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골목길 오디세이 ①우산 수선(修繕) 장수와 엿장수
골목길 오디세이 ①우산 수선(修繕) 장수와 엿장수
#맨땅의 자유로(自由路), 골목길
70년대 고향 집 동네 골목길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모든 이들에게 개방된 열린 공간이었다. 골목길을 드나드는 데에는 어떤 제약도 없었고, 누구라도 언제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맨땅의 자유로(自由路)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그곳에서는 온갖 광경이 무시로 펼쳐졌고, 신기한 것과 웃기는 것 볼썽사나운 것과 흥미진진한 것 등 볼거리도 많았다.
#날마다 보는 행상(行商)꾼들
골목길 있는 곳에 주택가가 있고 주택가 있는 곳에 골목길이 있던 당시에는 이 동네 저 동네를 떠돌며 물건을 파는 행상꾼과 생활용품 수선(修繕) 장수들이 날마다 찾아왔는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기억나는 대로 행상꾼들을 나열해 보면 우산을 고치는 우산 장수, 엿장수, 칼을 갈아주는 칼 장수, 고물(古物) 장수, 뻥튀기 장수, 막대형 얼음과자인 아이스께끼 장수, 멍게 해삼 장수, 찹쌀떡 장수, 메밀묵 장수, 홍게 장수가 있었다.
천 우산 철제 뼈대. 70, 80년대에는 우산 살이 부러지거나 휘어지면 우산 수선 장수에게 맡겨 고쳐 썼다.
#특수 활동차, 서커스단 홍보 풍물패, 차력사(借力師)
골목길엔 행상꾼만 드나든 게 아니었다.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출동하는 방역차, 수시로 출몰하는 환경위생(衛生) 차,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급히 왔다가 급히 사라지는 청소차도 있었고 계절이 바뀔라치면 짜잔, 하고 나타나는 서커스 곡마단 홍보 풍물패도 아이들을 몰고 다녔다. 골목길은 아니지만 동네 공터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차력사(借力師)가 등장해 신기한 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맑은 날 출동하는 우산 수선(修繕) 장수
70~80년대 초에는 일회용 비닐우산이 널리 유통됐던 시대라 수명이 긴 천 우산은 귀했다. 일회용 비닐우산을 고쳐 쓰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산 장수가 다루는 물건은 주로 천 우산이었다. 물자가 귀하고 소득수준이 지금과는 많이 다른 때라 고쳐 쓸 수 있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고쳐 쓰던 시절이었다. 집 집마다 고장 나거나 망가진 우산이 한두 개씩은 있었다. 우산 장수는 요일을 정해 이 골목 저 골목에 진(陣)을 치고 몇 시간이고 고장 난 우산들을 고쳤다.
천 우산은 대개 우산 살인 철제 뼈대가 부러지거나 휘어지고, 방수 천이 찢어지거나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는 일이 많았다. 우산 장수가 뜨는 날이면 수리가 필요한 동네의 우산이 죄다 모여들었다. 부러진 우산 살을 새살로 교체하고 휘어진 살을 바로 잡고 구멍 난 우산 천을 때우거나 깁는 광경이 신기해 우산 장수 주변에는 늘 아이들이 늘어서서 구경하곤 했다.
일회용 비닐우산 장수에게 비 오는 날이 대목이라면, 우산 고치는 수선 장수에게 대목은 날씨가 맑은 날이었다. 우산 장수의 손을 거친 천 우산은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살아났다. 우산 장수의 손은 약손이었다.
천 우산의 천은 방수 처리돼 있는데, 낡아서 구멍이 뚫리거나 찢어지면 우산 장수에게 맡겼다.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 엿
엿장수는 동네 행상꾼 중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군것질거리가 별로 없던 그때의 아이들에게 엿은 인기 만점이었다. 곡식을 엿기름으로 삭힌 뒤 자루에 넣어 짜낸 국물을 고아 굳힌 엿은 단맛의 결정판이자 끈적끈적한 식감(食感)이 도드라지고 맛이 뛰어나 아이들이 좋아했다.
엿에 들어가는 곡식은 찹쌀, 멥쌀, 옥수수, 보리 따위인데 단단하게 굳힌 갱엿과 물컹물컹한 물엿으로 구분된다. 엿의 종류는 아주 많았다. 엿 가운데 단맛이 으뜸이라는 쌀 엿과 옥수수엿, 고구마엿, 호박엿, 보리 엿, 무엿, 흰 가락엿, 깨엿, 땅콩엿, 검은콩 엿 등이 있다. 참깨와 호두, 생강, 잣, 대추가 들어간 약엿도 있었다는데 먹어본 적은 없다.
