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색다른 주제를 소개할까, 한다. 애써 찾아가야 먹을 수 있는 선짓국 이야기다. 내게 선짓국은 고향의 정취를 반추할 수 있는 음식이고 고향의 향기가 서린 고향의 음식이다. 거무튀튀한 검붉은 덩어리. 소의 피가 식어 굳어진 덩어리인 선지는 씹을 때 사각사각 소리가 들릴 듯 말 듯하며 찰기가 느껴지면서 포슬포슬하고 부드럽게 부서진다.
지난 7월 하순 1년 만에 찾은 대구의 한 식당에서 우연히 선짓국을 먹었다. 설렁탕, 북엇국, 복국, 콩나물국과 마찬가지로 선짓국도 해장국이다. 과음한 다음 날, 술꾼들이 숙취 해소를 위해 즐겨 먹는 해장국의 역사는 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을 것이다.
선짓국은 국 종류로서는 드물게 집에서 해 먹기 어려운 음식이다. 선짓국은 불순물을 제거한 소의 피를 식혀서 굳힌 덩어리인 선지와 소의 내장, 우거지, 콩나물, 대파를 듬뿍 썰어 넣고 푹 끓인 해장국이다. 육수도 소의 등뼈와 잡뼈를 밤새도록 고아 낸 것이라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맛에다 몸에 좋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단백질과 칼슘, 철분이 풍부한 선지는 영양가가 많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고 우거지와 콩나물 등 숙취(宿醉) 해소에 안성맞춤인 식재료 덕분에 속풀이 해장국으로도 인기가 높다.
소의 피가 식어 굳어진 덩어리인 선지. 단백질과 칼슘, 철분이 풍부하다.
선짓국을 먹고 큰 볼일을 보면 몸에서 빠져나온 물체가 검은색인 것도 선지에 함유된 철분 성분 때문이다. 소의 피를 끓인 음식이라고 해서 일제강점기에는 우혈탕(牛血湯)이라 불렀다. 선짓국은 맛도 좋고 몸에도 좋고 해장에도 좋은 일석삼조(一石三鳥)의 음식이다. 뜨끈뜨끈한 국물 맛이 깔끔하고 개운해서 뒷맛도 깊다. 선지와 양(羘)이 뚝배기를 꽉 채운 모습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선지는 그냥 먹고 양은 조림간장에 찍어 먹는다. 양은 소의 첫 번째 위를 말한다.
#가정집 밥상의 선짓국
선짓국은 선짓국 식당에서 사 먹는 방법밖에 없는데 해장국 음식점이라도 메뉴에 없는 곳이 많아 일부러 다리품을 팔아 찾아가야만 한다. 1970~80년대에 고향집에서는 선짓국을 즐겨 먹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는 가정집 밥상에 선짓국이 오르는 일이 흔했다.
그 시절에 장(場)을 보는 무대는 재래시장이었다. 지역마다 대형 전통 재래시장이 있었고 동네마다 규모가 작은 재래시장이 들어서 있었다. 마트의 시대가 열리기 전, 재래시장에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어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붐볐다. 재래시장에서는 선짓국도 팔았고 고향집 건너 재래시장에도 선짓국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선짓국 가게에서는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가마솥 크기의 대형 솥에 하루 종일 선짓국이 펄펄 끓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어머니 심부름으로 선짓국을 사러 자주 시장에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집에 있는 냄비를 들고 가서 선짓국을 한가득 담아오곤 했다.
대구 앞산 자락의 순환도로 근처에 선짓국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9년에 문을 연 이래 반백 년 가까이 선짓국을 끓여온 알아주는 가게다. 어쩌다 아버지를 따라 새벽 산행에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이면 꼭 이 집에 들러 선짓국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곤 했었다.
지난 7월 하순 대구의 한 식당에서 먹은 선짓국 상차림.
