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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창고 추억여행

31. 기와집에서 여름 나기 ④모기장과 모기향, 파리채

by 박인권

기와집에서 여름 나기 ④모기장과 모기향, 파리채


#미니 모기장

대학 졸업 후 둘 다 집에서 독립한 20대 중후반의 아들과 20대 초반의 딸에게 모기장을 아냐고 물어보았다. 가족 단톡방을 통해서였다. 아들은 네 살 아래 동생이 몇 년 전 집에서 썼던 것 아니냐고 답글을 올렸다. 나는 아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면 그렇지 알 리가 없지, 라고 단정하고 있던 차에 집사람이 내 기억을 일깨우는 한마디를 던졌다.


딸이 침대 위에 설치하는 미니 모기장을 한 번 사용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아, 그때 그거, 하고 뒤늦게 생각이 났다. 요즘도 모기장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해 웃음이 났다.


#한여름의 골칫덩어리, 모기와 파리

어릴 때 여름과 연상된 추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셋 있는데, 모기장과 모기향, 파리채다. 모기장과 모기향, 파리채는 옛날 한옥이나 기와집에서 여름 한 철을 나는 데 꼭 필요한 생필품이었다. 마당이 있는 기와집은 여름이면 밤낮으로 방문과 대청마루 문을 열어 놓아야 했다.


에어컨이 없고 선풍기와 부채로만 더위를 이겨야 해 바깥바람 유입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문이란 문은 다 열려 있어 마당~대청마루~안방 또는 마당~작은 방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하나의 개방형 연결망이었다.

마당에서 방안이 훤히 다 보이고 여름철의 골칫덩어리 모기와 파리 떼도 자유롭게 방안을 드나들었다. 모기와 파리는 인간에게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존재라 필수 타도 대상인데, 밤에는 그 해악(害惡)이 극에 달해 특단(特段)의 조치가 필요했다.


극에 달하는 해악의 내용은 모기는 사람의 피를 강탈(强奪)하고 전염병을 옮기고, 파리는 위생관리의 위협 요소라는 점이다. 둘 다 수면 방해의 공범(共犯) 임은 물론이다. 모기는 밤에 기승을 부렸고, 파리는 밤에도 촐랑댔지만, 낮에 더 성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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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이나 라이터로 불을 붙여 연기로 모기를 쫓는 모기향. 옛날식 모기향과 모양도 같고 방식도 같은 모기향은 요즘에도 있다. ⓒPARK IN KWON


#모기장 설치의 지난(至難)함

그래서 등장한 것이 모기장과 모기향, 파리채다.

모기장은 망사(網紗)로 성기게 짜 모기의 침입을 막는 장막(帳幕)으로 그물처럼 얽어 만든 그물망이다. 침대가 아닌, 방바닥에 이불과 요를 깔고 자던 시절이라 모기장의 방어망(防禦網)은 방안 거의 전부를 커버해야 했다.


잠자기 전 모기장 설치에는 온 가족이 매달렸다. 방안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지켜내야 하는 수비 범위가 넓어 모기장 크기가 요즘 미니 모기장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이불과 요를 깐 다음 두, 세 명이 달라붙어 모기장 모서리 아래 끝을 잡고 넓게 펼쳐 방구석까지 닿게 한 뒤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마지막 조치를 하는 게 중요했다. 마지막 조치는 모기장이 방바닥 위에 떠 공간이 생기지 않게끔 적당한 물건 따위로 이곳저곳을 눌러 고정하는 일이었다.


#집요한 모기의 공격력

채비를 잘한다고 해도 모기의 침투 능력은 간단치 않았다. 방바닥과 모기장 사이의 살짝 벌어진 틈새를 어찌 알아챘는지, 모기장 안으로 유유히 뚫고 들어와 기어이 피 맛을 보고야 마는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하는 놈들이 적지 않았다.


밤마다 되풀이되는 모기와의 전쟁은 여름 내내 전면전(全面戰)으로 치러졌는데, 9월로 접어들고서도 당분간 계속되곤 했다. 모기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상흔(傷痕)은 얼굴과 팔, 다리, 손 등 온몸 구석구석에 쓰리고 간지럽게 새겨졌다. 더워서 잠 못 들고, 모기에 시달려 잠 못 든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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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열로 냄새를 피워 모기를 쫓는 전자 모기향. ⓒPARK IN KWON


#극성스러운 파리

모기처럼 물지는 않지만 잠결에 앵앵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거나, 수면(睡眠) 도중 일방적으로 살갗을 핥아 어슴푸레하게 불쾌한 촉감을 유발하는 파리의 극성도 만만찮았다. 파리는 몸집이 모기보다 커 모기장 안으로 침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텐데, 끈질기고 드세게 달라붙는 적극성을 견디다 못해 자다가 깰 때마다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모기는 순간 침투력과 모기향 연기를 피해 달아나는 능력이 뛰어났고, 파리는 치근덕거리는 건달 기질과 모기향 연기를 참아내는 인내력이 뛰어났다.

