고물과 우유를 농축(濃縮)한 연유(煉乳), 향과 맛을 내는 향미료와 알록달록한 색소를 더해 만든 것이 옛날 빙수다.
팥고물과 연유의 달짝지근한 맛과 묘한 향을 풍기는 빙수를 정신없이 퍼먹다 보면, 얼음물이 흥건히 남는데 물 마시듯 얼음물을 들이켜면 속이 다 시원하고 잠시나마 더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아이크케키는 빨아먹는 재미가 쏠쏠했고, 빙수는 이가 시릴 정도로 더위를 잠재우는 오싹한 맛이 일품이었다.
식성이 변했는지, 어렸을 때와 달리 커서는 빙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먹을 일이 별로 없는 편이다. 어쩌다 몇 번 먹어본 적이 있긴 한데, 요즘 빙수는 음식의 모양과 맛을 더하는 고명이라 치기에는 과일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과일을 먹는 건지 빙수를 먹는 건지, 영 어색했다. 맛도 옛날 빙수 맛이 아니었다.
요즘의 복숭아 냉차. ⓒRahul Nadgauda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여름 음료, 냉차(冷茶)
냉차(冷茶)도 빼놓을 수 없는 여름 주전부리였다. 냉차는 주로 리어카(rear car) 행상꾼이 팔았다. 리어카는 자전거 뒤에 매달거나 사람이 직접 끄는 작은 수레를 말하는데, 시장통(市場通)에 가면 으레 볼 수 있었다. 행상꾼은 아저씨나 아줌마였다.
냉차는 두 종류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보리를 넣고 끓인 보리차에 설탕이나 꿀을 풀어 식힌 뒤 얼음통에서 차갑게 얼린 보리 냉차와 단맛이 설탕보다 훨씬 강한 인공 합성 감미료인 사카린과 색소, 얼음을 넣어 만든 냉차가 있었다. 비싼 꿀보다 설탕을 넣은 보리 냉차가 일반적이었다.
미숫가루.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냉차는 만들기가 간편해 곳곳에 수레가 널려 있었다. 간편하게 마실 수 있고, 한 컵을 들이켤 때의 시원한 맛에 더해 비교적 가격이 싸 호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우무 콩국. ⓒScudsvlad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냉(冷) 미숫가루와 우무 콩국
기억을 더듬다 보니, 미숫가루에 얼음을 띄운 냉(冷) 미숫가루와 우무묵을 채 썬 우무 콩국도 생각난다. 미숫가루는 내가 지금도 좋아하는 기호(嗜好) 음식이다. 배는 고프고 시간이 없을 때, 꿀을 넣은 미숫가루 한 컵을 마시면 속이 든든하다. 우무 콩국은 요즘 보기 힘든데, 어머니를 따라 재래시장에 가면 간이의자에 걸터앉아 꼭 한 그릇씩 맛있게 비웠던 기억이 난다.
음식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음식 취향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음식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