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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향 집 오디세이 ⑤다목적 공간, 가정집 마당 수돗가

by 박인권

고향 집 오디세이 ⑤다목적 공간, 가정집 마당 수돗가


#마당 수돗가와 섬돌

고향 집 마당 한 구석에는 제법 널찍한 수돗가가 있었다. 70년대에 흔했던 개량 한옥이나 기와집에는 변변한 실내 화장실이나 목욕시설이 따로 없었다. 세수도 수돗가에서 하고, 머리도 수돗가에서 감고, 빨래도 수돗가에서 했다. 안방과 쪽문으로 통하는 부엌에도 수도시설이 있었으나 밥 안치고 조리하고 설거지하는 용도로만 사용돼 물과 관련된 나머지 일상은 모두 수돗가에서 이뤄졌다.


마당 수돗가는 대문 가까운 곳에 있었다. 어린아이 키 높이 정도의 수도 주변으로 편평한 섬돌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섬돌은 발을 씻을 때 편리하도록 발을 올려놓는 용도로도 쓰였고, 빨랫감을 치댈 때도 쓰였다.


#공동 세면장이자 빨래터, 마당 수돗가

마당 수돗가는 공동 세면장이자 빨래터였다. 우리 가족과 곁방 식구까지 일곱 명은 아침저녁으로 수돗가를 들락거렸다. 수도 아래에는 지름 1m 남짓한 커다란 고무 대야가 보초 서듯 24시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고무 대야에는 늘 수돗물이 찰랑찰랑 넘쳤고 그 물은 세면(洗面)용으로, 양치용으로, 세발(洗髮)용으로, 세족(洗足)용으로, 빨랫감 세탁용으로 소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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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식 수도꼭지와 수돗물. ⓒRichard Reame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식수로 사용했던 수돗물

그때는 수돗물을 식수(食水)로 사용했는데, 주전자나 물병에 수돗물을 받아 마시거나 보리차를 끓여 마셨다. 우리 3형제는 목이 타면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양치질할 때는 고무 대야 물 대신 수도꼭지를 열어 물컵에 물을 받아 사용했다.


#공동생활의 지혜, 고무 대야의 실용적 가치

고무 대야에 받아놓은 물을 쓰는 동안에는 항상 수도를 틀어 물을 보충했는데 다음에 사용할 사람을 위한 배려였다. 고무 대야를 수돗가에 비치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실용적이라는 점에서 공동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실용성은 여러 명이 기다릴 필요 없이 동시에 수돗물을 사용하는 데에 고무 대야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이었고, 고무 대야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는 실용성을 구현하는 지혜의 도구였다. 플라스틱 바가지는 한 개일 때도 있었고, 두 개일 때도 있었다.


식구들이 내놓은 빨랫감도 수돗가에서 빨았는데 야무지게 치대야 땟국이 없어지는 와이셔츠나 흰옷은 빨래판 위에 놓고 빨랫비누로 세탁했다. 한여름에 더위를 이기는 의식처럼 날마다 치른 약식 웃통 샤워인 등목 장소도 마당 수돗가였다.


#한겨울 비상경보, 수돗물 동결과 수도관 동파

마당 수도는 한 지붕 두 가족의 공동생활을 지탱하는 집안의 우물과 같은 존재였는데, 강추위가 닥치는 한겨울이 되면 가족 모두에게 비상이 걸리곤 했다. 비상경보(警報)의 원인은 두 가지인데 수돗물 동결(凍結)과 수도관 동파(凍破)였다.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되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형 사고나 다름없다. 일상(日常)이 불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고 수습을 하느라 온 식구가 끙끙대야 했다. 꽁꽁 얼어붙은 수도는 녹여야 하는데, 뜨거운 물을 갑자기 부으면 아예 수도관이 터질 염려가 있어 살살 달래가며 해동(解凍)시켜야 했다.


#수돗물 해동 방법

해동 방법은 미지근한 물을 수도관과 수도꼭지 부위에 조금씩 뿌린 다음 미지근하게 적신 수건을 두르고 10분가량 기다린 뒤 조심스럽게 수도꼭지를 틀어 물이 나오는지 확인하는 식이다. 10분이 지났는데도 언 수도관이 녹지 않았을 때는 처음부터 같은 요령을 한 번 더 반복해야 했다. 대개는 두 번이면 막힌 수도관이 열리고 물이 나왔는데 네다섯 번씩 용써야 해결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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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에 연결된 수도관. ⓒPeripitu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수도관 동파의 후유증

수도관이 터지는 경우는 대형 사고를 넘어 참사(慘事)인데, 수리기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한겨울에 추위의 사각지대에 놓인 수도관 동파 사고는 흔한 일이라 수리기사의 몸이 열 개라도 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수리기사가 오기까지는 한나절로도 모자랐고 다음 날이 돼서야 겨우 사태가 진정됐다.


그때까지 먹는 물은 이웃집에서 빌린다 쳐도 씻는 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빨래와 설거지도 뒤로 미뤄야만 했다. 수도관을 교체하는 데에 든 비용도 만만찮았다.


#예방 조치

집 집마다 수돗물 동결과 수도관 동파를 예방하기 위해 나름의 대책을 세웠는데 헝겊이나 수건 따위로 수도관을 꽁꽁 싸매고 노끈으로 풀리지 않게 단단하게 동여맸다. 마당 바닥 아래에 설치된 수도계량기도 보호 대상이었다. 잠들기 전에 수도꼭지를 아주 조금만 틀어 물이 졸졸거리도록 조치도 취했지만, 기온이 급강하한 날에는 소용이 없었다.


만반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극심한 한파(寒波)가 몰아치면 어쩔 수 없이 대형 사고와 힘겹게 씨름해야 했다. 영하의 날씨 속 마당 수돗가는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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