#무미(無味)한 선지의 식감
탱글탱글하게 생긴 선홍색 선지에서는 피 냄새가 풍긴다. 소의 피를 굳힌 것이라 그렇고 철분과 비타민, 단백질, 칼슘이 많아 몸에도 좋다. 맨 처음 선짓국을 먹었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소의 몸에서 나는 비린내, 육향(肉香)이 깊이 밴 선지를 한 입 깨무는 순간 부드러운 질감이 마음에 들었다. 선지 자체는 무미(無味)하다는데 핏덩어리에서 맛이 날 리 없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선지는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덩어리가 베어질 때의 찰기가 짜릿하게 혀에 와닿는 특유의 식감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다.
선짓국의 또 다른 특징은 푸짐하게 들어간 우거지와 콩나물, 대파가 다진 마늘, 고추 양념장과 일심동체가 되어 육수로 우러난 매콤하면서 기름진 국물 맛에 있다. 얼큰하면서 취기(醉氣)를 가시게 하는 선짓국의 국물은 쓰린 속을 달래는 속풀이로 그만이다. 주독(酒毒)을 뺀다고 선짓국을 시켜 먹는 술꾼들이 천연덕스레 알코올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선짓국만의 거절할 수 없는 속성 때문이다.
대구 변두리의 허름한 식당에서 아침에 마주한 선짓국에서 어릴 때의 추억이 아른거렸다. 맛도 어릴 때 먹던 선짓국 맛과 비슷했다.
#청진동 해장국 골목
주당(酒黨)들에게 청진동 해장국 골목은 오랫동안 유명한 곳이었다. 600년 전통을 이어온 피맛골이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도심 재개발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 나자 사정이 달라졌다. 청진동 해장국 골목은 피맛골의 한 자락이었다. 지금은 골목이 해체되고 하늘 높이 쭉쭉 벋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1980년대 후반, 시청역 근처의 직장에 입사했을 때 청진동 해장국 골목은 하루가 멀다고 찾은 또 다른 출근지였다. 무교동 먹자골목 거리에서 동료들과 부어라 마셔라, 취기(醉氣)가 오를 대로 오르면 어김없이 청진동으로 향했다. 선짓국을 안주 삼아 최후의 술잔을 기울이고 나서야 술자리는 마무리됐다.
야근이 끝난 이른 새벽녘, 청진동 해장국 골목은 애주가(愛酒家)들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청진동 해장국 골목은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동(洞) 이름을 상호(商號)로 끌어다 쓴 노포(老鋪)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장국집이었고 언제나 취객들로 시끌벅적했다.
1937년에 문을 연 이 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장국 노포로 알려져 있다. 원래 있던 자리 근처의 건물로 옮겨 지금도 여전히 영업 중이다.
최근에 해장국 전문 식당에서 먹은 선짓국. 양념이 강하고 소고기와 당면이 들어가 있어 생뚱맞았다. 나름 식문화의 시대적 경향을 음식에 반영하고자 한 의도일 텐데 선짓국답지 않았다.
#밤새운 통음(痛飮)
이런 일도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퇴근길에 까마득한 모 부서 부장과 단둘이 대작(對酌)을 하게 됐다. 사내에서 두주불사(斗酒不辭)로 소문난 술꾼으로 마셨다 하면 날이 샐 때까지 끝장을 보고 마는 마라톤 스타일의 음주 습성을 알고 있던 터라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잔뜩 긴장한 채 술을 마셨다.
아니나 다를까, 1차 소주~2차 맥주~3차 소주를 거쳐 청진동으로 자리를 옮겨 선짓국을 먹으면서 또 소주를 마셨다. 날이 밝아올 때쯤에서야 술자리는 파했고 부장은 나를 데리고 24시간 문을 여는 무교동의 한 사우나로 데리고 갔다.
우리집 주말 밥상에 선짓국을 올릴 일은 없지만 생각만 해도 목이 메는 고향의 음식으로 언제나 나를 위로해 준 토속적 해장국인 선짓국. 그 맛과 은혜를 잊을 수 없어 떠올려본 옛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