모기장은 자기 전 설치할 때도, 아침에 일어나 접어서 갤 때도 이래저래 귀찮았다.


#여름밤의 화생방 무기, 모기향

모기향은 모기장을 설치하기 전에 모기장 바깥에 피웠다. 지금처럼 전자 모기향이 아니라 연기로 모기를 쫓는 일반 모기향이라 향이 독했다. 성냥불에 달궈진 모기향은 열 기운을 받아 살충 성분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데, 이 연기에 모기가 걸려들면 신경이 마비돼 바둥거리다가 죽는다.


모기향의 형태는 소라껍데기처럼 빙빙 비틀려 돌아간 나선형이었다. 요즘도 불로 연기를 피우는 일반 모기향을 볼 때가 있는데, 식당 야외 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테라스 형태의 맥주 가게에서 한 번씩 본다.


#친환경 해충 박멸(撲滅) 도구, 파리채

파리채는 주로 아침과 낮, 저녁에 그 효용성을 발휘했다.

파리채는 팔과 손힘을 이용한 운동 에너지로 해충을 때려잡는 친환경 박멸(撲滅) 도구다. 길쭉한 손잡이에 널따란 사각형 모양의 채가 달린 모양인데, 방바닥이나 벽을 때리면 찰싹,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난다.


#까다로운 파리채 사용 방법과 남다른 성취감

파리채는 다루는 요령이 꽤 까다로웠다. 타격 시 정확성과 민첩성, 파워 삼박자를 갖춰야 해 명중시키기가 쉽지 않다. 모기는 크기가 작고 빨라서 성공하기가 어렵고, 파리는 순간 반응력이 뛰어난 데다 한곳에 머무는 시간이 아주 짧아 성공하기가 더 어렵다.


파리채는 명중시키기가 쉽지 않은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대신,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도 남다르다. 목표물에 적중하는 순간 파리채에서 나는 호쾌한 타격감에 아드레날린이 솟고, 몸이 짓이겨진 해충의 압사 광경을 목격했을 때의 짜릿함은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쾌감이다.


타격 기술이 능수능란한 특등사수라면 공중 타격도 가능한데, 성공 확률이 지극히 낮다. 맨손으로 모기를 잡는 시도도 많이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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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망을 타고 흐르는 전류를 이용해 모기와 파리를 잡는 배드민턴 라켓 모양의 전자 모기 채. ⓒPARK IN KWON


#사체(死體) 처리와 전자 파리채

어렵사리 작전에 성공하더라도 처리해야 할 일이 둘 남아 있다. 죽은 모기와 파리의 사체를 휴지로 싸서 버리는 것과, 망자(亡者)의 몸에서 터져 나온 얼룩진 체액을 일일이 제거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파리채 대신 전자 파리채가 유행이다. 전자 파리채는 배드민턴 라켓처럼 생겼는데 그물망에 전기를 흘려 파리나 모기 등 해충을 감전사시켜 퇴치(退治)하는 21세기형 박멸 도구다.


#모기장과 선풍기

모기장에 얽힌 추억이 갑자기 소환하는 일화가 하나 생각나 덧붙인다.

내가 작은 방에서 잘 때, 나와 형들은 자기 전 선풍기를 밤새도록 틀어놓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꼭 방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방안의 열기를 바깥으로 새 나가도록 한 이유도 있었지만, 방문을 닫은 채 선풍기 바람을 쐬면 큰일 난다는 이유도 있었다.


큰일 난다는 내용은 꽉 막힌 공간에서 선풍기 바람에 오래 노출되면 질식할 수 있다거나 입이 돌아가고 몸에 냉기가 쌓여 이상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저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넘어갔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과학적 근거가 없는 불필요한 방책(方策)이었다.


구전(口傳)으로 전해온 조상들의 생활 지혜 중에는 감탄을 자아내는 것도 많지만, 선풍기 바람처럼 낭설(浪說)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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