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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권 Aug 28. 2024

베이비 붐 세대의 주말 밥상 이야기

17. 갈치조림

17. 갈치조림     


#남대문 갈치골목

 숭례문 건너 남대문시장 어귀를 조금 지나 오른편으로 갈치골목이란 데가 있다. 좁아터진 시장통 고샅에 갈치조림 전문 식당들이 들어차 붙은 이름이다. 가게마다 원조니, 어디 생방송에 소개됐느니 하는 요란한 홍보문구를 간판이나 입구에 써 붙여 행인들의 눈을 홀린다. 


그곳에 유독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가 한 곳 있다. 갈치골목에서도 입소문이 난 가게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갈치조림 맛집이다. 진미(珍味)로 명성을 날리는 식당이 다 그렇듯이 이 집도 평일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일상적 풍경이다.     


토막 낸 국산 생물 갈치은빛이 선명하고 살도 제대로 올랐다.


 2000년대 초반이었다. 직장 동료 몇 명과 서둘러 남대문 갈치골목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10분 남짓 부지런히 걸어 골목 초입에 도착하면 대략 오전 11시 45분~50분 무렵이었다. 1층은 이미 빈자리가 없고 다락방 구조의 2층 구석에 테이블이 하나 남았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일행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런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대개 그 시간이면 처음 들어간 손님이 빨리 식사를 끝내고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식당 바깥에서 서성이기 일쑤다.      


갈치골목의 진풍경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다 끓여 조린 갈치조림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등장하는 순간, 일행은 거부할 수 없는 매콤한 향에 취해 그때부터 식탐 삼매경에 빠진다. 밥은 공기가 아니라 대접에 퍼담아 나온다. 갈치 진액이 졸여진 갈치 국물을 밥에 끼얹어 쓱쓱 비벼 먹을 수 있도록 한 주인장의 배려에서일 것이다. 


깍둑썬 무를 올리고 종이컵으로 세 컵 분량의 물을 붓는다


시장통 식당답게 내부 공간은 비좁고 실내 장식도 투박하다. 식당 밖 대기 손님들은 목을 빼고 순번을 기다리느라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지루한 기다림을 참지 못해서인지, 시간에 쫓겨서인지 몇몇 사람은 테이블에 여유가 있어 보이는 옆 가게로 들어가 버리는 일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갈치골목에서 이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다수 사람은 대열을 이탈하지 않고 그대로 줄 서 있다. 남대문 갈치골목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인상적인 특징이 둘 있다. 
 

무 위에 갈치를 깔고 다시마 한 장도 넣은 뒤 가스 불을 켠다


비교우위의 갈치 살

 우선, 이곳의 갈치조림은 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라 먹을 게 많다. 여기 상인들은 산지와 직거래 공수한 국산 갈치만 사용한다. 국산이라고 만사형통은 아니겠지만 이곳의 갈치는 확실히 여느 집과 비교해서도 몸집이 통통하고 감칠맛이 남다르다. 


매콤하고 얼큰한 갈치조림의 양념 국물을 밥에 조금씩 뿌려 비벼 먹는 맛도 특별나다. 갈치 살은 먹을 게 없다는 고정관념이 무색한 곳이고 양념 국물의 맛도 밥도둑 저리 가라니, 한 번 온 사람이면 잊을 수가 없는 별미(別味)다.     


육수가 끓을 동안 대파와 청양고추도 손질한다


또 하나, 서비스로 나오는 생선구이 한 토막을 덤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남대문 갈치조림골목만의 인정이고 즐거움이다. 참고로 생선구이 서비스는 주는 데만 준다고 하니 엄한 곳에서 왜 안 주냐고 혈압 올리지 마시길.      


갈치골목의 어제와 오늘

남대문 갈치조림골목은 내가 입사한 1980년대 후반에 형성된 남대문시장의 특화 골목 중 한 곳이다. 처음에는 칼국수와 만두를 주로 팔았는데 한두 군데에서 선보인 갈치조림이 상인들과 근처 회사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골목 전체가 갈치조림으로 특화됐다고 한다. 


고춧가루와 간장매실액맛술설탕다진 마늘후추를 섞어 만든 양념장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광경도 하나 있다. 지금은 갈치조림에 더해 모둠 생선구이를 세트로 시키는 게 하나의 주문 예절로 굳어져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한창 드나들던 2002 한일월드컵 때만 해도 갈치조림 하나만 시켜도 포식(飽食)의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다.     


 시절 인심(人心)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결과일까. 아무쪼록 갈치조림의 맛만은 변치 말기를 기대한다.     


육수가 끓으면 양념장을 붓는다.


#갈치조림과 갈치구이

 내가 단골로 장을 보는 동네 마트에서는 제주산 갈치만 취급한다. 조림용과 구이용 둘 다 가능하도록 깔끔하게 손질을 해서 판다. 한때 갈치 한 팩에 3만 원을 오르내릴 때도 있었다. 최근에는 절반 값이면 두 식구가 조림으로 한 끼, 구이로 한 끼를 때울 수 있어 주말 밥상에 자주 올리는 편이다.     


갈치 한 팩을 사면 조림으로 먼저 요리해 먹는다. 남은 갈치 토막은 냉동 보관한 다음 적당한 때에 구워 먹는 방식이 루틴처럼 굳어졌다. 갈치조림은 입맛이 없고 식욕이 떨어져 자극적인 음식이 당길 때 먹으면 입맛이 돌고 기운도 난다. 갈치구이는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식욕을 돋우며 살을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갈치구이 요리를 할 때마다 무더운 여름철에 찬물에 밥을 말아 갈치구이를 먹던 생각이 난다.      


양념이 갈치 살에 충분히 스며들 때쯤 대파와 청양고추도 넣고 중 약불로 낮춰 졸인다.


#조리 방법

 갈치조림 조리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깍둑썬 무를 깔고 종이컵 세 컵 분량의 물을 붓는다. 

2. 무 위에 갈치를 올리고 다시마 한 장도 넣어 센불로 끓인다. 다시다 한 작은술을 추가하면 감칠맛이 더 난다. 

3. 육수가 끓을 동안 대파와 청양고추 한 개도 손질한다.


국물이 자작할 때까지 졸인 뒤 불을 끈다


4. 고춧가루 세 큰술, 진간장 세 큰술, 매실액 두 큰술, 맛술 두 큰술, 설탕 한 작은술, 다진 마늘 한 큰술, 후추를 넣고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갈치 일고여덟 토막 기준이다. 소주 컵으로 소주 반 컵을 넣는 것도 잊지 말자. 비린내를 잡아주고 국물에 청량감이 돈다. 

5. 육수가 끓으면 갈치 위에 양념장을 끼얹는다. 끓는 도중에 양념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 갈치 위에 골고루 뿌려준다.


매콤하고 칼칼한 갈치조림을 먹으면 입맛이 돌고 기운도 난다.


6. 양념이 갈치 살에 충분히 스며들었을 때쯤 대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중 약불로 낮춰 졸인다. 육수가 많다 싶으면 냄비 뚜껑을 열어둔다.

7. 국물이 자작할 때까지 졸인 뒤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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