가락엿은 갱엿을 뽑을 때 공기를 집어넣어 길쭉하고 가느다랗게 굳힌 것인데, 엿 속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이유다. 엿을 부러뜨린 속이 수수깡을 닮았다. 골목길 엿장수에게 고물을 주고 바꿔 먹은 엿이 바로 가락엿이었다. 가락엿끼리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엿판 위에 밀가루가 넓게 깔려 있었다.
엿장수에게 고물을 주고 자주 바꿔 먹은 흰 가락엿. ⓒ국립국어원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엿치기
가락엿과 관련한 재미난 일화가 생각난다. 대표적인 것이 엿치기다. 엿치기는 엿끼리 서로 박치기를 시키면 두 동강이 나 속이 드러나는데, 구멍수나 구멍의 크기에 따라 승부를 결정짓는 게임이었다. 이기는 사람이 엿을 따 먹는 놀이로 친구들과 자주 한 기억이 난다. 엿이 너무 딱딱하게 굳었을 때는 엿장수 가위로 내리쳐 두 동강을 냈다.
흥미를 끌기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엿장수가 아이들을 상대로 치르는 경우도 많았다. 아이들이 이기면 가락엿 하나가 보너스로 주어졌고, 엿장수가 이기면 보너스가 없었다.
#엿장수 마음대로
가끔 가락엿 대신 호박엿으로 바꿔 먹기도 했다. 호박엿은 물엿인 조청에 호박 진액(津液)을 넣고 고와 굳힌 것이라 물컹물컹한데, 엿장수가 어떻게 자르느냐에 따라 엿의 크기가 달라졌다.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은 아마 여기서 유래된 게 아닌가, 싶다.
#엿장수의 가위질
가위질은 엿장수를 상징하는 현란한 손놀림의 다른 이름이다. 엿장수는 쇳소리가 나는 가위질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동네 골목길 어귀에서 쩌렁쩌렁한 가위질 소리가 메아리치면 고물 하나씩을 손에 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다. 아이들에게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는 달콤하게 들렸고, 군침을 돌게 했다.
손님이 별로 없을 때, 엿장수는 오랫동안 갈고닦은 가위질 솜씨로 신명 난 전통 가락을 찰진 소리로 연주했다. 그 가락은 대개 품바타령이었고 이따금 유행가(流行歌)를 섞어 춤사위까지 펼치기도 했다.
고소한 맛과 단맛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땅콩엿. ⓒSJ Yang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엿과 바꿔 먹었던 고물(古物)
아이들이 엿장수에게 가지고 가는 고물은 주로 헌 고무신이나 낡아 너덜너덜해 진 운동화, 찌그러진 그릇과 냄비, 낡고 고장 나 못 쓰게 된 장난감, 헌 옷 등이었다. 엿과 바꿀 마땅한 물건이 없는 아이들은 한 움큼의 구슬을 가져가기도 했는데,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운 좋게 인정 많은 엿장수를 만나면 땅콩엿 한 조각을 얻어먹으며 즐거워했다.
갱엿이나 물엿이나 엿을 먹고 나면 이빨에 엿 찌꺼기가 쩍쩍 달라붙거나 끼어 있는데,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꺼내 다시 먹곤 했다. 그 시절 엿은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였다.
#합격을 기원하는 합격 엿
요즘에도 입시 철이면 합격을 기원하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감성에 기댄 합격 엿이 맞춤형 상품으로 쏟아지는 모습을 종종 본다. 끈적끈적하고 치아에 달라붙는 엿처럼 떡하니 시험에 붙으라는 소망이 담긴 마케팅 상품인 셈이다.
#엿이나 먹어라
엿과 관련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습관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엿이나 먹어라, 는 표현이다. 상대에게 욕을 하고 싶거나 골탕을 먹이고 싶을 때, 또는 못마땅할 때 꺼내는 은어(隱語)인데, 정확한 출처는 밝혀진 바가 없다.
엿은 요즘에도 있지만 엿을 먹을 일은 거의 없다. 추억의 음식 중 세월의 풍화(風化)에 휩쓸려 간 가장 쓸쓸한 이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